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동교회 홈 | 홈으로 | 로그인 | 회원가입 |

2018-11-07 21:53:31 조회 : 486         
너무나 한심하고 부끄러웠습니다​ 이름 : 김승학   

너무나 한심하고 부끄러웠습니다

 

여러분의 삶에 큰 변화를 가져다준 결정적인 사건이 있습니까? 있다면 무엇입니까? 국제 대학생 선교회 CCC를 창설한 빌 브라이트(Bill Bright) 박사는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은 역사와 삶을 바꾸는 하나님의 능력이다”이라고 말한 바 있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난 사람은 변화될 수밖에 없다는 뜻입니다. 사도 바울처럼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만났습니다. 그리고 그는 생명을 걸고 복음을 전하는 변화된 사람으로 살다가 순교 당했습니다. 이처럼 살아계신 하나님을 만난 사람은 당연히 이전과 다른 변화된 삶을 살아야 합니다. 변화된 삶이 없다면 그리스도인으로서 부끄럽고 한심한 삶을 살고 있다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닙니다. 여러분에게 있어서 예수 믿고 난 후 가장 크게 바뀐 것이 있다면 무엇입니까? 예수 그리스도를 만난 이후 내 스스로도 놀랄 만하게 변화된 것이 있다면 무엇입니까? 혹 극적인 변화는 아니더라도 점진적으로 변화된 것이 있습니까? 한 집사님의 간증(干證)은 예수님을 만난 사람은 누구나 큰 변화가 있음을 깨닫게 합니다. 아래 글은 한 집사님의 고백입니다. 

 

저는 삼대에 걸쳐서 믿는 가정에서 태어났지만, 결혼 전 까지는 교회보다는 세상이 더 좋았습니다. 그러다보니 교회라는 존재는 저에게 짐이 되어버렸습니다. 부모님께서는 주일을 성수하지 않는다고 꾸지람도 많이 하셨지만, 전 그래도 세상친구, 세상 음식이 좋았고, 계속 사탄의 세계로 빠져들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싫어하시는 못 된 짓만 골라서 한 거죠. 그럼에도 우리 하나님께서는 한번 택한 자를 절대 버리지 아니하시고 사랑으로 채워주심을 알았습니다. 단 한 번도 생각해본 적이 없는 공무원이라는 과분한 직장과 결혼을 선물하셨습니다. 백수로 살면서 1984년 5월 결혼했지만, 하나님께서는 이듬해인 1985년 3월에 직장을 주셨습니다. 그러면서 저의 생활이 변화하기 시작하였고 믿음이 싹트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저의 모든 생활과 환경에서 부족함이 없이 감사의 일들로만 채워 주셨습니다. 그러다가 한 가지 깨달은 것은 하나님께서 늘 우리들에게 좋은 것으로만 채워주시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계획에 따라 환난과 고난과 고통도 주신다는 것도 깨달았습니다.  

 

3대에 걸친 그리스도인의 가정. 누구보다 예수 믿기 쉬운 가정에서 태어났고 성장했지만 실제의 삶은 그렇지 못했습니다. 교회를 멀리하고 세상을 가까이 하는 생활이 당연했습니다. 이러한 세상적인 삶을 살면서도 한심하다거나 부끄럽게 느껴진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고 그는 말했습니다. 사실 3대, 4대, 혹은 가족 중에서 나 혼자서라도 열심을 다해 예수를 믿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부끄럽게 한심스러운 모습이 우리에게는 있습니다. 엄마 뱃속에서부터 예수를 믿은 모태(母胎) 신앙인이라고 자부하면서도 구원의 감격이 무엇인지 모르고 사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구원의 기쁨. 예수를 만났지만 어떤 감동도 전혀 경험하지 못하고 여전히 교회 문턱을 드나드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습니다. 거듭남, 중생(重生)은 그리스도인들이 반드시 체험해야할 신비스러운 사건임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을 개인적으로 만난 체험이 없는 사람들이 참으로 많습니다. 그러나 앞에 언급한 집사님은 결혼 이후 예수 그리스도를 만났고, 그리스도 안에서 변화되기 시작했습니다. 결혼과 함께 비로소 진정한 믿음이 시작되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무엇인지, 하나님께서 베푸시는 은혜가 무엇인지를 조금씩 알게 되었고, 그 결과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며 살게 된 것입니다. 그러다가 전혀 예상하지도 못한 고난이 그에게 찾아왔습니다. 그것은 의사로부터 간암이라는 소식을 들은 것입니다. 그의 간증은 이렇게 이어집니다.  

