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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11-06 19:48:14 조회 : 1683         
새벽기도회의 풍경(1) 이름 : 김승학   
 
새벽기도회의 풍경(1)
 
    교회사학자 중에는 우리나라 새벽기도회의 시작을 1904년 9월 배제학당과 이화학당 학생들이 부흥회를 준비하다가 이화학당 학생들이 은혜를 받고, “이른 아침에”(in the early morning) 예배실에 모여 기도한 것으로 간주하기도 합니다. 즉 한국교회의 새벽기도회는 선교사나 교사들이 시작한 것이 아니라 학생들이 자발적으로 시작한 것이었습니다. 2년 후인 1906년 당시 평양 장로회 신학교 졸업반 학생이자 후에 목사 안수를 받은 평양 장대현교회 길선주 장로의 주도로 교인들이 자발적으로 새벽기도회를 시작했습니다. 한 달 후 장대현교회는 당회 결의로 전 교인이 참여하는 공식적인 새벽기도회가 시작되었습니다. 이로써 새벽기도회가 개 교회의 정기적인 모임으로 자리 잡게 되었고, 이것이 1907년 평양 대부흥운동을 촉발시킨 하나의 요인이 되었다고 합니다. 1910년대에 접어들어 새벽기도회는 한국교회의 대표적인 신앙 양태의 하나로 널리 퍼져 나갔습니다. 우리 안동교회가 언제부터 규칙적으로 새벽기도회를 시작했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다만 우리 교회 제직회록에는 특별한 절기와 행사를 앞두고 특별기도회를 당회가 결정하고 시행했음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1929년 1월 17일자 제직회록에 따르면 만국 연합신년기도회를 매일 저녁 1주간 회집하기로 결정했으며, 1935년 11월 4일자 제직회록은 추수감사절을 위하여 일주일간 특별기도회를 갖기고 결의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물론 상기(上記) 기도회는 저녁 기도회였기 때문에 새벽기도회의 유무(有無)에 대해서는 정확하게 알 수 없습니다.
 
   보통 촌(村)에서는 성탄절을 기점으로 부활주일까지 새벽기도회를 규칙적으로 시행한 경우가 적지 않았다고 합니다. 아마 우리 교회도 특별한 경우만 새벽기도회로 모이다가 어느 시점부터 매일 새벽기도회로 전환했을 가능성이 크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오래 전부터 우리 교회에 출석한 분들의 기억에 의하면 해방 전에도 매일 새벽기도회는 분명히 있었습니다. 1938년 우리 교회에서 결혼예식을 올린 한 집사님은 당신이 권찰로 임명을 받은 이후부터 새벽기도회에 참석했었는데, 그 때가 해방 이후 6·25 전쟁 이전으로 매일 새벽 5시 본당 1층 기도실에서 기도회로 모였음을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이것으로 볼 때 우리 교회의 매일 새벽기도회는 그 이전부터 존재한 것으로 추측할 수 있습니다. 기도회 순서는 오늘날과 거의 비슷합니다. 찬송을 부르고, 성경을 봉독한 후 말씀을 전하고, 기도 후 개인기도로 마친 것입니다. 1980년대 초 까지 새벽기도회의 장소는 본당 1층에 위치한 오늘의 품음터 기도실이었습니다. 당시 기도회는 새벽 5시에 모였고, 대개 40~50명이 고정적으로 모였다는 이야기를 연세 많은 집사님을 통해 전해 들었습니다. 특히 주일 새벽기도회시에는 당시 담임이었던 김광현(金光顯) 상 원로 목사님께서 구역출석을 확인하는 순서가 있었다고 합니다. 화성1, 화성2, 화성3, 화성4, 법상 1, 법상 2, 법상 3, 서당골1 서당골2, 서당골 3, 광석1, 광석2, 광석3 등 구역에서 예배드린 수를 점검할 때 구역을 책임 맡고 있는 권찰들이 참석해 답했다고 합니다.
 
