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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8-19 13:34:47 조회 : 2640         
잊혀져가고 있는 사람들 이름 : 김승학   

 잊혀져가고 있는 사람들

    며칠 전 약 1년 전에 등록한 새가족을 심방(尋訪)했습니다. 언젠부턴가 출석이 뜸한 분이었습니다. 우리교회 새가족 안내과정은 평균 3개월 한번씩 매주 화요일 밤 7시에 교회 친교실에서 모입니다. 안내과정이 무려 8주 동안 계속되기 때문에 한 두 번은 몰라도 보통 열심 없이는 2달 동안 계속되는 모임에 빠짐없이 참석한다는 것이 쉽지는 않습니다. 그럼에도 그는 열심히 참석했던 분입니다. 학창시절 미션 스쿨(Mission School)을 다녔기 때문에 무려 30여년 만에 교회에서 다시 들어보는 하나님, 예수님, 성경 말씀 등이 깊은 잠에 빠진 그의 영성(靈性)을 흔들어 깨웠다고 전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교회에서 그의 얼굴을 볼 수 없었습니다. 근황이 궁금했습니다. 안내과정을 맡았던 교사들에게 그의 근황을 확인했지만 별다른 이유 없이 주일예배에 참석하고 있지 않다는 이야기만 전해 들었습니다. 다만 수개월전 운영하는 가게를 옮기고 나서부터 교회로 향하는 발걸음이 뜸해졌음을 전 기억해낼 수 있었을 뿐입니다. 이사하기 전 운영하던 가게를 지나칠 때면 그의 얼굴이 떠올랐습니다. 하지만 좀처럼 그를 만날 기회가 찾아오지 않았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연결이 3분의 심방 대원과 함께 그의 새로운 일터로 갔습니다. 반가운 만남이었지만 한편으로는 약간 어색한(?) 시간이 흘렀습니다. 하지만 닫혀있던 대화의 창(窓)이 조금씩 열리기 시작했습니다. 그 날은 무척 더웠습니다. 지형 때문에 이전한 가게가 여름에는 시원하고 겨울에는 따뜻하다는 것과 그가 요즘 하는 일들이 주된 화제(話題)였습니다. 대화가 진행되면서 교회에 뜸하게 된 이유를 조금씩 알게 되었습니다. 이야기를 나누며 이전(移轉)해 새롭게 문을 연 그의 일터를 너무 늦게 찾아왔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새 가게로 심방해야지 하는 생각은 가지고 있었지만 대응이 늦었던 것입니다. 특히 그가 덧붙이는 말은 나를 부끄럽게 만들었습니다. 새가게 바로 좌우(左右)에 있는 가게를 우리교회 교인들이 운영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어느 누구도 자신에게 자신에게 관심을 보이지 않더라는 것이었습니다. 누군가 먼저 자신에게 말을 건네주기를 응근히 바랬지만 어느 누구도 교회에 왜 오지 않느냐고 묻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교회에 나가지 않아도 오래전부터 친하게 지낸 지인(知人)조차 자신의 신앙문제에 전혀 관심을 갖지 않더라는 것입니다. “나만 교회에 나가 구원 얻으면 되지.” 자신들에게만 집중할 뿐 옆 사람이 누구인지, 그가 어떻게 되든 관심이 없는 것처럼 생각되었다는 것입니다. 전 생각했습니다. 아마 결석했을 때 처음 몇 번은 누군가 그에게 연락을 취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반응을 보이지 않자 연락하던 사람들도 지치게 되었을 것입니다. 그러나보니 시간이 흘러 그는 잊혀 진 사람이 되고 만 것입니다. 교회에 관심이 없는 사람으로 생각되니 더 이상 만나도 교회에 오라는 말을 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특히 자신의 가게 양편에서 장사하고 있는 우리 교회 교인들로부터 함께 교회가자는 말을 한 번도 들어보지 못했다고 말할 때는 섭섭함이 진하게 묻어나는 것 같았습니다. 주위의 누군가가 작은 관심만 보였어도 다시 교회로 발걸음을 옮겼을 텐데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러한 이야기를 들으며 우리 교인들이 “정말 사는 게 바쁘고 힘들구나”고 전 생각을 했습니다. “옆 사람이 누군 지, 어떻게 사는 지 관심을 가질 만큼의 여유조차 없구나”하는 생각이 들면서도, 동시에 “이것은 아닌 데”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서로에게 지나친 관심은 부담을 줄 수도 있지만 무관심은 새롭게 믿음의 삶을 시작한 영적 새싹을 죽일 수도 있습니다. 아무리 사는 게 바쁘고 고단해도 같은 신앙공동체의 형제 자매에게 조금이라도 더 많은 관심을 기울여야함을 새삼 깨닫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할 때 자신의 있는 자리에서 교회를 부흥하게 만드는 도구가 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비슷한 고백을 다른 새가족으로부터도 들었습니다. 