교회봉사 및 대사회사업으로 야간학교 개설, 금주운동, 물산장려운동, 문맹퇴지, 농촌 사업 등 범 국민운동을 전개하였으며 면려회 운동은 1921년 6월 7일~9일 경북 연합대회가 본 교회에서 개최되고 전국적으로 확산되어 1924년 12월 2일 서울에서 기독청년면려회 조선연합 창립총회가 개최되고 안대선 선교사가 총무, 안동교회 기독 청년면려회 회장 권중윤이 부총무를 맡아 주도적 역할을 하였고, 해방 후 고등 CE, 청년CE, 장년 CE로 분할되어 오늘의 고등부, 청년회, 남선교회 전국연합회로 발전하였으며, 장로교 교단에 따라서는 면려회 이름을 그대로 쓰고 있는 곳도 있다.
○문화재 급의 건물인 석조 예배당 육중한 화강암 덩이를 하나하나 다져서 이름 그대로 돌제단을 쌓아올린 견고하고도 수려한 국내 교회들 가운데서 손가락으로 그 수를 꼽을 정도로 몇 안되는 독특한 양식의 안동예배당은 1926년에 신축 기성회 조직, 1929년에 기공하여 1937년 4월 6일에 준공한 것으로 안동 선교부, 안동교회와 경안노회지역내의 온 교회의 협력으로 경안지역의 중심지에 세워진 것이다. 62년의 세월이 지나고 있지만 옛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어 앞으로 문화재로서도 높은 가치를 지닐 것으로 보고 있다.
육중한 화강암 덩이를 하나하나 다져서 이름 그대로 돌제단을 쌓아올린 견고하고도 수려한 국내 교회들 가운데서 손가락으로 그 수를 꼽을 정도로 몇 안되는 독특한 양식의 안동예배당은 1926년에 신축 기성회 조직, 1929년에 기공하여 1937년 4월 6일에 준공한 것으로 안동 선교부, 안동교회와 경안노회지역내의 온 교회의 협력으로 경안지역의 중심지에 세워진 것이다. 62년의 세월이 지나고 있지만 옛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어 앞으로 문화재로서도 높은 가치를 지닐 것으로 보고 있다.
○한번도 분열되지 않은 에큐메니컬 정신이 뛰어난 교회 해방 후 장로교단이 고려파 분열, 기장파 분열에 이어 1959년 합동측과 통합측의 분열은 한국 최대 교파의 분열이며 또 거의 비등한 수로 분열되었으므로 그 피해도 가장 컸다. 경안노회는 많은 이탈자들이 생겨나기는 하였지만 한국 최대의 교파분열인 점에 비추어서는 피해가 최소화되었고, 특히 노회가 분열되지 않은 것은 본 경안노회를 제외하고는 전국적으로 그 유례를 찾아볼 수 없다는 점이다. 그 이유인즉 경안노회는 건실한 지도자들이 있었다는 것이다. 당시 경안노회장인 본 교회 김광현 목사께서는 총회 서기겸 총무로 평화위원 활동을 적극적으로 하였고, 안동 선교부의 분명한 지도 노선과, 노회적으로 평화위원 및 수습 특별 전권 위원회 활동이 주효했던 것으로 본다. 본 교회는 더욱 흔들림없이 안정된 상태로 어려운 시기를 극복해 나올 수 있었고 교파를 초월하여 포용력을 가지고 연합운동, 연합사업을 전개하는 경안노회 모교회의 위치를 흔들림 없이 감당하고 있다.
