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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8-08 16:22:52 조회 : 1028         
100세를 넘은 안동교회 여전도회 이름 : 김승학   

100세를 넘은 안동교회 여전도회

 

 

1913년 2월 7일 창립된 안동교회의 여전도회가 창립 100주년을 맞았습니다. 2013년 11월 22일, 돌집 예배당에서 있었던 100회 총회에서 저는 ‘오직 온전케 하시는 예수를 바라보자’는 제목으로 말씀을 전했습니다. 설교의 중심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100회 총회를 맞이하면서 하나님께 감사드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여전도회 회원들의 쉼 없는 헌신을 통해 하나님께서 오늘의 교회를 이루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나 너무 분주해 예수님께 초점을 맞추지 못하며 살고 있습니다. 예수님 이외의 것에 한 눈 팔고 있습니다. 따라서 생각도, 마음도, 조직도, 사역도 새로운 변화가 필요한 때입니다. ‘예수를 바라보라’는 것은 ‘예수를 바라보지 않는 것’을 전제로 하는 말입니다. 예수를 바라보지 않고 세상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세상을 바라보며 소망을 갖는 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만이 유일한 소망임을 깨닫고 다시 예수님께 집중하고 초점을 맞추어야 합니다. 안동교회 여전도회가 죽으면 다른 교회의 여전도회도 죽습니다. 우리가 살면 다른 교회가 살 소망이 있습니다. 100년 너무도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오직 예수님만을 바라보며 신앙을 지켰던 선배들의 삶을 생각하며 초심으로 돌아가 여전도회의 선교 2세기를 다시 시작해야 합니다. 그때 안동 땅은 복음의 땅으로 변화될 것입니다.” 감사와 함께 도전이 필요한 시간임을 강조했습니다.


초기 한국교회 부흥에는 장로교 부인전도회(婦人傳道會)의 헌신이 있었습니다. 부인전도회는 오늘날 여전도회의 전신(前身)으로 1898년 2월 20일 평양 널다리골교회(장대현교회)에서 마포삼열 선교사님에게 세례를 받은 이신행,신반석,김성신,박관선 등의 발기로 63명의 회원이 참석한 가운데 한국에서 여전도회 모임이 최초로 이루어졌습니다. 이후 1908년부터는 여전도회 지방연합회가 각 지역에서 생겨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지방연합회들은 지방마다 그 형태와 명칭이 달라 중부지방·이북·영남에서는 부인전도회라고 불렀고, 호남지방에서는 조력회(助力會),함경도에서는 여선교회라 불렀습니다. 이 지방연합회는 1928년 전국연합회가 창립되면서 그 역량을 하나로 결집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여전도회 전국연합회가 창립되었지만 부인전도회의 명칭은 쉽게 변경되지 않고 개교회에서는 그대로 사용되기도 했습니다. 안동지역의 경우, 1902년 창립된 풍산교회가 1961년 2월 부인전도회와 창년회를 분리했다는 기록으로 볼 때 적지 않은 지 교회는 여전히 여전도회라는 이름 대신에 부인전도회라는 이름을 사용한 것입니다. 1909년 8월 둘째 주일 첫 예배를 드린 안동교회에도 일찍이 부인전도회가 조직되어 있었습니다. 하지만 1913년 2월 7일 여전도회가 조직되어 1년이 지난 1914년에 다비다회란 이름으로 비공식적으로 활동하다가 수개월 후 당회의 허락을 받아 정식 여전도회로 발족했습니다. 안동교회는 처음부터 상회(上會)의 지시에 순종하는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안동교회 여전도 회원들의 적극적이고 열성적인 전도와 봉사는 인근 교회들에 화제 거리가 되었을 뿐 아니라 마을 마을에 예수 그리스도를 전하는 데 일조하였습니다. 특히 매주일 마다 회원들 끼리 우승을 겨루게 되어 회원 전원이 열심히 활동하는 거룩한 명물(名物)이 되었습니다. 당시 여전도회의 정기 월례회는 매월 첫 번째 주 화요일 저녁 시간에 있었습니다. 평일 저녁의 모임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약 30~40명 정도가 모일 정도로 회원들은 모두가 헌신적이었습니다. 당시 여전도회 회원 자격은 교회에 출석하는 모든 여성이 아니라 세례 받은 여성에 제한했습니다. 자격을 갖춘 성도들이 참여케 함으로써 처음부터 질(質) 높은 여전도회가 되게 한 것입니다. 거의 일평생 여전도회 경안연합회를 위해 헌신한 김점향 권사님은 당시 우리교회 여전도회 회원이 30~40명 정도 되었다고 증언했습니다. 특히 안동교회 초대교인 8인 중 여성 4인인 원홍이, 원화순, 김남홍, 그리고 정선희가 참여했다는 것입니다. 이들 4인은 1909년 8월 둘째 주일에 시작된 안동교회 첫 예배에 참석한 여성 모두로 이들은 초대교인답게 교회의 여러 사역 뿐 아니라 노회의 여전도회 활동에도 헌신했을 것으로 추측할 수 있습니다. 물론 어느 정도의 시간이 지난 후(後)겠지만 이들 4인 외에 이인홍 장로님 모친, 장경영 권사님의 모친과 고모, 그리고 권신희와 김화석 은퇴 장로님의 조모인 권순옥 등이 노회여전도회 활동에 참여했습니다. 교회 안에서 있었던 여전도회 정기월례회의 순서는 다음과 같았습니다. 모임은 당연히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로 시작되었습니다. 예배순서 중에는 헌금을 드리는 시간도 있었습니다. 이 헌금은 여전도회 활동과 사업에 사용되었습니다. 더욱이 여전도회 회원들은 본래 여전도회 목적대로 일상(日常)에서 개인적으로 전도하는 일에 힘을 쏟았고, 이들의 전도는 지역교회의 부흥을 가져오게 했습니다.

