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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1-04 18:54:18 조회 : 965         
가슴으로 낳은 교인들의 거룩한 잔치​ 이름 : 김승학   

가슴으로 낳은 교인들의 거룩한 잔치

 

 

전국에 흩어져 있던 가족들, 모두가 오래간만에 교회에 모였습니다. 지난 30년 동안 교회를 거쳐 간 이들이 반가운 얼굴과 즐거운 마음으로 모두 모였습니다. 30년 동안 교회를 섬긴 여성 목사님의 위임예식과 2명의 안수집사와 2명의 권사 임직예식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에벤에셀 하나님께서 여기까지 인도하시고 함께 해 주심을 감사드립니다.” 위임예식을 위해 준비한 인사말을 읽을 때 목사님의 음성은 떨리고 있었습니다. 제가 그의 뒤에 앉아 있었기 때문에 흘리는 눈물을 보지는 못했지만 말을 잇지 못하고 울먹거리는 것을 분명하게 느낄 수 있었습니다. 아마 그럴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그가 이 교회에 부임한 것은 30년 전, 꽃다운 나이인 28세이었습니다.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크고 비밀한 것을 보이리라”(램 33:3). 이 약속의 말씀을 붙잡고 하나님께 매달렸는데, 그 때 마다 하나님께서 응답하셨음에 감사하지 않을 수 없다고 인사말을 통해 고백했습니다. 더욱이 그는 지금까지 선하게 인도하신 하나님의 은혜를 결코 잊을 수 없다고 말했습니다.

 

“사람이 마음으로 자기의 길을 계획할지라도 그의 걸음을 인도하시는 이는 여호와시니라”(잠 16:9). 위임예식을 마친 며칠 후 목사님을 만났을 때 인사말을 준비하면서 이 말씀을 적어놓고는 더 이상 원고를 쓸 수 없었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이 대목에서 걸린 이유를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자유로운 여인으로 살고 싶었는데, 한 교회에 30년을 머물게 하신 하나님의 뜻에 순종해야 하잖아요?” 그래서 아 성경 말씀을 적고는 더 이상 어떤 글도 쓸 수 없었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는 지금까지의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임을 고백했습니다. 지난 30년 동안 최선을 다해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는 사명을 감당함으로써 주님의 몸인 교회가 하나님 나라를 세워왔음을 감사하고 있었습니다. 앞으로 자신이 섬기는 교회가 사람을 키우고, 세상에 소망을 주는 신앙공동체가 되기를 소원한다는 말을 하고는 손수건으로 눈물을 닦았습니다. 지난 30년 동안 사명감을 갖고 열심을 다해온 목사님의 사역을 아는 사람들 모두는 숙연해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28세 때 혼자의 몸으로 수해로 파손된 교회에 부임한 여성. 이전에 시무하던 일부 교역자들은 수개월도 버티지 못하고 떠났던 교회였습니다. 교회의 명패는 달았지만 교회의 사명을 감당하지 못해 교회라고 말할 수조차 없는 교회였습니다. 바로 직전의 전임자는 이 교회에 부임하고 나서 짐을 풀지 않고 지내다가 결국에는 임지를 옮겨 전도사님이 도착하기 전, 이미 수개월 동안 비어있는 상태였습니다. 교역자들이 너무나 자주 풀었던 짐을 싸 교회를 떠나는 것을 본 당시 고등학생과 대학생 등 학생 교인들은 여전도사님이 부임하기를 간절히 기도했다는 것을 후에 들었다고 합니다. 남성 교역자 보다는 여성이 좀 더 오래 교회에 머물 가능성이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이 대학생은 지금 교회의 시무장로가 되었고, 고등학생은 목사가 되어 타지에서 담임목사로 교회를 섬기고 있습니다. 그는 정말 여러 면에서 너무도 열악했던 교회에 부임했던 것입니다.