 

2008년 5월 30일 저는 간암진단을 받았습니다. 그 순간 받은 엄청난 스트레스와 공포감을 말로 표현할 수가 없었습니다. 암 진단 받고 1주일 만에 몸무게가 5키로 그램 이상 빠져버렸습니다. 진단받고 수술 날까지 2주일간 기다리는 그 시간은 생지옥이었으니까요. 입원수속을 밟고 병실에 들어가 보니, 하루 전 또는 이틀 전에 수술한 환자들, 그리고 금방 수술하고 들어와 고통스러워하는 환자들을 보는 순간, “나도 이틀 후면 저렇게 되겠구나”고 생각이 들었습니다. 암 진단 받는 순간보다 더 심한 공포감이 밀려와 속된 말로 미칠 지경이었습니다. 그러나 우리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자녀들이 당하는 환난과 고통을 그냥 내버려두지 않으신다는 것을 깨닫게 하셨습니다. 당시 교회의 한 부목사님이 병원에 볼일이 있어 오셨다가 제게 들르신 겁니다. 목사님께서는 제 손을 잡고 간절히 기도해 주셨습니다. 우리 하나님은 정확히 타이밍을 맞추시는 하나님이셨습니다. 저의 입원 날짜와 목사님 병원 볼일을 일치 시켜주셨던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 여러 가지 사건 속에 개입(介入)하시는 경우들이 종종 있습니다. 하지만 이것도 믿음의 눈으로 볼 때만 가능한 것입니다. 믿음의 시각으로 보지 않으면 어떤 일도 하나님의 간섭(干涉)이라는 생각이 결코 들지 않습니다. 그래서 일상에서 하나님의 간섭을 전혀 경험하지 못하고 살아가는 성도들이 많은 것입니다. 주위 사람들은 평범한 일 속에도 하나님을 만나고 하나님의 숨결을 느꼈다고 말하는데, 큰 사건 속에서도 전혀 하나님의 간섭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모든 것을 늘 세상적인 관점에서 바라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한심하고 부끄러운 삶을 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조차 느끼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영적인 눈으로 우리의 삶을 바라보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말씀이 필수적입니다. 말씀을 읽고 묵상(黙想)하지 않거나 하나님의 말씀을 공부하지 않으면 올바른 믿음의 시각을 가질 수 없습니다.

  

오랫동안 예수를 믿고 교회에 출석하고 직분자이지만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성경을 완독한 적이 없는 경우도 있습니다. 성경 전체를 한 번 읽어보려는 시도를 단 한 번도 해보지 않은 분들도 있습니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반드시 성경을 읽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진 적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혹은 시도는 해 보았지만 아직까지 창세기부터 요한계시록 까지 성경 66권을 모두 읽어보지 못한 분들도 참으로 많습니다. 그래서 성경을 여러 번 읽은 분들, 다독(多讀)한 분들의 이야기는 나와는 전혀 다른 세상의 이야기로 들립니다. 더욱이 하나님의 말씀을 규칙적으로 묵상한 경우도 없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읽지 않기 때문에 묵상도 하지 않습니다. 그저 예배에 참석하여 설교를 통해 들은 것이 자신이 알고 있는 성경의 전부입니다. 또한 이런 저런 이유로 체계적이고 규칙적으로 성경공부를 해 본적도 없습니다. 그래서 성경을 너무도 모릅니다. 성경을 제대로 찾지도 못합니다. 익숙하지 않는 신구약 성경을 신속하게 찾지 못합니다. 또한 오랫동안 교회에 출석해 수많은 설교를 들었기 때문에 어디서 들은 것 같기는 하지만 그 말씀이 어디에 있는 지 정확하게 알지 못합니다. 그래서 예수 믿은 기간과 관계없이 이단과 사이비의 속삼임에 쉽게 넘어갑니다. 이렇게 살고 있다면 한심하고 부끄럽게 여겨야 합니다. 수술 이전과 과정, 그리고 이후에 계속적인 하나님의 간섭과 개입을 인정하는 집사님의 간증은 이어졌습니다.  