  

특히 1928년 2월 19일 안동교회에서 경안노회 여전도회 연합회가 창립되기 전(前) 안동선교부는 이미 경안노회 경내의 여전도회 회원들을 위한 사경회(査經會)를 1917년부터 매년 개최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깊이 있게 공부하고, 일상에서 그리스도인의 사명을 강조한 사경회는 성도들의 신앙을 성숙하게 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일반적으로 사경회는 1896년 이후에 본격적으로 시작되었을 것으로 사료되는데. 처음에는 성경공부만 하다가 기독교교회와 교인생활에 관한 기초과정도 포함되었습니다. 특히 오후에는 불신자를 대상으로 전도하고, 저녁에는 이들을 대상으로 전도 집회가 열렸습니다. 당연히 사경회는 교회의 부흥을 위한 도구였습니다. 처음에 사경회는 교회단위로 실시되다가 지역 내 여러 교회들이 연합해 연합사경회로 모이게 되었고, 이것을 도사경회(都査經會)라고 부르게 되었습니다. 이런 배경 속에서 안동지역의 첫 도사경회는 1917년 1월 21일에 열렸는데, 강사는 이희봉 목사님과 맹의와(孟義窩, E. F. McFarland) 선교사님이였으며, 회집 인원은 남녀 합하여 230명 정도나 되었습니다. 이희봉 목사님은 부해리(傅海利, Henry M. Bruen) 선교사님의 조사로 활동한 바 있으며 선산읍교회 첫 교역자로 사역할 때 교회 구내에 광성학교를 세워 문맹퇴치에 기여했을 뿐 아니라 선교 초기 선산지역의 복음화에 앞장 선 분이었습니다. 또한 맹의와 선교사는 미북장로교에서 파송 받아 1904년 11월 내한하여 대구를 중심으로 포항, 흥해, 청도, 경주, 고령, 울릉도 등 경북지역에서 활발하게 사역하던 분입니다. 그는 경주제일교회, 포항제일교회, 반야월교회, 남산교회, 화양교회 등 당시 지역의 중심교회들을 섬기며 교회를 안정시키며 교회부흥에 큰 역할을 한 복음전도자였습니다. 

 