   그러다가 오늘의 동은(東隱) 예배실로 새벽기도회 장소가 바뀌게 된 것은 1980년 대 중반에 이르렀을 때였습니다. 1980년부터 김기수(金基洙) 원로 목사님이 교회를 담임하신 이후 새벽기도회 장소에 변화가 생겼던 것입니다. 내가 23년 전 처음 안동교회에 부임해 왔을 때 오늘의 동은 예배실인 친교실에서 오전 5시에 새벽기도회로 모였습니다. 동은(東隱)은 우리교회 7대 담임목사인 김광현 상(上) 원로 목사님의 아호(雅號)입니다. 100주년 기념관이 준공되고 친교실을 새롭게 리모델링하여 예배실로 사용하면서 붙인 이름입니다. 참고로 100주년 기념관 1층에 있는 계단식 공간은 영곡(靈谷) 아트홀로 명명하였습니다. 영곡은 8대 담임목사인 김기수 원로 목사님의 호입니다. 100주년 기념관 준공 당시 72년된 돌집예배당을 새롭게 리모델링하면서 1층 친교실을 동은 예배실로 명명(命名)한 것은 전임자인 상 원로 목사님의 호를 붙이는 것이 최선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또한 신축된 100주년 기념관에 위치한 아트홀은 후임자인 원로 목사님에게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그 호를 붙였던 것입니다. 담임목사님들의 호를 앞에 붙인 이유는 너무도 쉽게 잊혀지고 있는 믿음의 선배들을 소중하게 생각하고 그들의 신앙을 계승하고자 하는 뜻이 담겨 있었습니다. 우리교회를 내방(來訪)한 분들 중에 1층 예배실과 아트홀에 붙여진 이름의 의미를 물어보는 분들이 있습니다. 앞서 언급한 대로 설명하면 대부분 고개를 끄떡입니다. 그리고 효(孝)를 강조하는 도시인 안동에 위치한 안동교회답다는 말을 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사실 100주년을 맞기 오래전부터 오늘의 동은 예배실은 여러 용도로 사용되었습니다. 6`25 전쟁 전에는 의자 없는 마루 바닥 상태에서 주일학교 학생의 예배실로, 성가대의 연습실로, 또한 성탄절 연극 연습할 때 주로 사용되었습니다. 전쟁이 끝난 후에도 주로 초등학생을 위한 예배실로 사용되었습니다. 그때는 식탁 없이 작은 개별 의자만이 놓여져 있었습니다. 그러나가 용도가 바뀌어 친교실로 사용되었고, 그 결과 책상으로 사용할 수 있는 식탁이 놓여지게 되었습니다. 성경공부나 세미나 등 상황에 따라 식탁은 자연스럽게 책상으로 사용되기도 하였습니다. 그런 친교실이 100주년을 맞이하면서 온전한 예배실로 개조되었습니다. 식탁은 제거되었고, 장(長) 의자가 설치되었습니다. 본당을 리모델링하면서 의자도 새로운 것으로 교체했습니다. 따라서 오랫동안 본당에서 사용되던 장의자는 자연스럽게 옮기던지 버려져야 했습니다. 하지만 1층 동은 예배실로 믿음의 선배들의 채취가 남아있는 장의자를 옮김으로써 신앙의 유산을 중단 없이 사용하는 동시에 보존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본당에서 사용하던 장의자는 1967년 본당 2층 예배실에 의자를 처음 비치할 때 사용한 것입니다. 거의 50년 가까이 동안 얼마나 많은 분들이 앉아서 찬양하고 기도하고 예배를 드렸겠습니까? 얼마나 많은 분들이 주님의 임재를 체험했겠습니까? 얼마나 많은 응답을 하나님으로부터 받았겠습니까? 당연히 보존해야할 책임이 느낍니다. 동은 예배실에 있는 이 장의자는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우리교회와 한국교회의 보물이 될 것입니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본당에 있던 의자를 교체하면서 1/2 정도는 동은 예배실로, 1/5 정도는 창고에 보관하고, 나머지는 필요로 하는 교회에 보냈던 것입니다.
 