 

목사님께서 병실을 떠나신 후 불과 2~3분여의 기도였지만, 그때 제가 기도의 능력이 얼마나 큰지 깨달았습니다. 그 엄청난 스트레스와 공포감이 한순간 싹 사라지고 제 마음이 얼마나 평온해지는지 세상 사람들이 들으면 거짓말이라고 하겠지요. 그때 저는 깨달았습니다. 좋으신 하나님께서 우리들의 모든 삶을 주관하시고 간섭하시고 계신다는 것과 기도의 엄청난 능력을요. 수술 당일 날 수술대기실에서 10분간 대기하면서도 두려움 하나 없이 마음이 얼마나 평온한지 몰랐습니다. 세상적으로는 도저히 이해가 안 되겠지요. 하나님께서 의사의 손을 통해서 수술도 잘 받게 해 주셨습니다. 수술 후 입원실에서 있으면서 저의 지나온 신앙생활을 생각해 보게 되었습니다. 너무나 한심하고 부끄러웠습니다. 어떡하겠습니까! 하나님께 회개하고 앞으로 남은 시간을 하나님께 순종하며, 감사하며, 불평하지 않고 말씀을 먹으며, 하나님을 기쁘게 해드리는 삶을 살겠다고 제 나름대로 조심스럽게 하나님께 약속드리고 그렇게 살기위해 이 시간까지 노력하고 있고 앞으로도 노력해 나갈 것입니다. 성경은 신·구약 7번 읽었고 지금 8번째 읽고 있습니다. 앞으로 신앙생활에 있어서 하나님의 팬이 아닌 그리스도의 제자로 살아가기 위해 더욱 노력 할 것입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아멘. 

 

그는 기도의 능력이 얼마나 큰지를 확인하고 놀라게 되었습니다. 3대에 걸쳐 예수를 믿은 가정인데. 얼마나 많이 기도하는 것을 보았고, 또 자신도 얼마나 많은 기도를 했겠습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2~3분의 짧은 기도가 그렇게 힘이 있다는 것을 처음 깨닫게 된 것입니다. 사실 우리의 기도생활도 집사님의 그것과 크게 다를 바가 없습니다. 평소에 기도의 삶을 사는 사람들 중에도 기도의 능력을 제대로 알지 못하고 예수 믿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습니다. 기도가 얼마나 큰 힘이 있는지를 체험하지 못한 성도들이 많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존 번연(John Bunyan)의 말을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가 기도한 후에는 그 기도보다 더 많은 일을 할 수 있다. 그러나 기도하기 전에는 그 만큼의 일도 할 수 없다.”  

 

새벽기도회, 금요기도회, 혹은 다른 기도회에 규칙적으로 나와 기도한 적이 없는 성도들도 많습니다. 기도하지 않으면 안 되는 일이 생겼을 때만 교회의 기도실에서 모습을 볼 수 있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하지만 정말 특별한 경우 말고는 교회에서 진행하는 기도회가 나와는 관계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너무도 많습니다. 난 늦게 잠을 자기 때문에, 그래서 올빼미형 인간이기 때문에 결코 새벽기도회에 나올 수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밤에 시작되는 기도회 역시 나와는 전혀 관계가 없다고 생각하며 아예 발걸음을 교회로 돌리지 않습니다. 물론 어디에서나 자신만의 개인적인 기도시간을 갖고 정기적으로 기도하면 무슨 말을 하겠습니까? 그러나 교회에서 진행하는 기도회에 참석하지 않는 사람들의 대부분은 개인적인 기도 시간도 갖지 않습니다. 그래서 기도의 능력을 경험한 적이 거의 없습니다. 기도의 응답이 무엇인지를 알지도 못합니다. 남들은 기도하면서 하나님의 뜻을 깨닫고, 하나님의 음성을 듣기도 하고, 하나님의 응답을 받았다고 하는데 자신을 이런 체험을 전혀 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토마스 왓슨(Thomas Watson)의 말처럼 하나님의 사람은 하나님께 기도하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사람은 기도의 사람이다. 은혜가 쏟아져 들어오면 기도가 쏟아져 나간다. 기도는 우리의 영혼이 하늘과 접촉하는 것이다. 하나님은 성령으로 우리에게 오시고 우리는 기도로 그분께 나아간다.”  

 

사실 오래 동안 예수를 믿고 교회를 다녀도 돌아보면 한심하고 부끄러운 것이 한, 두 가지가 아닙니다. 교회에 나온 지 얼마 되지 않은 분들의 간증은 오래 동안 교회에 머물고 있던 사람들을 부끄럽게 할 때가 있습니다. 짧은 신앙생활을 통해서도 새신자들이 얼마나 빠르게 믿음이 성장하고 있는지를 확인하고는 놀랄 때가 참으로 많습니다. 새 가족 중에는 규칙적으로 성경을 읽고, 공부하고, 묵상하는 삶을 통해 변화된 자신의 모습을 고백하기도 합니다. 그들이 간증하는 중에 사용하는 용어와 단어들은 매우 오래 동안 말씀과 믿음 안에서 생활한 듯한 인상을 받게 만듭니다. 교회에 나와 신앙생활을 한지 불과 얼마 되지 않았지만 풍성한 은혜 체험을 통해 새로운 인생을 살고 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들의 변화된 모습은 오래 믿음 사람들을 부끄럽게 만듭니다.  