당시 여(女) 도사경회는 1년에 한 차례씩 개최되었는데 기간은 보통 1주일 동안 계속되었으며, 안동은 물론 인근 지역인 영주, 의성, 상주, 문경, 예천, 봉화, 영덕, 영양, 청송 지역에 있던 교회를 섬기는 회원들이 참석했습니다. 그들은 사경회 기간 동안 먹을 양식을 가지고 와서 숙식을 해결할 정도로 열심을 내었습니다. 이후의 사경회 강사 중에는 당시 가장 영성이 뛰어난 길선주 목사님, 김익두 목사님 등도 포함될 정도로 거리에 관계없이 전국적으로 인지도가 높은 주의 종들이 초청되었습니다. 사경회에 참석한 여전도회 회원들은 전해질 말씀의 은혜를 설레는 마음으로 기도하면서 기대하고 기다렸습니다. 그 결과 초청강사들의 설교는 참석한 여전도회 회원들에게 큰 감동이 되었고 믿음이 성장하는 기회가 되었던 것입니다. 더욱이 도사경회 기간 중 반별로 나뉘어 성경 공부한 것과 요절을 암송한 것은 잊을 수 없다고 수차례 경안여전도회 회장을 역임한 김점향 권사님은 증언한 바 있습니다. 또한 매년 개최되는 도사경회는 특별한 이유가 없는 이상 대부분 안동교회에서 개최되었습니다. 따라서 사경회에 참석한 많은 여전도회 회원들을 섬기는 일은 안동교회 여전도회 회원들의 몫이었습니다. 회원들은 봉사와 함께 말씀을 듣는 두 가지 일에 열심을 내야만 했습니다. 하지만 안동교회 여전도회 회원들은 마리다의 섬김 사역과 마리아의 말씀집중 사역 모두를 잘 감당하여 경안노회 여러 교회의 본(本)이 되었습니다.

  

안동교회 여전도회 회원들의 주축이 되어 시작한 경안노회 여전도회 창립과정은 다음과 같습니다. 총회 하루 전인 1928년 2월 18일에 열린 도사경회 기간 중에 대구주재 박우만(Gerda O. Bergman) 선교사가 내안하여 발기회를 가진 것이 여전도회 경안연합회의 시작이 되었습니다. 당시 발기인으로는 안동주재 권찬영 선교사(權燦永, John Young Crothers)의 부인인 권애라 선교사, 안동교회에서 전도사로 시무하고 있던 김정숙, 안동교회의 성도인 김향란, 김정희, 안주봉, 김순애 제(諸)씨, 그리고 권신희 집사와 김화석 은퇴 장로의 조모인 권순옥 집사가 포함되었습니다. 특히 초대회장에 김정숙, 회계 김정희, 부서기 김순애, 회계 권신희, 부화계 권순옥 등 임원 대부분을 안동교회 여전도 회원들이 맡았습니다. 또한 여전도회 경안연합회가 창립된 다음 해인 1929년부터 안동교회를 담임으로 시무하던 임학수 목사님이 고문을 맡음으로써 안동교회는 노회 내 여전도회 사역에 더욱 적극적으로 동참하게 되었습니다. 이로써 다수의 안동교회 여전도회 회원들은 여전도회 경안연합회가 창립될 때 산파역을 감당했을 뿐 아니라 그 후에도 경안연합회의 중추적 역할을 감당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새로 조직된 경안연합회는 교통수단이 불편함에도 불구하고 활동과 모임에 열심이었습니다. 1930년에 열린 3회 총회에서는 이미 39지회로 확장될 정도로 성령의 역사와 회원들의 헌신과 열심이 있었습니다. 경안노회 여전도회연합회 약사(略史)에 따르면 조직된 후 교회마다 여전도회 명으로 1인 당 1전씩 헌금한 수입으로 사업을 수행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특히 여전도회 전국연합회가 1935년 6월 중국에 파송한 김순교 선교사에게 여비를 후원한 것을 시작으로 1937년에는 산동성 성경학교 건축비와 선교비로 후원한 함으로써 세계 선교에도 일조하였습니다. 또한 경안여전도회는 오랜 역사를 존중하며 오늘에 이르고 있습니다. 현재 2년에 한차례씩 2월에 1박2일로 열리는 경안노회 여전도회 정기총회의 제목은 제OO회 총회 및 도사경회로 명명하고 있는 바, 이것은 경안여전도회의 역사와 전통을 중시하고 있는 데서 기인합니다. 창립 80주년인 2008년 까지 일제 탄압과 6·25 전쟁으로 총회가 개최되지 못한 두 차례를 제외하고는 78차례 총회가 개최되었는데, 안동교회에서 64회, 영주제일교회에서 6회, 안동동부교회에서 5회, 안동서부교회에서 3회의 총회가 개최됨으로써 안동교회는 경안여전도회 연합회 활동의 산실(産室)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특히 1880년 11월 10일 출생한 김정숙 전도사님은 안동선교부 오월번(Arthur G. Welbon) 선교사님에게 1911년 세례를 받은 후 1912년 안동으로 이주하여 선교사들의 사역을 도왔습니다. 