 

30년 전 그가 교회에 도착했을 때 예배당을 보고는 무척 놀랐다고 합니다. 수해로 인해 예배당 담도 무너지고 토사가 쌓여있어 폐허와 같았습니다. 이 때 교회 옆에 살고 있던 한 할머니의 말은 당시 교회의 형편을 너무도 진솔하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교회가 문을 닫았는데 어떻게 왔냐?” 이 말을 들은 그는 더 이상 생각할 여유도 없이 즉시 이렇게 대답했다고 합니다. “잠시 후에 돌아갈 겁니다.” 아마 이 교회에 온 자신이 한 없이 부끄러웠기 때문에 이렇게 대답했을 것입니다. 정말 그냥 돌아가고 싶었지만 그래도 무너진 예배당에 들어가 기도한 후에 돌아가고 싶은 생각이 들어 예배당 안으로 들어와 보니 흙과 먼지가 쌓여 있어서 도저히 예배당 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고 합니다. 하지만 그는 의자에 쌓인 먼지와 흙을 털고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 제가 뭘 잘못했는데, 저를 이런 곳에 오게 하셨어요? 전 이곳에서 살 수 없어요.” 그 때 그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습니다. “네가 이곳에서 사역을 못하면 너는 어떤 곳에서도 아무것도 할 수 없단다.” 이 음성을 들은 전도사님은 꼼짝 없이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게 됩니다. 교회를 떠나지 못하고 그 때부터 이 교회를 섬기기 시작한 것입니다. 30년 전에는 마을에 아이들이 많았다고 합니다. 밤이 되면 처녀 전도사님이 왔다고 아이들이 방으로 돌을 던지기도 했답니다. 문만 열면 바로 마당인데, 정말 무서웠다고 그는 그 때를 회고했습니다. 어떻게 그 때를 견디었는지, 모든 게 은혜 아니고서는 설명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용각은 용 용(龍)에 뿔 각(角)을 씁니다. 글자 그대로 해석하면 용각(龍角) 마을은 용 뿔 마을입니다. 항공 촬영한 용각 마을은 용의 뿔과 너무 닮았다고 합니다. 용각 골짜기가 용 뿔의 모양과 너무 많이 닮았기 때문에 용각이라는 지명이 탄생했던 것입니다. 100년 전만 하더라도 호랑이, 늑대, 여우, 노루, 쪽제비 등의 울음소리로 마을 주민들이 두려움에 떨었다고 하는 외진 곳의 마을이었습니다. 가난을 탈출하기 위해 산의 나무와 풀을 태워 밭으로 만들었고, 나무껍질이나 풀뿌리가 반찬으로 식탁에 올라오기도 했다고 합니다. 이런 용각에 한 여전도사님이 교회를 섬기기 위해 30여 전에 들어간 것입니다. 30여 년이 지난 오늘, 용각 마을에는 주민들이 인정하는 교회, 용각 교회가 자리 잡게 되었습니다. 이 교회에 부임한 교역자들은 용의 뿔에 눌려 다들 도망갔는데 이 전도사는 용 뿔을 삶아 먹고 승승장구한다는 이야기를 한다고 합니다. 이전에 부임한 교역자들은 용의 뿌리에 눌려 패잔병이 되어 교회를 떠났지만 이 전도사는 용 뿌리를 고아 먹고 오히려 교회를 든든히 세웠다고 놀라움을 표한다고 합니다.

 

목사님은 그리 많은 정보를 듣고 난 후에 용각 교회를 섬기겠다는 결심을 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영양에서 교회를 섬기던 그는 한 목사님으로부터 이 교회를 소개받게 됩니다. 그런데 30명의 교인이 있는 교회라는 소개를 받았지만 정작 예배에 참석한 회중의 수는 학생만 3명이었다고 합니다. 그것도 앞서 언급한 것처럼 대학생 1명과 고등학생 2명이었습니다. 이 교회를 소개 받았을 때 다른 한 목사님은 안동이 아닌 다른 지역의 한 교회를 소개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처음 소개받은 용각 교회가 마음에 끌렸다고 합니다. 그래도 갈등이 생겨서 그는 기도원으로 들어가 하나님의 뜻을 찾고자 했습니다. 그는 기도 중에 ‘담임’이라는 소리를 듣게 됩니다. 그리고 30년 전 지금의 교회에 이삿짐을 자동차에 싣고 교회로 가게 됩니다. 단 한 번도 방문한 적이 없는 교회, 그러나 자신이 섬겨야 하는 교회로 향했습니다. 가도 가도 교회가 보이지 않았습니다. 함께 동행 했던 장로님도 교회 위치가 정확히 맞는 지, 계속해서 교회로 가는 길이 맞냐고 물었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두 사람 모두 초행길이었기 때문에 교회가 나타나기 까지 그저 가야만 했습니다. 오늘날처럼 네비게이션이 있었다면 불안하거나 답답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출발해 한참 만에 도착한 교회. 교회의 형편은 앞서 언급한 그대로였습니다. 아마 그 때 그는 이 교회에서 오늘날까지 30년을 섬길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던 것입니다.

