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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7-29 02:49:29 조회 : 2017         
외국공항에서 발생한 해프닝(1) 이름 : 김승학   

보고 싶은 성도들에게 보내는 열네번째 글입니다. 시간이 지났지만 사정상 올리지 못한 글을 이제야  올립니다.     

외국공항에서 발생한 해프닝(1)


   생전 처음 비행기를 타고 다른 나라에 가는 사람들에게는 불안이 찾아옵니다. 단체 여행을 하는 분들에게는 가이드(Guide)가 동행하기 때문에 당혹스러운 일이 발생할 가능성이 적습니다. 설령 예상하지 못한 일이 갑작스럽게 발생해도 가이드가 알아서 다 처리할 것이라는 생각으로 불안의 정도는 그리 크지 않습니다. 하지만 혼자 해외에 나가는 사람들은, 특히 처음으로 출국하는 사람들에게는 목적지에 도착하기 전 까지 크고 작은 불안감이 엄습(掩襲)합니다. 언어 문제는 사람들을 더욱 위축시킵니다. 승객 대부분이 외국인이고 승무원도 외국인인 타국적(他國籍) 비행기일 경우 기내에서 제공하는 식사나 음료수를 주문할 때도 여간 불안한 것이 아닙니다. 승무원에게 음식에 관해 물어보려고 해도 용기가 나지 않습니다. 그래서 눈치껏 주문하고 꼭 필요한 행동만 하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비행시간이 경과해도 여전히 불안한 마음이 좀처럼 사라지지 않습니다. 목적지에 도착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그 곳에 상주(常主)하고 있는 분들의 안내나 동행 없이는 한 발짝도 움직이지 못할 때가 많습니다. 행동반경이 협소(狹小)해지는 것입니다. 이것은 초보(初步) 해외여행자에게 나타나는 어쩔 수 없는 현상입니다. 마찬가지로 새롭게 신앙의 여정을 시작한 사람들도 전혀 생각하지 못했던 해프닝을 겪습니다. 이러한 해프닝은 성숙한 신앙을 위해 거쳐야할 과정일 것입니다. 위기의 순간도, 해방의 시간도 있습니다. 불안도 평안도 경험합니다. 하지만 여러 사건들을 통해 때로는 주님의 뜻을 깨닫게 되고, 때로는 주님의 마음을 이해하게 됩니다. 그 결과 주님의 형상을 조금씩 닮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한 권사님이 해외여행에서 경험한 아찔한 순간을 소개합니다. 벌써 16여 년 전의 일입니다. 생전 처음으로 미국 워싱턴 D.C.를 방문하고 귀국할 때 해프닝(Happening)이 있었습니다. 워싱턴 D.C.에 있는 공항에서 미국 국적(國籍) 비행기를 타고 뉴욕의 케네디 공장으로 가 거기서 대한한공 비행기로 갈아타고 한국으로 돌아오는 여정(旅程)이었습니다. 직통으로 목적지까지 가는 것이 아니라 한 곳을 경유해 비행기를 바꿔 타는(Transit) 여정이었던 것입니다. 케네디 공항에서 비행기를 갈아 탈 수 있으면 세계 모든 공항에서 비행기를 탈 수 있다고 말할 정도로 세계에서 가장 복잡한 공항중의 하나가 케네디 공항입니다. 하필이면 바로 이 공항에서 권사님은 생각하지도 못한 일을 당하게 된 것입니다. 워싱턴 D.C.를 떠날 때 배웅했던 분은 공항에서 짐을 부치면서 한국에서 직접 찾을 수 있도록 했기 때문에 케네디 공항에서 짐을 찾을 필요 없이 비행기만 갈아타면 된다고 말했습니다. 또한 케네디 공항에 내리면 대한항공 비행기를 타는 곳까지 안내할 분이 준비되어 있으니 안심하라는 말도 했습니다. 