   안동교회의 새벽기도회는 보통 5시에 시작했습니다. 아마 더 일찍 시작한 때도 있었는지 모릅니다. 촌(村)에 있는 교회는 농번기에 보통 새벽 4시, 혹은 4:30분에 시작합니다. 우리 교회도 그런 때가 있었을지 모릅니다. 하지만 많은 분들은 우리 교회 새벽기도회 시간을 새벽 5시로 기억합니다. 그러다가 2005년이 시작되면서 우리교회 새벽기도회는 큰 변화가 있었습니다. 즉 이 해부터 두 차례 새벽기도회를 실시했기 때문입니다. 1부는 5시에, 2부는 6시에 두 차례 새벽기도회를 가졌습니다. 2부 새벽기도회가 신설된 것은 그 필요성을 강하게 느꼈기 때문입니다. 비교적 젊은 사람들에게 새벽 5시는 너무 빠른 시간이었습니다. 그래서 젊은 사람들은 기도회에 참석하고 싶어도 나오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 결과 당회는 두 차례 새벽기도회를 실시하기로 결정하고, 2005년 1월 첫 번째 주일이 지나고 월요일부터 1주일 동안 ‘2005 새해를 여는 특별새벽기도회’를 마친 바로 다음 주 월요일인 1월 10일부터 2부 새벽기도회가 시작되었습니다. 오전 6시에 시작하는 2부 새벽기도회는 기도회와 함께 계속해서 하루를 시작할 수도 있는 장점이 있었습니다. 시행 초기 5시 기도회에 익숙한 분들의 움직임이 거의 없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적지 않은 분들이 오전 6시로 이동하기 시작했습니다. 또한 새벽기도회에 전혀 출석하지 않는 성도들이나 가끔 출석하던 분들이 2부 새벽기도회에 정기적으로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새벽기도회 출석 가능한 성도가 새롭게 창출된 것입니다. 그 결과 2부 새벽기도회에 참석하는 수가 기존 기도회 시간인 5시에 비해 많을 때는 무려 3배에 이르게 되었고, 점차 정착되어 오늘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이 사실을 통해 교회는 역사와 전통을 존중하는 동시에 성도들의 잠재적 요청을 감지하고 변화를 주도해 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럴 때 성도들의 자발적인 참여를 이끌어 낼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다가 또 다른 변화가 생겼습니다. 2009년부터 새벽기도회에 구역과 기관·부서의 특송이 시작되었던 것입니다. 이 특송은 각 기관과 부서가 한 달에서 두 달에 한 번 정도 돌아오도록 짜여져 있습니다. 구역원이나 기관·부서에 속한 멤버들은 주중에 모여 연습을 하기도 하고, 또는 기도회 시간 보다 조금 일찍 교회에 나와 100주년 기념관이나 본당과 기념관 사이의 작은 뜰에서 연습하는 모습을 볼 때도 있습니다. 구역, 기관과 부서의 새벽 특송이 결코 쉬운 것은 아니지만 온 성도들에게 새벽기도의 중요성을 깨닫게 할 뿐 아니라 성도들이 새벽을 깨워 기도 훈련을 시키려는 의도가 있었습니다. 평소에 새벽기도회를 참석하지 못하는 사람들도 적어도 한 달에 한번은 새벽 기도회에 참석하여 기도의 습관을 갖게 하려는 분명한 목적이 있었습니다. 물론 기도회에 참석하는 사람들의 대부분이 고정되어 있지만 어느 날 새벽 새로운 얼굴을 볼 때는 큰 기쁨과 보람을 느낍니다. 더욱이 새벽기도회에 전혀 나오지 않던 사람들이 이런 계기를 통해 중단 없이 계속해서 기도회에 참석하여 기도의 사람으로 변화되는 것을 보면 얼마나 기쁜지 모릅니다. 또한 체험한 기도 능력을 간증하는 모습을 보면서 많은 성도들이 큰 은혜를 받습니다.
 
   2011년부터 우리 교회 새벽기도회에 또 다른 큰 변화가 생겼습니다. 그것은 새벽기도회 찬양대가 생긴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2011년부터 새벽기도회만을 위한 찬양대가 구성되어 찬양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찬양대의 이름은 천사 찬양대입니다. 사실 찬양대는 미리 모여 연습해야 합니다. 찬양대의 연습은 필수적입니다. 하나님께 드리는 찬양은 최선의 것, 최고의 것이 되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매일 찬양대석에 서기 위해 매일 연습하는 것은 대원들의 엄청난 부담이기도 합니다. 이들이 함께 모여 연습할 수 있는 가능성은 언제일까요? 새벽기도회를 마치고, 혹은 전날 밤에, 혹은 어느 날 모여 한꺼번에 연습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충성스럽고 헌신하는 성도들이라 하더라도 매일 연습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일입니다. 물론 특별새벽기도회시에는 주일, 혹은 수요예배를 담당하는 찬양대가 열심히 연습하여 가끔 찬양대석에 서설 수 있지만 동일한 찬양대가 매일 연습하여 새벽마다 찬양하는 것은 너무도 힘든 일입니다. 너무도 큰 희생이 요구되기 때문에 교회도 이것을 권면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비록 연습 없이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이 송구스러운 일이긴 하지만 새벽 찬양대를 만들면서 연습 없이 찬양대석에 설 수 있도록 했습니다. 새벽 찬양대는 평소에 자주 부르는 찬송가를 선곡하여 첫 절과 마지막 절만 부릅니다. 찬양대석 앞 게시판에 누구나 볼 수 있도록 일찍 온 지휘자가 그날 찬양할 찬송가를 적어 놓습니다. 그래서 굳이 말로 전달할 필요가 없습니다. 대원은 교회에 도착하여 찬양대석에 앉으면 적혀있는 찬송가를 보고 대원들은 조용히 기도하며 준비하면 됩니다. 매일 찬양대석에 서는 천사 찬양대원의 구성은 남·녀 6:4 비율로 장로님, 안수집사님, 권사님, 서리집사님 등 보통 25명 내외가 됩니다. 주일·수요예배 시 찬양대로 봉사하는 분들이 대부분이기 때문에 연습 없이 찬양해도 크게 어색하지는 않습니다. 정말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주로 멜로디로만으로 찬양합니다. 지휘도 전공자가 아닌 분들이 합니다. 부담을 줄이기 위해 세 분의 지휘자가 일주일에 이틀씩 맡아 수고합니다. 고맙고 충성스러운 헌신자들입니다.
 