 

부임한 지 3개월이 지났을 때 교회를 떠나야겠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고 그는 말했습니다. 그런데 그 때 마을에 살고 있던 조손 가정의 어린 형제가 교회를 찾은 것입니다. 할머니가 돌보고 있던 어린 형제가 교회에 오자 그는 떠날 생각을 접게 됩니다. 할머니가 돌아가신 후 이 형제는 교회 사택으로 들어와 함께 살게 됩니다. 당시 교회는 예배당과 사택으로 구성되어 있었습니다. 2개의 방과 주방으로 구성된 작은 사택에서 전도사님과 아이들은 함께 생활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 후에 마을에 있던 다른 아이들이 교회로 들어왔습니다. 이 사실을 알게 된 다른 마을에 살고 있던 아이들도 교회에 와서 함께 생활했습니다. 이러한 사실을 알게 된 안동시에서는 흔히 말하는 비행청소년을 교회로 보냈습니다. 그래서 함께 생활한 아이들 중에서 가장 많은 연령대는 중학생이었다고 합니다. 평범한 가정에서도 다루기 힘든 나이입니다. 이들을 다루는 것은 정말 힘들었다고 전도사님은 말했습니다. 사랑과 기도만으로 케어(care) 할 수 없는 것을 알게 된 전도사님은 후에 사회복지학을 공부하게 됩니다. 보다 전문적인 지식이 필요함을 깨달았기 때문이었습니다.

 

함께 생활할 공간이 너무 협소했고 2개의 방으로 남·여를 구분해야 했기에 수용할 수 있는 최대 인원은 6명 이상은 자신의 한계를 넘는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더욱이 자신과 함께 생활한 가장 어린 아이는 1학년이었는데, 이 때 정말 힘들었다고 그는 말했습니다. 그 때 나이가 29세였는데, 학교에서 하는 운동회도 가야하고 준비물 등 손이 가는 게 너무 많았다는 것입니다. 정말 엄마의 역할을 한 것입니다. 그러다가 15년이 흐른 후 교육관을 건축하게 됩니다. 처음에 교육관은 함께 생활하는 아이들을 위한 건물은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은혜로 건물이 준공되고 난 후에는 이들에게 유익한 공간이 되었습니다. 새로운 건물이 신축된 후에도 제대로 돌보기 위해 수용할 아이들의 수를 6명으로 제한했다고 합니다. 그렇게 30년 가까이 동안 배출된 친구들은 약 30명에 이릅니다. 평균 1년에 한 명씩 배출된 것입니다. 이들은 안동을 떠나 전국 곳곳에서 살고 있습니다. 이들은 서울, 경주, 대구, 부산, 인천 등 전국에 흩어져 전문 직업인 간호사, 치위생사, 엔지니어 요리사 등의 직업을 갖고 생활하고 있습니다. 소녀가장 초등학교 5학년의 예쁜 여자 아이가 와서 함께 살게 되었고, 그는 말씀과 믿음으로 잘 성장하여 간호사가 되어 건강한 사회인으로 그리스도인으로 살고 있기도 합니다. 전도사님은 이들이 다른 직업을 선택하기 보다는 전문성을 가진 직업을 갖도록 설득했다고 합니다. 부모가 없는 이들이 다른 직업을 갖고 일했을 때 불이익을 당할 수도 있었기 때문입니다. 비록 그들의 생활터전이었고, 모교회인 용각 교회에 매 주일마다 올 수는 없지만 멀리 있는 삶의 자리에서 열심히 살고, 또한 교회를 섬기고 있습니다.

 