○선교에 앞장서는 교회 1981년 교인 한사람이 월 1불($)씩을 내어 해외 선교를 하는 해외 1불선교 위원회가 발족하여 회원 수 264명이 월 700원씩을 내어 장신대에 유학온 파키스탄 죤 빅토말 목사를 도운 것을 시작으로 해마다 회원수가 증가하는 가운데 인도네시아, 일본, 우간다, 탄자니아, 미국, 대만, 호주, 필리핀, 가봉의 선교사들과 제 3세계 지도자들을 도와왔으며, 1999년 현재 1270명의 회원이 월 1500원씩을 내어 13개국 13분의 선교사들의 선교활동을 후원하고 있으며, 1985년부터 1987년까지 3차에 걸쳐 해외의료선교 및 국내의료선교 활동을 전개하여 필리핀, 대만, 말레이시아, 싱가포르, 태국 등지의 환자 650명, 경남 고성군 수해민을 치료했으며, 1989년 교회 창립 80주년 기념사업의 하나로 해외에 단독선교사를 파송하기로 하고 1989년 5월 25일 신정식, 김행자 선교사를 필리핀에 파송하여 1990년 7월 8일 라스 바노스(Las Banos)교회를 개척하고 1994년 6월 17일 교회부지확보, 교회 예배당 및 부속건물을 신축하여 준공, 헌당식을 거행하고 1995년 6월말로 필리핀 현지 유세비오 목사에게 인계하였으며 지금까지도 선교비를 적극 지원하고 있다.
1993년말 중국 연길에 단독 선교사를 파송하기로 하고 장순영, 김정희 선교사를 1994년 10월 3일, 중국길림성 용정에 연변 여명 농민대학 영어 교수 및 인근지역 선교를 위하여 동북아 선교사로 파송하였는데 특수지역이니 만큼 선교활동에 어려움이 많으나 동북아 최대교회인 연길교회에서 협동사역을 감당하면서 선교에 온 힘을 쏟고 있다.
1995년 김기수 목사가 총회장 재임시에 캐나다 원주민인 인디언을 선교하는 일에 큰 역할을 하게 됨에 인디언 지역에 파송된 선교사의 선교비를 지원하고, 교회창립 85주 년 기념교회 설립을 위한 기금사용을 안동시내에서 캐나다 인디언 선교교회 설립에 쓰도록 전용 시켰다.
○한 교회에서 4대 장로 가정
한 교회에서 4대로 장로가 이어오는 가정이 있다. ①제 1대 이중희 장로는 경북 김천출신으로 1913년 4월경 계명학교 교사로 안동에 이거하여 1915년 5월 7일 본 교회 장로로 장립하였으며, 국가관이 투철하고 남녀평등, 계급타파, 미신타파를 부르짖고 배일사상이 강했던 관계로 1919년 3.1 만세운동을 위한 비밀모의를 하다 예비검속되어 안동경찰서에서 10일간 구류당한 후 석방되었으나 구속 중 얻은 질병으로 석방된지 10여일 만에 별세하였다. ②제 2대 이재삼 장로는
김천 장날 전도지를 얻어온 것이 계기가 되어 온 집안이 예수를 믿게 되었다. 1948년 3월 15일 본 교회 장로로 장립하였으며 해방 후 교회 부흥전도부원으로 일제탄압으로 폐지된 경안노회 경내 교회들을 일으키는데 적극적으로 활동함과 동시에 교회적으로는 주일학교 부장으로 교회 교육을 위하여 최선을 다하였다. ③제 3대 이인홍 장로는
3.1운동 당시 임동 협동학교 재학생으로 동료학생을 동원하여 만세를 부르다가 6개월 복역하였으며, 1964년 12월 13일 본 교회 장로로 장립하여 중앙신용협동조합 초대이사, 교육관 건축위원 등을 역임하였고, 1972년 정년 은퇴후에는 거금을 교회 장학금으로 기탁하여 장학기금 설립에 크게 공헌하였고, 7자녀를 신앙적으로 훌륭하게 양육하였다. ④제 4대 이정일 장로는
7남매중 유일하게 대를 이어 본 교회를 지켜 제직회 서기, 성가대 대장 등을 역임하고, 1983년 5월 8일 본 교회 장로로 장립하여 안동중앙신용협동조합 이사장,교회 제직회 재정부장, 4부 남선교회 회장, 경안노회 평준화 위원장등을 역임하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