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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1-26 22:54:05 조회 : 1167         
작은 순종, 큰 은혜 이름 : 김승학   

작은 순종, 큰 은혜

  

 

   성경이 강조하고 있는 순종은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순종입니다. 순종은 주님의 말씀대로 행하는 것입니다.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유일한 길이기 때문입니다. 존 맥아더 목사님은 “순종은 어떤 영적 태도보다 중요하다. 순종하는 사람은 하나님께서 무엇을 시키시든 지 그대로 한다. 그는 타협하지 않는다. 하나님이 말씀하시면 그것으로 끝이다. 더 이상 왈가왈부하지 않는다”고 말 한바 있습니다. 군소리 없이 하나님께서 하신 말씀대로 순종하는 사람만이 하나님의 일을 이루어가는 도구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의 순종을 통해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선(善)하신 뜻을 이루어 가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세상을 위해, 또한 개인의 삶을 위해 선한 뜻과 계획을 가지고 계십니다. 하나님의 뜻과 계획은 당신의 백성의 순종을 통해서 성취됩니다. 그런데 순종하기 필요한 것이 믿음입니다. 믿음을 가진 자만이 하나님의 뜻에 온전히 순종할 수 있고, 하나님의 계획에 순종하는 자만이 참된 믿음을 가졌다고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순종은 믿음으로 수용하는 것에서부터 시작됩니다. 믿음을 통한 순종은 하나님이 어떻게 말씀하시던지 받아 드리게 합니다. 순종하는 사람은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모든 것이 최선이요 최상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받아 드립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 순종은 위험스러운 모험입니다. 기독교 심리학자인 폴 투루니에(Paul Tournier)는 ‘모험으로 사는 인생’이라는 책을 썼습니다. 그는 이 책에서 자신이 새롭게 체험한 신앙경험을 밝히고 있습니다. 50이 넘도록 자신이 지적인 믿음에 머물러 있었는데, 어느 날 한 친구의 모습을 보면서 또 다른 차원의 믿음이 있음을 깨닫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새롭게 체험한 믿음은 자신의 뜻을 포기하고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할 때 발생한 것이었습니다. 이 친구는 기도를 마치고 난 후에 “내가 할 일은 백지의 하단에 서명하는 일이라는 걸 깨달았습니다. 하나님이 뭐라고 쓰실지 모르지만, 어째든 난 오늘 서명을 마쳤습니다”라고 말했다는 것입니다. “백지에 서명을 마쳤다”는 이 말에 폴 투르니에는 충격을 받게 됩니다. 백지계약은 자신의 생각이나 뜻을 완전히 포기하는 것입니다. 또한 하나님의 뜻에 완전히 순종하는 것을 말합니다. 사실 백지계약은 엄청난 모험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과 백지계약을 맺는 것은 하나님의 주권을 전적으로 인정하는 것의 다른 표현이기도 합니다. 하나님의 뜻에 순종으로 사는 사람의 삶이 하나님과 백지계약을 맺는 것과 동일한 것이기에 투르니에는 책의 제목을 ‘모험으로 사는 인생’이라고 정한 것입니다. 그런데 순종함으로 사는 인생이 아무리 큰 모험이라 하더라도 하나님께서는 그 사람에게 은혜를 베푸신다는 것입니다.  

 