예식을 마치고 30년 동안 교회를 거쳐 간 믿음의 식구들과 한자리에 앉아 위임예식 및 임직예식을 복기했다는 이야기를 들을 기회가 있었습니다. 좀 더 좋은 인사말을 했어야 했는데, 부족했다는 생각이 들었다는 것입니다. 좀 더 세련되게 예배와 임직예식을 집례하고 싶었는데, 실수 연발이었다고 그는 말했습니다. 빠진 게 많았다고 그는 말했습니다. 경안노회 여전도회 연합회 임원들이 참석한 것을 감사에 포함시키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쉽다고 했습니다. 또한 예식 3주전 한 권사님이 전화를 하셔서 임직예식을 위한 꽃꽂이를 자신이 하겠다고 제안했는데, 그 자리에 참석한 그분을 언급하지 못한 것이 송구스럽다고 말했습니다. 매끄럽지 못한 부분도 없지 않았지만 이 예식은 너무도 감동적이었습니다. 다른 예식에서는 전혀 느낄 수 없는 감동이 있었음을 어느 누구도 부인할 수 없습니다. 이 감동은 각본에 의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연습된 감동도 아닙니다. 절절한 감동은 30년 동안 헌신한 교회사역의 열매라고 할 수 있습니다. 30년 동안 행해진 진정성 있는 한 교역자의 목회의 열매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의 헌신과 희생을 알고 있는 사람은 예식의 한 순서, 한 순서가 모두 역사요 감동일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이 교회가 촌(村)에 위치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노인은 거의 없습니다. 정확하게 노인 연령에 해당하는 교인은 3명밖에 되지 않습니다. 이 교회는 젊은이들이 주를 이루는 아주 특별한 교회입니다. 평균 연령은 40세도 되지 않습니다. 요즘 시골에 이런 교회는 없습니다. 촌에 위치한 모든 교회는 평균 연령이 70세도 넘습니다. 그런데 이 교회는 다릅니다. 그럴만한 이유가 있습니다. 그것은 이 교회의 구성원이 일반적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보통 교회는 그 마을 주민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이 교회는 꼭 그런 것은 아닙니다. 이곳저곳에 있던 혼자된 아이들이 교회의 구성원입니다. 아이들은 교회 안에 있는 건물에서 성장합니다. 말씀과 믿음으로 성장해 성인이 되면 삶의 거처를 교회에서 다른 곳으로 옮기지만 교회를 완전히 떠나는 것은 아닙니다. 완전히 다른 지역으로 이사하지 않는다면 계속 교회에 나와 예배도 드리고 봉사도 하기 때문입니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그도 그럴 것이 전도사님이 교회에 부임하기 전 까지 부임한 일부 교역자들이 수개월도 버티지 못하고 짐을 싸 교회를 떠났고, 심지어 어떤 교역자는 이삿짐을 풀지 않고 있다가 곧 바로 임지를 옮겼다고 합니다. 이처럼 교회가 온전히 세워지는 것은 참으로 쉽지 않았습니다. 이 때 교회 이름을 변경하려는 시도도 있었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성경에서 용(龍)은 사탄을 상징하기 때문에 교회 이름에 용자가 들어가는 것을 꺼리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전도사님의 부임 후 교회가 든든히 세워져 갔고, 마을에 선한 영향력을 발휘하게 되었기 때문에 그 시도는 중단되었습니다. 영적 전쟁에서 교회가 승리했는데 굳이 교회 이름을 변경할 필요가 없다는 생각에 용각이라는 이름을 자랑스럽게 그대로 사용하고 있다고 그는 말했습니다.

 

그의 고백은 계속되었습니다. 30년의 긴 사역, 얼마나 필요한 것이 많았겠습니까? 그 때 마다 하나님께서 필요한 사람들을 붙여 주셨다는 것입니다. 교육관을 건축할 때도 하나님께서는 꼭 필요한 사람들을 보내시고 만나게 하셨다는 것입니다.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소낙비처럼 부어 주셨다고 고백합니다. 교육관 건축을 앞두고 임지를 옮길 기회가 있었는데, 그동안 함께 생활했던 아이들이 눈에 밟혔다고 합니다. 비록 내 몸으로 낳지는 않았지만 가슴으로 낳은 아이들을 생각하니 떠날 수가 없어 교회에 정착을 결심했습니다. 그러나 그에게는 아이들이 생활할 교육관이 필요했습니다. 그 때 그는 하나님께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하게 됩니다. “교육관은 꼭 필요한데, 하나님 분명한 사인을 보여주세요. 보여주시지 않으시면 엄마 아빠 없는 아이들 두고 전 떠나겠습니다.” 기도를 마친 후 얼마 되지 않아 교회 출신 한 젊은 여성으로부터 전화가 걸려 왔습니다. “전도사님, 제가 돈을 부칠 게 있어요. 교육관 건축에 사용해 주세요.” 이 친구의 사정과 형편을 너무나 잘 알고 있던 전도사님은 이렇게 말했답니다. “아니 시집갈 때 써야지.” “아닙니다. 전도사님. 지금까지 모은 3800만원을 보냅니다. 교육관 건축을 위해 사용해 주세요.” 결국 이 헌금은 교육관 건축의 종자돈(Seed Money)이 되었습니다.