역시 요즘 예배 출석이 뜸한 분이었습니다. 그 역시 잊혀져 가고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시간을 만들어 심방 계획을 잡았습니다. 근 1년 전에 심방한 적이 있었기에 때문에 기억을 되살려 비교적 쉽게 집을 찾았습니다. 사실 그 분은 예배 출석을 중단하기 전까지 새벽기도회에도 열심히 참석했던 분입니다. 문 밖에서 기다리고 있다가 반가운 얼굴로 심방대원을 맞이하는 그를 보며 조금은 안심이 되었습니다. 이야기를 나누면서 처음에는 불출석 이유가 예전에 비해 영적 갈급함이 사라졌기 때문인 줄 알았습니다. 영적으로 헤이해진 것이 원인인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조금 지나서 속마음을 털어 놓기 시작했습니다. 우리 교인이 불미스러운 일에 연류(連類)되어 있는 것을 친구를 통해 알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친구를 통해 들은 바로는 자신이 생각하기에 상식(常識)을 넘어 비도덕적이고 비윤리적인 일이었다는 것입니다. 자신이라면 당연히 자숙(自肅)하며 지내야할 것 같은 데 그 사람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주일 예배에 참석해서 마주치는 경우가 빈발하기 시작했다고 하면서 이야기를 이어갔습니다. 동일한 시간에 예배를 드리기 때문에 교회에서 마주칠 수밖에 없었다는 것입니다. 이 분은 자신이 한 일을 아무도 모를 것으로 생각했는지 자신이 생각하기에 무척 뻔뻔스럽게(?) 행동했다는 것입니다. 교회에서 그 사람의 얼굴을 보는 것이 너무 싫어 주일예배에 나오지 않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한 성도를 시험에 빠지게 만든 불미스러운 일이 정확하게 무엇인 지 전 알지 못합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이 사람의 행동은 다른 사람에게 걸림돌이 되어 교회에 나오는 것을 막게 하였다는 사실입니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이런 일들이 우리 생활 속에서 가끔 발생하는 것 같습니다. 물론 본의 아니게 오해를 받는 경우도 있을 것입니다. 더욱이 세상을 살다보면 어쩔 수 없이 하나님과 교회를 욕 먹이는 경우도 있을 수 있습니다. 물론 이해할 수 있습니다. 어떤 이유에서건 얼굴을 마주 치기 싫어서 아예 교회 근처에 얼씬도 하지 않는 사람이 생길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경우가 발생하더라도 마음만큼은 하나님께 송구스러워해야할 뿐 아니라 교회와 교인들에게 더 이상 누(累)가 되지 않도록 매사에 조심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때때로 나도 모르는 사이 내가 교회 대문을 가로막고 서있음에도 불구하고 인식조차 하지 못하고 있을 수 있음을 잊어서는 않된다는 사실입니다. 나 때문에 누군가가 교회에 오지 않을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혹 교회의 대문을 막고 서있으면서도 전혀 피하지 않아 들어오고 싶은 사람들이 어쩔 수 없이 들어오지 못하고 돌아가지는 않은 지를 살펴보아야 합니다.


   과연 나는 하나님이나 주변의 사람들에게 부딪치는 돌이 된 적은 없었습니까? 하나님께 나아오지 못하도록 방해하는 걸림돌이 되고 있다면 그것은 너무도 송구스러운 일이 아니겠습니까? 정말 평소에 바르게 살고 정말 잘 살아야하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렇지 않으면 나도 모르는 사이 나 때문에 실족(失足)하는 사람이 생기게 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정말 정말 어렵게 누군가에 의해 인도되어 교회에 출석한 사람이 나를 포함한 누군가의 실수로 어느 순간 교회를 떠날 수도 있음을 우리는 인정해야 합니다. 이 일을 보면서 힘들게 교회에 들어온 사람을 밖으로 내쫒는 거침돌이 되어 나 때문에 하나님의 나라가 확장되지 못하고 오히려 축소될 수도 있음도 새롭게 깨닫게 되었습니다. 나 때문에 잊혀지고 사람들은 없는 지를 살펴보는 시간이 필요한 것 같습니다. 갑작스럽게 예배 시간에 보이지 않는 사람들을 생각하며 나의 언어와 행동을 성찰해보는 뜨거운 여름이 되었으면 합니다.

  


2008년 8월 17일

김승학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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