그는 1915년 35세 나이로 평양여자성경학원에 입학하여 1920년에 졸업하고 안동에서 전도사 활동을 시작하였는데, 안동교회 초대 전도사로 섬긴 것은 1922년부터였습니다. 그는 1937년 55세로 전도사직에서 은퇴한 후 평신도로 안동교회를 섬겼습니다. 집사와 권찰로 봉사하다가 1948년에는 권사로 피선되었고, 1952년부터 1955년 까지 여장년부 부장으로 충성을 다했습니다. 그래서 1963년 1월 20일에 열린 당회는 김광현 담임목사, 김재성·조흥노·이홍구 장로, 그리고 김정숙 권사 등이 20년 이상 교회를 위해 봉직한 것을 기념하는 예식을 갖기로 결의했습니다. 안동교회는 김정숙의 전도사 사역과 평신도 사역을 남녀 차별 없이 존중했던 것입니다. 특히 김전도사님은 여전도회 경안연합회 초대부터 5대까지는 회장으로, 6대~13대까지는 부회장으로, 그리고 17대에는 다시 회장으로 섬기면서 경안여전도회 활성화에 큰 헌신을 감당한 경안지역 여전도회의 지도자였습니다. 또한 김점향 권사님 역시 1932년부터 1956년까지 24년 동안 서기로, 36대(1965년) 회장으로 수고함으로써 경안연합회가 든든히 성장하는데 큰 공헌을 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특히 1928년 2월 19일 창립된 경안노회 여전도회 연합회 제10회 총회 때 사진은 김정숙 전도사님의 리더십을 어느 정도 증명하고 있습니다. 사진에는 당시 경안노회 여전도회를 이끌었던 여성 지도자들의 면면(面面)을 볼 수 있습니다. 특히 연합회 초대 회장으로 수고한 김정숙 전도사님은 둘째 줄 정중앙에 자리하고 있으며, 맨 아래 줄 왼쪽에서 4번째는 역시 경안노회 여전도회의 산 증인인 김점향 권사님을 사진에서 볼 수 있습니다. 사진 아래서 두 번째 줄 좌측에는 당시 안동지역에서 헌신했던 4명의 여선교사를 볼 수 있습니다. 여성들에게 성경을 가르친 매켄지(매건시, Rainer J. Mckenzi) 선교사, 권찬영 선교사의 부인으로 창립총회에서 총무로 수고한 권애라 선교사, 일제에 의해 미국으로 추방된 옥호열(玉鎬烈, Harold Voekel) 선교사의 부인, 안의와(安義窩, James Edward Adams) 선교사 선교사의 3남로 당시 안동에서 사역을 감당하고 있던 안두조(安斗照, George Jacob Adams) 선교사의 부인 등의 얼굴을 볼 수 있습니다. 이것은 선교사 부인들이 경안여전도회에 적극적으로 활동하고 있었음을 암시하고 있었음을 암시합니다. 그러나 역대 회장 명단에는 어떤 선교사 부인의 이름도 찾아볼 수 없습니다. 선교사 부인들은 경안여전도회를 위해 전면(前面)에 나서지 않고 배후(背後)에서 헌신했음을 알 수 있게 합니다. 경안여전도회는 비록 선교사 부인들의 도움은 받았지만 지역출신의 여성들이 주체적이고 자율적으로 여전도회를 이끌어 갔던 것입니다.

 

이와 같이 안동교회 여전도회는 안동교회와 안동지역 교회 부흥의 견인차(牽引車)가 되었습니다. 교회 안에서는 봉사와 헌신을 통해, 교회 밖에서는 전도를 통해 안동을 예수 마을로 만들어가는 거룩한 도구로 사용되었습니다. 특히 경안 여전도연합회 창립할 때 중심에 섰던 안동교회 여전도회는 경안노회 경내의 교회가 꾸준히 성장하고 든든히 서갈 수 있도록 거룩한 영향력을 발휘했습니다. 아직 복음화율이 10%에도 미치지 못하고 심지어 침체에 빠져 있는 오늘, 여전도회 회원들은 경안노회 경내에 있는 땅을 천사도 흠모할 만한 거룩한 땅으로 바꿀 수 있도록 선교역량을 집결해야할 사명이 있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 때 이전 영광보다 나중 영광이 더 큰 여전도회가 될 수 있을 것입니다. 끝으로 100년이 넘는 역사 동안 교회와 노회, 그리고 지역사회를 위해 헌신한 여전도회 회원들에게 감사와 격려의 박수를 보냅니다.

  

2016년 8월 8일, 교회 창립일

김승학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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