   1994년 1월초, 우리 안동교회 부목사님 중 한분이 사임을 하고 서울로 올라갔습니다. 그 때 난 경안여중 교목으로 있었습니다. 난 나름대로 계획이 있었습니다. 안동에서 2년 동안 교회 사역을 마치고 서울로 올라가 유학갈 준비를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 2년을 마무리 할 때였습니다. 그런데 갑작스러운 그 목사님의 사임은 제게 불통이 튀었습니다. 그 분이 안동을 떠난 이후 담임 목사님께선 제게 어려운 결정을 요구하셨습니다. 교목 사역을 그만두고 사임한 그 목사님 후임으로 교회로 내려와 교구 사역을 하라는 것이었습니다. 당시 난 우리 교단 부총회장님으로 총회를 섬기시던 목사님을 뒤에서 조금 돕고 있었습니다. 내게는 목사님의 말씀이 본격적으로 당신을 도우라는 말씀으로 들렸습니다. 목사님의 말씀에 유학 갈 준비를 하고 있다는 계획을 솔직하게 말씀드렸습니다. 하지만 목사님께서는 그 후에도 몇 차례 더 제가 교구 담당교역자로 섬기기를 원하셨습니다.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렇다고 나의 계획을 바꿀 수도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이미 여러 면에서 다른 동기들에 비해 늦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사실 난 신학대학원 3년 동안 유학을 준비했고, 안동에서 2년의 사역 기간 동안에도 쉬지 않고 유학준비를 계속해 왔었습니다. 나이도 이미 30 중반을 넘어서고 있었기 때문에 더 늦어지면 유학을 아예 포기해야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여러 면에서 부족함에도 불구하고 날 사랑하고 인정해주신 담임 목사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는 것도 큰 부담이 되었습니다. 고민하며 기도하던 중에 교회 경내에 함께 거주하고 계시던 큰 어른인 원로 목사님을 찾았습니다. 참고로 원로목사는 한 교회에서 20년 이상 담임으로 섬긴 목사에게 줄 수 있는 명예로운 칭호입이다. 당시 원로목사님은 1943년부터 1979년 까지 우리 교회에서 무려 37년 동안 섬긴 분이셨습니다. 안동 지역사회, 노회, 그리고 총회에서 큰 존경을 받고 계신 어른이었습니다. 어려운 발걸음이었지만 원로 목사님을 찾아뵙고는 저간의 사정을 말씀드렸습니다. 그 때 상 원로 목사님께서는 제게 신중하게 조언해 주셨습니다. “김목사가 다시 말하면 그대로 순종하세요.” 여기서 김목사는 담임목사님을 뜻합니다. 담임 목사님이 다시 똑 같은 말을 하면 군말 없이 무조건 순종하라는 것이 원로 목사님의 말씀이었습니다. 그 때 난 큰 어른의 말씀을 마음에 품었습니다. 담임 목사님이 내게 직접 말씀은 하지 않고 계시지만 여전히 당신의 생각을 접지 않고 계심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고민이 멈추지 않았습니다. 어떻게 해야 할까? 결국 목사님의 뜻이 내가 교회에서 사역하는 것이 분명하다면 내 계획을 연기할 수밖에 없다고 결심하게 되었습니다. 다만 목사님이 나를 부르실 때 까지 기다려야 하는가? 아니면 말씀하시기 전에 먼저 내가 찾아가 내 결심을 말씀드릴까? 그러다가 목사님의 호출이 있기 전에 목사님의 뜻에 순종하겠다는 내 생각을 전해드리는 것이 옳다고 결정하고 목사님의 사택을 찾았습니다.  

 

   1994년 2월 마지막 토요일, 난 목사님을 뵙고 단 한마디만 말씀드렸습니다. “목사님의 말씀에 순종하겠습니다.” 그런데 그 때의 순종이 내 일생을 바꾸어 놓았습니다. 그 이후부터 난 교회와 노회, 심지어 총회를 섬기시는 목사님의 사역을 작게나마 도울 수 있게 되었고, 더욱이 교구사역과 목회, 노회와 총회를 배울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되었습니다. 누구보다 가까운 곳에서 목사님을 지켜보고 목사님의 사역을 도운 일은 짧은 기간 동안 내 자신을 엄청나게 성장시키는 기회가 되었습니다. 작은 순종이 큰 은혜가 된 것입니다. 후에 난 깨닫게 되었습니다. 순종이 결코 내게 손해가 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작은 순종을 통해서도 상상하지 못한 당신의 사역을 놀랍게 이루어 가신다는 사실을 깨닫게 하셨습니다. 우리의 작은 순종을 통해서 하나님께서는 교회를 향하신 당신의 뜻을 이루시길 원하고 계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작은 순종을 통해 이루어진 하나님의 은총을 감사하며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안동 선교부의 초대 선교사는 소텔(Chase Cranford Sawtell)입니다. 대구 선교부에 주재하던 소텔 선교사는 안동주재 선교사로 임명받고, 1908년 12월 1일 대구를 출발하여 안동에 도착했습니다. 180 Cm의 장신인 소텔 선교사는 대구 선교부에서 만물박사로 통할 정도로 다재다능하여 사택이나 건물에 기계적 문제가 있으면 거뜬히 해결했고, 동산병원에 물을 공급할 수 있는 작은 풍차를 만들기도 했습니다. 거룩한 비전을 갖고 안동에 도착한 소텔 선교사는 선교기지가 될 임시주택 한 채를 구입했는데, 그 위치는 오늘의 안동교회 주차장입니다. 특히 1909년 9월부터 안동지역의 북쪽은 소텔 선교사가, 서쪽은 오월번(Arthur G. Welbon) 선교사가 책임지고 적극적으로 복음을 전하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길을 떠난 지 10일 만에 소텔 선교사는 장티푸스에 걸려 돌아왔고, 약 1달 동안 치료를 받았지만 1909년 11월 16일 27세라는 젊은 나이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아내인 캐더린(Katherine M. McClung) 선교사는 남편 묘비에 다음과 같이 적었습니다.