   그렇게 알고 케네디 공항에서 내린 권사님은 당혹스러운 일을 당합니다. 요즘은 대부분 비행장의 경우 비행기가 착륙하면 비행기에서 내려 셔틀버스를 타거나 도보로 건물 안으로 이동하지 않고 건물로 직접 연결된 통로를 통해 입국 수속 장소로 갈 수 있지만 그 당시 케네디 공항의 구조는 그렇지 않았나 봅니다. 건설한 지 오래된 외국 공항에 가면 비행장 한 가운데 승객들을 내려놓고 공항버스가 와서 승객들을 태우고 입국 수속을 해야 하는 건물 앞에 하차해주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얼마나 불편한지 모릅니다. 워싱턴에서 타고 온 비행기는 다른 비행기로 갈아타는 승객들을 비행장에 내려놓고 즉시 떠나 버렸습니다. 비행기들이 정차해 서 있는 곳에 내린 권사님은 미중 나오기로 약속된 사람을 기다리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기다려도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시간이 흘렀습니다. 당황이 되기 시작했습니다. 불안해지기 시작했습니다. 대한항공 비행기를 타는 장소로 가야 하는데 막막했습니다. 비행기 출발 시간이 정해져 있기 때문에 무작정 기다릴 수만도 없었습니다. 마중 나오기로 한 사람을 기다리다가 포기하고 워싱턴을 떠날 때 배웅했던 사람에게 들었던 대로 권사님은 공항 셔틀 버스를 타고 대한한공이 있는 곳으로 갈 수 밖에 없다는 생각을 점점 하게 됩니다.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 때 권사님은 너무도 익숙한 가방이 보았습니다. 워싱턴에서 타고 온 비행기가 몇 개의 짐을 비행장에 내려놓고 떠났는데, 그 중의 하나가 정말 눈에 익은 가방이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짐을 한국으로 직접 부쳤다는 말에 추호(秋毫)의 의심도 없었기 때문에 처음에는 권사님은 눈을 의심하면서도 자신의 것이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자꾸 가방이 눈에 들어 왔습니다. 신경이 쓰였습니다. 그래서 당신의 가방과 똑 같은 종류의 것이라고 생각도 했습니다. 권사님은 중간 기착지(寄着地)에서 짐을 찾을 필요가 없다고 강조한 말을 분명히 기억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아무리 보아도 자신의 가방이 틀림이 없었습니다. 똑 같은 종류의 가방일 가능성도 있지는 권사님 나름대로 가방에 자신만 알 수 있는 특별한 표시를 해 놓았는데, 비행장 안에 덩그러니 놓여있는 가방에 바로 그 표시가 분명히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도 권사님은 설마 하는 마음으로 가방으로 다가갔습니다. 하지만 표시를 확인하는 순간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 가방은 당신의 가방이 분명했기 때문입니다. 워싱턴 공항에서 짐을 부칠 때 동행했던 분이 직원의 이야기를 잘못 이해하고 자신에게 전한 것 같다고 나중에 권사님은 말했습니다. 


   하지만 이게 끝이 아니었습니다. 이제는 무거운 짐 보따리를 끌고 셔틀 버스를 타고 대한항공 비행기를 타는 곳 까지 가야만 했습니다. 약속 시간이 많이 지났지만 그래도 마중 나올 사람을 완전히 포기할 수는 없었습니다. 그래서 짐을 앞에 놓고 조금 더 기다려보았습니다. 기다리는 것 외에 할 수 있는 것이 아무 것도 없는 것처럼 권사님은 생각했습니다. 막상 버스를 타자니 용기가 나지 않았습니다. 자신을 마중하기 위해 나올 사람에 대한 미련을 싹 지울 수가 없었습니다. 지금이라도 그 사람을 만난다면 그것보다 더 좋은 일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아무리 주위를 둘러보아도 자신을 마중 나온 것처럼 생각되는 사람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렇다고 짐을 옆에 놓고 하염없이 기다릴 수도 없었습니다. 시간이 너무 많이 지나갔습니다. 그 때 권사님은 지나가는 직원을 보고 용기를 내어 자신의 사정을 이야기했습니다. 하지만 말이 통하지 않았습니다. 직원도 답답했는지 사무실로 데리고 들어갔습니다. 사무실에서도 말이 통하지 않아 여러 직원들이 난처해했습니다. 바로 그 때 남미(南美)에서 이륙한 비행기가 착륙했고, 많은 사람들 중에 극적으로 한국 사람을 만나게 되어 이들과 대화 후에 안심하고 셔틀 버스를 탈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순간 황색(黃色) 천사를 당신에게 보내주셨다고 권사님은 말했습니다.


