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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8-26 22:32:09 조회 : 2690         
아저씨, 할배예요? 이름 : 김승학   

아저씨, 할배예요?

 

   지난주일 3부 예배를 마치고 한 초등학생으로 보이는 아이로부터 뜻하지 않은 말을 들었습니다. 1층 본당 계단으로 아래로 가는 저에게 이 친구는 웃으면서 대뜸 “아저씨, 할배예요?”라고 물었습니다. ‘아저씨’라는 익숙하지 않은 호칭에 전 적지 않게 당황했습니다. 교회 밖에서라면 몰라도 교회 안에서 어린이들에게 조차 ‘아저씨’란 말을 거의 들어본 적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더욱이 이 날은 주일(主日)이었습니다. 우리 교회에 출석하고 있는 어린이들은 교회 밖에서라면 몰라도 주일에, 그것도 교회 안에서 제 얼굴을 몰라보지는 않습니다. 가끔이라도 제가 새싹교회(유아·영아부), 꿈나무교회(초등학생부), 비전터교회(중고등학생부)에 가서 설교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용기 있고 대담하게 불러진 뜻하지 않은 호칭에 당황은 됐지만 그래도 오래간만에 들어보는 호칭이 오히려 신선(?)하게 생각되었습니다. 이 말에 전 “아니, 아직은 할배가 아닌데”라고 말했습니다. 나이에 비해 많은 흰 머리카락을 보고 제가 할배라는 생각이 들었나 봅니다. 그럴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얼굴에 잔주름은 많아도 아직은 할배라는 소리를 듣지 않아도 되는 나이지만 아이가 그런 것 까지 알 수는 없었겠지요. 아이에게는 그런 세밀한 것 까지 보고 나이를 판단할 능력이 없었을 것입니다. 그저 흰 머리카락만이 그의 눈에 크게 들어왔을 것입니다. 이렇게 생각하니 마음이 편해졌습니다. 여하튼 이 아이는 제 말을 믿지 못하겠다는 듯 미소를 지으며 다시 물었습니다. “아저씨, 할배죠?” 아니 “아직 할배까지는 않됐어”라는 말에 아이는 웃기만 하며 고맙게도(?) 더 이상 묻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그 순간 “지금은 할배가 아니지만 시간이 지나면 당연히 할배가 되겠지”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아이가 말한 할배라는 단어가 제게는 여러 가지를 생각하게 만들었던 것입니다. 아직도 청년의 마음으로 살고 있는 제게 할배라는 단어는 사실 충격적인 것이었습니다. “까맣게 물들여 볼까?” “염색하면 아마 30대 후반, 혹은 40대 초반으로 보일 텐데.” 그러나 곧 다른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시간이 정말 빠르게 지나가고 있다는 생각이 스쳐지나갔습니다. “우리의 연수가 칠십이요 강건하면 팔십이라도 그 연수의 자랑은 수고와 슬픔뿐이요 신속히 가니 우리가 날아가나이다”(시 90:10). 아직은 할배라는 소리를 들을 나이가 분명히 아니더라도 순식간에 할배 소리를 당연히 들을 때가 온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게 되었습니다. 정말 시간이 얼마나 빨리 지나가는지 모릅니다. 한 주일이 끝나면 잠시 잠간 후에 또 다시 주일이 다가 옵니다. 목사에게 있어서 주일은 설교해야 하는 날입니다. 설교를 하는 것은 거룩한 특권인 동시에 거룩한 부담입니다. 전 설교하는 것을 즐기고자 하는 사람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설교를 준비하는 것이 그리 쉽지 않은 고된 작업임을 너무도 잘 압니다. “그래, 하나님께서 어린 소년을 통해 지금 보다 더 시간을 잘 관리하고 유용하게 사용하라고 하시는구나.” 비록 유쾌한 소리는 아니지만 아이를 통해 들은 할배라는 단어가 오히려 지금까지 제가 사용하고 있는 시간을 점검하고 보다 철저한 시간 관리(Time management)가 필요함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주 중에 외부에서 온 예기치 못한 손님들을 만났습니다. 연세가 꽤 드신 분들이었습니다. 한 분을 제외하고는 일행 모두 60세를 넘기신 분들이었습니다. 일이 있어 외출하다가 교회를 방문한 이 분들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일행 중 한분이 자신들을 소개했습니다. 모두가 형제자매라고 하면서 지금부터 약 50여 년 전 6·25 사변 당시 안동으로 피난 와서 4~5년 동안 머문 경험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 때 우리 교회에 출석했다는 것이었습니다. 온 식구들이 함께 피난 내려와 어렵고 힘든 시간이었지만 이들은 모두 우리 교회에 아름다운 추억을 갖고 있었습니다. 당시 일행의 부친이 안동의료원의 약제과장으로 계셨고, 일행 중 한 분은 안동여고에 재학했으며, 더욱이 성가대에서 봉사도 했었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당시 담임목사로 교회를 섬기셨던 고(故)김광현 원로목사님과 목사님의 자녀들까지 또렷이 기억하고 있습니다. 늘 마음속에 품고 있던 우리 교회를 오늘 드디어 방문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마음에 깊이 자리하고 있던 고향과도 같은 안동. 돌로 쌓아올린 예배당. 잊을 수 없는 사람들. 지금부터 71년 전인 1937년에 준공된 예배당. 아름다운 추억으로 남아있는 안동에서의 수년. 다시 와서 예배당을 쌓아올린 화강암 돌 위에 손을 얻고 기도하는 게 꿈이었는데. 50년 동안 마음속에 간직했던 소원을 오늘 비로소 풀었다고 말하며 이 분들은 활짝 웃었습니다.