 

우리 모두가 인정하듯이 주일예배만 드리고는 쏜살같이 교회를 빠져 나가는 분들이 생각보다 많습니다. 단 한 번도 정기적으로 모임을 갖는 교회의 여러 기관과 부서에서 봉사한 적이 없는 분들도 있습니다. 다음세대교회의 교사, 찬양대원, 주차봉사, 주방봉사 등의 부서에서 정기적으로 봉사한 적이 없는 경우도 있습니다. 물론 남선교회나 여전도회 임원이나 부장 등 역원으로 봉사한 적은 있을지 모르지만 1년 이상 동안 꾸준히 자치기관이 아닌 교회의 공식적인 기관과 부서에서 책임감과 사명감을 갖고 봉사한 적은 거의 없는 분들이 의외로 많습니다. 또한 하나님의 은혜가 너무도 감사하여 주체할 수 없는 기쁨으로 예물을 드려본 적이 없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나를 위한 투자, 자녀들을 위한 헌신에는 아낌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는 얼마나 인색한지 모릅니다. 나 스스로가 놀랄 정도로 하나님께 바친 예물(禮物)이 있습니까? 때때로 내가 한심하고 부끄러운 적이 없습니까?  

 

그리스도인의 가장 큰 사명은 영혼구원의 두구(道具)가 되는 것입니다. 때를 얻든지 얻지 못하든지 복음을 전하는 일에 항상 힘쓰기를 하나님은 원하고 계십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혼을 사랑하고 구원하는 일인 전도에 무관심한 분들이 의외로 많습니다. 주변에 예수를 믿지 않는 사람들이 많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아직 까지 단 한 사람도 전도해 교회로 인도한 적이 없는 분들도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과 그리스도의 은혜로 구원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주변에 있는 이웃, 직장동료, 친구 등 영원히 죽을 수밖에 없는 사람들을 보고서도 안타까운 마음이 없다면 그것은 문제입니다. 혹은 있더라도 예수 믿으라고 말할 용기가 없어 말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지금까지 맺어온 좋은 관계가 깨질까봐 염려하는 마음 때문에 말하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심지어 부모, 형제가 예수를 믿지 않는데도 불구하고 입을 꽉 다물고 있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그들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것이 아닙니다. 기회를 잡아 지혜롭게 예수가 그리스도임을 전하는 것이 상대방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것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한 집사님의 고백처럼 우리는 그리스도인으로서 더 이상 한심하게 살아서는 곤란합니다. 그리스도의 제자(弟子)로서 더 이상 부끄러운 삶을 살아서도 안 됩니다. 왜냐하면 이 땅에서의 삶은 아침에 피었다 지는 들의 꽃과 같고 안개처럼 그 수명이 너무 짧기 때문입니다. 내가 스스로 생각해도 지금의 삶이 한심하고 부끄럽다면 주변의 사람들이 보기에도 마찬가지입니다. 더욱이 모든 것을 알고 계시는 하나님 보시기에는 말할 것도 없습니다. 우리가 모든 일에 하나님으로부터 칭찬을 들을 수는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질책(叱責)은 듣지 않도록 주의해야 합니다. 어떤 경우에도 낙제 점수는 받지 않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평균 점수는 받을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또한 날마다 그리스도의 향기(香氣)를 풍기며 살지 못해도 좋습니다. 그러나 악취(惡臭)는 풍기지 말아야 합니다. 내 자신이 생각하기에도 더 이상 한심하고 부끄러운 모습으로 살지는 맙시다.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빛의 자녀로서, 그리스도의 제자로서 조금이라도 더 떳떳하게, 더 멋있게 생활하여 하나님의 얼굴에 웃음을 드릴 수 있도록 하십시다.  

 

2018년 11월 6일

김승학 목사

 

  ◁ 이전글   다음글 ▷
목록

Copyright ⓒ 2009 안동교회 All rights reserved.
대표 : 안동교회 / 전화 : 054) 858-2000/2001 / 팩스 : 054) 858-2002  Designed by ando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