   셔틀 버스를 타고 나서도 아차 하는 순간이 있었습니다. 워싱턴 공항을 출발할 때 배웅했던 분이 한 말이 생각났습니다. 대한항공 비행기가 있는 곳으로 가기 위해 공항에서 승차해야 하는 셔틀 버스는 두 종류가 있는데, 하나는 뉴욕 시내로 들어가고, 다른 하나는 공항을 순환(循環)하는 버스를 타야 한다는 말을 권사님은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어렵게 탄 셔틀 버스가 뉴욕 시내로 들어가는 것이라는 운전기사의 말에 화급히 내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또 다시 위기를 넘긴 것입니다. 다음 버스를 타고 가까스로 목적지에 도착했습니다. 한 순간도 방심할 수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정말 이젠 모든 것이 끝났다고 생각했답니다. 그런데 대한항공 탑승자 명단에 권사님의 이름이 없었습니다. 귀국할 비행기 표를 구입하면서 탑승날짜까지 확정했기 때문에 권사님은 어떤 신경도 쓰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귀국하기 며칠 전 비행사에 그 날짜에 출발한다는 의사를 확실하게 밝혔어야 했는데 그것을 빼먹었던 것입니다. 확인(Confirm)하지 않아 비행기를 탈 수 없게 된 것입니다. 천신만고(千辛萬苦) 끝에 대한항공 탑승구 앞에 왔지만 비행기를 탈 수 없는 권사님의 심정이 어떠했겠습니까? 승무원은 기다려보라고 말했습니다. 그 시간 누군가가 오지 않아 좌석이 비어야지만 권사님이 탑승할 수 있었습니다. 권사님은 기도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리고 얼마 후 낙심하고 있던 권사님은 승무원으로부터 희(喜) 소식을 듣게 됩니다. 다행히 자리가 비어 비행기를 탈 수 있다는 이야기였습니다. 이것은 권사님이 처음으로 해외여행을 하며 겪는 일이었습니다. 얼마나 당황스럽고 아찔한 순간이었겠습니까? 하지만 이것은 우리 모두가 당할 수 있는 일입니다.

   

   우리는 삶을 통해 너무도 잘 압니다. 십 여 분이면 도달 할 있는 목적지를 때로는 수 시 간이 걸리는 경우가 있다는 것입니다. 특히 초행(初行) 길은 더 그럴 수 있습니다. 때로는 아예 목적지에 도착하지 못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천성(天城)을 향해 순례의 길을 떠난  그리스도인의 여정도 예외는 아닙니다. 이런 핑계, 저런 이유를 들면서 돌고 돌다가 느지막하게 하나님께 나아오는 사람들이 적지 않습니다. 탕자(蕩子)가 그런 사람이고, 어거스틴(Augustine)도 그렇게 살았습니다. 우리 주위에는 아직 까지 주님께로 돌아오지 못한 사람들이 너무도 많습니다. 잘못 알고 있으면서도 그 사실 조차 깨닫지 못하는 사람들이 정말  많습니다. 평생토록 진리(眞理)라고 믿었지만 비로소 구원과 영생의 진리를 깨닫고 갔던 길로부터 돌아오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권사님이 당한 해프닝을 보면서 느끼는 또 한 가지가 있습니다. 그것은 힘들고 어렵다고 생각되었던 문제가 해결됐다고 모든 것이 끝난 것은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안심하는 순간 새로운 문제가 우리 앞에 있음을 발견합니다. 한 가지 문제가 해결됐다고 모든 것이 끝난 것은 아닙니다. 우리는 또 다른 문제 앞에 서 있게 됩니다. 이게 인간의 실존(實存)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기억해야할 것이 있습니다. 한 쪽 문(門)이 닫히면 다른 문이 열린다는 사실입니다. “시험 당할 즈음에 또한 피할 길을 내사 너희로 능히 감당하게 하시느니라”(고전 10:13). 시험은 문이 닫히는 것입니다. 하지만 주님은 피할 수 있도록 다른 문을 열어 놓으십니다. 문제는 많은 사람들이 닫힌 문만 바라보고 절망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들도 이 점에서 예외가 아닙니다. 그러나 당연히, 그리고 여전히 열려 있어야만 한다고 생각하는 문이 닫히고 있다면 믿음을 가지고 눈을 돌려 다른 쪽의 문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지금 열리고 있는 문을 찾기 위해 고개를 돌려야 합니다. 여러분은 닫힌 문만 바라보며 절망하는 사람입니까? 아니면 하나님께서 여실 문을 찾고자 믿음으로 고개를 좌우로 돌리는 사람입니까?



2011년 6월 19일

김승학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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