    전 일행을 모시고 2층 본당으로 올라갔습니다. 6·25 당시 공산당의 기관총 사격으로 난간에 생긴 총탄 흔적을 함께 보며 위험했던 당시의 상황을 떠올리는 듯 했습니다. 본당 정면 지붕 쪽에 새겨진 ‘안동 예배당(安東 禮拜堂)’이라는 글자를 보며 전 당시 믿음의 선배들의 올바른 신앙관을 설명했습니다. ‘안동’이란 글자는 위에, 그리고 바로 그 밑에 ‘예배당’이란 글자에 돌에 새겨져 있습니다. 특히 ‘예배당’이라는 글자에 비해 ‘안동’이란 글자는 1/4 밖에 되지 않습니다. 믿음의 선배들에게 있어서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예배당’이 ‘안동’이라는 지명보다 훨씬 더 소중했던 것입니다. 이것은 그분들이 가지고 있던 신학을 엿볼 수 있게 하는 것입니다. 발걸음을 옮길 때 마다 삐그덕 소리가 나는 본당에 올라갔습니다. 아마 한국에 얼마 남지 않은 소리일 것입니다. 본당에 올라온 일행은 감회가 새로운 듯 했습니다. 한참동안 머리를 숙여 기도했습니다. 기도를 마치고 난 후 전 간단하게 우리 교회를 소개했습니다. 창립된 지 올 해 99주년을 맞는 우리 교회의 역사를 듣고는 이구동성(異口同聲)으로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라고 말했습니다. 본당을 떠나기 전 우리 교단에서 주의 종으로 평생을 봉사하고 은퇴하신 일행 중의 목사님이 제게 당신들을 위해 축복기도를 부탁하셨습니다. 아들 뻘 되는 저는 축복기도를 부탁받고 사양했습니다. 그러나 사양에도 불구하고 거듭되는 목사님과 일행의 요청에 전 이 믿음의 선배들을 위해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했습니다. 제 기도를 마치고 나서는 일행 중 감리교 감독이신 목사님께서 우리 교회와 저를 위해 기도해 주셨습니다. 얼마나 감사했는지 모릅니다.

 

   꿈에 그리는 추억의 교회. 하늘나라에서나 만나게 될 이상(理想)적인 교회. 천상(天上)에서 경험하게 되겠지만 지상(地上)에 존재하는 교회. 이 분들에게 있어서는 청소년·청년 시절 잠시 머물렀던 장소지만 너무나도 아름다운 추억거리를 양산(量産)한 우리 안동교회가 이 땅에 존재하는 천상의 교회와 같은 존재였던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에 가기 전 반드시 한번은 다시 와보아야만 하는 교회가 바로 우리 교회였던 것입니다. 이분들은 60세를 넘어 드디어 소원을 이루었습니다. 아쉬운 마음으로 헤어지면서 전 우리 교회를 위해 계속적인 기도를 부탁드렸습니다. 이 분들을 통해 전 모(母)교회의 중요성을 새삼 느낄 수 있었습니다. 늘 마음속에 살아 있는 모교회가 주는 의미를 새롭게 생각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백성인 우리가 반드시 가야만 하는 본향(本鄕), 하나님 나라를 더욱 사모해야함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과연 얼마나 시간을 아끼고 있는지. 하늘나라 갈 준비를 잘 하고 있는 지. 생(生)의 종착역에 다다르기 전에 중간 점검할 수 있는 기회를 주신 하나님께 전 감사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2008년 8월 25일

김승학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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