  

체이스 크랜포드 소텔

1881년 1월 9일 출생

1909년 11월 16일 별세

“나는 그들(조선인들)을 사랑하겠노라”

  

“나는 그들을(조선인을) 사랑하겠노라”는 묘비에 적힌 글은 사실 소텔의 신학교 동창인 레이놀즈(Walt H. Reynolds)가 소텔에게 남긴 말이었습니다. 친구의 말을 마음에 새긴 소텔 선교사는 조선을 사랑하기 위하여 내한했고, 조선을 사랑하다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소텔 선교사는 안동 땅의 첫 순교자입니다. 소텔 선교사가 흘린 순교의 피는 안동 땅을 복음화 하는 비료가 되었습니다. 소텔 선교사는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며 한국에 와서, 순종하며 안동에 머물며, 순종하며 복음을 전하다가 제물이 되었습니다. 그의 순교는 안동 복음화 밑거름이 되었던 것입니다. 그의 순종은 거룩한 복음의 씨앗이 되었습니다. 그의 순종은 이 땅 안동에 구원의 은혜가 임하게 했습니다.

  

   이와 같은 순종을 통한 순교의 집합체는 서울 합정동 양화진에 있는 외국인 묘지라고 할 수 있습니다. 외국인이라고 하지만 이곳에는 수많은 선교사들과 그의 가족이 묻혀 있습니다. 수 년 전 우리 교역자들과 직원들이 1월 1일, 그 해의 첫날 양화진 선교사 묘역을 방문한 적이 있습니다. 출발할 때부터 몹시 추운 날씨였습니다. 더욱이 양화진 묘역에 서니 강바람이 더 매섭게 느껴졌습니다. 묘지에는 이 땅 한반도의 복음화를 위해 자신의 피와 생명을 바친 500여명의 외국인 선교사들과 그의 자녀들이 묻혀있습니다. 미국, 영국, 러시아, 프랑스 선교사들과 그 가족이 잠들어 있습니다. 태어난 지 불과 며칠 만에 세상을 떠난 간난 아기도 있었습니다. 선교사들은 구원의 복음을 전파하기 위해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며 한국 땅으로 왔고, 이 땅의 백성을 위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며 자신의 생명을 기꺼이 드렸습니다. 오늘 한국교회의 부흥은 이처럼 많은 믿음의 선배들의 순종과 헌신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습니다. 이들이 묻혀 있는 무덤 앞에 서니 멍해지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또한 숙연함을 느낄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미안함과 죄송스러움, 그리고 감사함이 마음 깊은 곳에서 복 바쳐 올라온 것도 사실입니다. 이들의 무덤은 순종의 능력을 분명하게 확인하게 만듭니다. 순종은 하나님께서 당신의 백성에게 부으시는 은혜의 통로가 됨을 확인하게 만듭니다. 생명을 드렸던 이들의 거룩한 투자가 한반도에 풍성한 복음의 열매를 맺게 한 것임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성장하는 교회에도 반드시 송종하는 믿음의 사람들이 있습니다. 헌신된 순종의 사람들이 있습니다. 또한 한 영혼을 위한 사랑은 헌신된 하나님의 백성이 가져야할 가장 기본적인 요소입니다. 모든 공동체가 부흥의 은혜를 받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말씀에 온전히 순종하는 믿음의 사람이 필요합니다. 하나님의 교회가 든든히 서가는 은혜가 임하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뜻에 철저히 순종하는 믿음의 사람이 반드시 있어야 합니다. 한 영혼을 그리스도 안에서 온전하게 세우는 은혜를 받기 위해서는 헌신하는 순종의 사역자들이 필요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작은 순종을 큰 은혜의 통로로 사용하시는 분입니다. 우리의 작은 순종이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의 발원이 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작은 순종을 무시하지 말아야 합니다. 작은 일에 순종하는 사람을 통해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속한 공동체에 크고 놀라운 은혜를 부어 주시기 때문입니다.

 

 2016년 1월 25일

 김승학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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