 

교육관 건축에 필요한 예산은 1억 2천만 원이었답니다. 전도사님이 직접 설계를 하고, 건축업을 하는 신실한 지역 교회의 한 집사님과 상의를 하게 됩니다. 자신의 계획을 설명하니 이 집사님이 처음에는 반신반의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이 전도사님의 의욕을 보고는 집사님은 공사를 맡겠다는 결심을 하게 됩니다. 그런데 기초 공사하는 데만 종자돈 3800만원을 다 사용하게 됩니다. 앞으로 갈 길이 먼데. 더 이상 준비된 건축비는 없는 상태에서 전도사님은 제직회를 열고 낙심하고 있는 제직들에게 이런 말을 했다는 것입니다. “다른 말은 하지 말고 이 말만 해 주세요. 하나님이 하십니다. 하나님이 하십니다.” 그런데 준비된 공사비가 없어 공사가 중단될 때 쯤 되면 신기하게도 하나님께서는 돕는 손길을 보내어 주셨다고 합니다. 공사가 중단되지 않도록 공사비를 채워주신 것입니다. 그러던 어느 날 서울 영락교회 여전도회에 후원을 요청하는 편지 한통을 보내게 됩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당시 여전도회 전체모임에서 헌금을 했는데 거의 5000만원이 모아졌다는 것입니다. 약간의 부족금을 채워 5000만원을 용각 교회에 보내 극적으로 공사를 마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거의 공사를 마친 후 인테리어 비용으로 2000여 만 원이 더 들었지만, 이것도 하나님의 은혜로 채워지게 됩니다. 공사 시작부터 완공 까지 단 4개월 만에 모든 것이 끝나게 된 것입니다.

 

함께 생활했던, 또한 생활하고 있는 가슴으로 낳은 자녀들에게 그는 늘 말했답니다. “얘들아, 말씀보다 앞서면 안 된다. 얘들아, 성령보다 앞서면 안 된다.” 용각 교회 출신들은 목사님이 전한 이 말을 늘 마음에 새기고 살아갑니다. 용각 교회 출신 중에서 무려 4명이 목사가 되어 지역교회를 잘 섬기고 있습니다. 시골의 아주 작은 교회에서, 그것도 일천한 역사를 가진 교회에서 4명의 목사가 배출된 것이 누구 때문이겠습니까? 누가 가장 큰 영향을 주었겠습니까? 그것은 말할 것도 없이 이 여성 목사님입니다. 목사는 그리 쉽게 되는 것이 아닙니다. 우선은 하나님의 부르심이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자신의 결단도 있어야 합니다. 또한 일반적으로 주위에 선한 영향을 주는 롤 모델과 같은 사람이 있어야 합니다. 이 롤 모델과 같은 사람이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입니다. 이들에게 목사님은 당연히 롤 모델이 되었고, 어떤 친구에게는 목사가 될 꿈을 갖고 기도하게 했던 것입니다. 목사가 된 한 친구가 이런 감사패를 이 날 전달했습니다. “목사님께서는 주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용각 교회를 위하여 삼십년을 며칠 같이 여기시면서 목회를 해오셨습니다. 교회가 어려웠을 때 떠나지 않은 것만으로도 감사를 드립니다. 환경과 사람을 바라보지 않으시고 살아오셨고 또한 제게 늘 말씀과 성령을 앞서지 말라시던 음성을 잊지 않겠습니다. 항상 건강하시고 아름답고 향기 나는 목회가 되시길 바랍니다. 부족하지만 감사와 존경과 사랑을 담아 드립니다.”

 

이번에 임직자를 세우는 것도 그리 쉬운 일은 아니었다고 그는 밝혔습니다. 처음에는 여러 가지 이유로 집사, 권사가 될 수 없다는 반응들이 나왔다고 합니다. 어떻게 보면 교회를 위해 억지로 직분을 맡기는 것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처음에는 죽어도 못하겠다고 거부의사를 밝혔다고 합니다. 그 때 목사님은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잘 알고 있지 않느냐? 나도 죽어도 목사 못한다고 했다. 하지만 목사가 되었고, 이제 목사 위임식을 갖는다. 또한 교회를 위해서는 임직자가 계속 세워져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당신들의 임직이 필요하다.” 이런저런 이유를 내세우며 직분을 받을 수 없다고 했던 임직 대상자들에게 목사님은 다시 이런 말을 이어 갔다고 합니다. “계산하지 말라. 하나님에게는 계산이 통하지 않는다.” 결국 이들은 직분을 수용하고 감사함으로 임직예식에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임직예식을 마친 후 이들의 자세가 완전히 바뀌었다고 합니다. “우리가 (임직을) 하려고 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우리와 함께 일하시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생각하며 목사님께 부끄러운 마음이 듭니다. 앞으로 열심히 하겠습니다. 잘 지도해 주세요.” 임직자들의 말을 내게 전할 때 목사님의 얼굴은 환했습니다. 그러면서 하나님이 임직자들을 매일 만져 주셔서 얼마나 감사한지 모른다고 고백했습니다.

 

최근에 용각 교회는 마을 주민들에게 또 다른 신선한 충격을 주고 있습니다. 그것은 정신지체장애 부녀가 교회의 시설로 들어 온 것입니다. 지금까지 목사님은 단 한 번도 정신지체장애를 가진 사람과 함께 생활한 적은 없었습니다. 부모를 잃고 제 멋대로 생활하던 초등학생, 청소년들을 돌보는 일을 수십 년 해 와서 이 부분은 전문가라고 할 수 있지만 정신지체장애를 가진 아이는 처음이었다는 것입니다. 처음에는 많이 답답했다고 합니다. 이 친구는 글도 읽을지 몰랐다고 합니다. 새벽기도회 시 참석한 모두 사람들은 돌아가며 함께 성경을 읽는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 친구가 새벽에 나오기는 하는데, 성경을 전혀 읽지 못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모두의 기도제목이 되었다고 그는 말했니다. “OO가 성경을 읽게 해주세요.” 그러던 어느 날부터 아버지라는 단어를 읽을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시간이 지나감에 따라 아버지의 아 자를 알게 되고, 버 자를 알게 되어 결국에는 아버지를 읽을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점차 읽을 수 있는 문장이 늘어 지금은 곧잘 성경을 읽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주일 예배 시 전교인이 성경 한 구절 암송하는 일에도 참여한다는 것입니다. 특히 이 친구는 매일 아침 예쁘게 옷을 차려 입고 버스를 타고 시내로 나갑니다. 미용실에서 일하기 위해서입니다. 아침, 저녁 버스를 타고 오고 가는 이 친구의 변화된 모습을 본 마을 주민들은 놀라고 있습니다. 교회에 오면 이렇게 새사람으로 바뀔 수 있다는 확신을 마을 주민들에게 주어 주민들로부터 더욱 인정받는 교회가 된 것입니다. 용각 교회는 마을에 향기로운 그리스도의 향기를 풍기고 있습니다. 우리 모두에게 자랑스러운 교회가 아닐 수 없습니다.

 

1985년 7월 29일 창립된 용각 교회는 이연숙 목사님이 부임한 이후 계속 리모델링(remodeling)을 하고 있습니다. 처음 건축된 예배당을 계속해서 수리하고 고쳐 사용하고 있습니다. 이번 목사 위임과 임직예식을 앞두고 임직자들의 헌신으로 또 다시 리모델링을 했다고 합니다. 깨끗하고 세련되게 수리된 예배당은 어머니 품과 같은 포근한 느낌을 주었습니다. 크기는 작지만 시내 어디에 내놓아도 손색이 없는 예배실이었습니다. 용각 교회는 지난 30여 년 동안 계속해서 사역과 건물을 리모델링을 하는 교회입니다. 사택과 교육관은 건축된 이후 필요에 따라 수리하여 사용해 왔습니다. 사역에 맞게 고쳐서 사용하고 있는 것입니다. 더욱이 이연숙 목사님의 사역도 지난 30여 년 동안 계속해서 리모델링함으로써 하나님께 기쁨을 드리는 신앙공동체로 업그레이드(upgrade)되었습니다. 그 결과 용각 마을에 가장 적합한 교회와 목회로 자리 매김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늘 자신을 점검하고 성찰하고 수정하고 있는 용각 교회는 세월이 흐르면서 마을 주민이 인정하는 거룩한 교회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목사 위임과 함께 새롭게 시작될 이 목사님의 사역이 더욱 기대되는 것입니다. 아마 30년 전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 많은 후원자들이 여기저기서 이 목사님과 사역, 그리고 용각 교회를 지켜볼 것입니다. 또한 들려오는 용각 교회에 관한 소문에 귀를 기울일 것입니다. 그래서 이전보다는 엄청난 부담이 될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이들은 이 목사님의 사역과 교회를 위해 기도와 관심으로 후원도 할 것입니다. 그러니 너무 겁먹을 것은 없습니다. 지난 30년의 사역을 통해 하나님께 올려드린 영광보다 위임 이후에 펼쳐질 하나님의 영광이 더 크기를 저 역시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하고 후원할 것입니다.

 

2018년 11월 2일

김승학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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