   새벽기도회에 출석하는 성도의 모습은 다양합니다. 1부 기도회의 경우는 예전부터 습관이 된 분들이 주로 참석합니다. 2부 기도회의 경우 어르신, 주부와 젊은 분들이 참석합니다. 기도회 시간 동안 찬양대석에 앉아 있던 찬양대원은 마치면 이석(離席)하여 회중 사이에 끼여 앉습니다. 보통 자신이 늘 앉아 기도하는 자리로 이동합니다. 그래서 기도회가 마치면 잠시 동안 어수선합니다. 찬양대원 각자가 자신의 기도 자리를 찾아가기 때문입니다. 주일예배도 그렇듯이 성도들에게는 새벽기도회에 늘 앉는 정해진 자기 자리(?)가 있습니다. 보통 교역자들은 중앙 두 의자 맨 앞자리에 앉습니다. 기도의 본(本)을 보이고, 성도들의 기도를 이끌어가기 위함입니다. 앞에서 기도를 끌어가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기도하다 지칠 때, 기도하기 싫을 때, 더 이상 기도하기 힘들 때 기도를 이끌어가는 누군가가 있으면 중단 없이 계속 기도할 수 있는데, 이 사역을 교역자들이 감당하는 것입니다. 물론 계수하거나 돌발 상황에 대응하기 위해 한명의 교역자는 뒤에 앉습니다. 좌청룡우백호라는 말이 있듯이 늘 우측 맨 앞자리에는 한 장로님이, 우측 앞자리에는 안수집사님이, 그리고 수 십 년 동안 곳곳에서 자리는 지키는 장로님, 권사님, 집사님 등 여러분들이 자신을 위한 기도 뿐 아니라 성도의 기도를 돕습니다. 특히 국가와 민족, 안동 그리고 세계 선교를 위한 이들의 중보기도는 오랜 세월동안 계속되어온 기도제목이기도 합니다. 언제나 자리를 지키며 새벽을 깨우는 분들 덕분으로 오랜 세월동안 기도의 제사인 향이 우리 교회에서 하늘로 쉬지 않고 끊임없이 올라갑니다.
 
   주의 기도로 기도회를 마치고 자리가 새롭게 정리되면 본격적으로 하루를 시작하는 개인적인 기도가 시작됩니다. 조금 일찍 도착하여 먼저 개인 기도시간을 갖고 인도자가 주관하는 기도회가 주기도문으로 마치자마자 자리를 뜨는 사람도 있습니다. 또한 시작 시간에 맞추어 와서 새벽기도회가 마쳤음에도 불구하고 자리를 뜨지 않고 일정한 시간동안 계속해서 기도하는 분들도 있습니다. 동은 예배실에서는 주로 침묵(沈黙) 가운데 기도가 계속됩니다. 하지만 때로는 흐느끼는 소리가 들리기도 합니다. 간헐적으로 들리는 흐느낌은 기도자의 상황을 대변합니다. 그 흐느끼는 기도는 자리를 뜨기 까지 계속되기도 합니다. 모든 전등이 꺼진 캄캄한 동은 예배실에서 들리는 흐느낌에 그를 위한 중보기도가 시작됩니다. 그의 흐느낌이 나의 흐느낌이 되기도 합니다. 기도를 마친 후에도 여러 날 동안 그를 위한 기도는 계속될 때가 많습니다. 간절한 기도가 때로는 작은 소리로 찬송을 부르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보통 경우에는 잘 들리지 않지만 세상이 잠자는 고요한 새벽에는 작은 노래 소리 조차 크게 들립니다. 물론 그런 의도로 찬송을 부르는 것은 아니겠지만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 상황에서 늘 기도해왔던 사람에게는 적은 방해가 되기도 합니다. 우리교회 새벽기도회에는 오랫동안 지켜지는 룰(rule)이 있습니다. 물론 문서화된 규칙은 아닙니다. 그것은 동은 예배실은 침묵(沈黙)으로 기도하는 사람들의 기도 장소인 반면, 동은 예배실 옆에 있는 기도실은 통성(通聲)으로 기도하는 사람들이 사용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통성으로 기도하는 분들은 기도회가 마치면 곧 바로 옆에 있는 품음터 기도실로 이동합니다. 명시적으로 정해진 룰은 아니지만 오랫동안 새벽기도회에 참석한 분들 사이에는 자신이 어떤 방식으로 기도하느냐에 따라 있어야할 기도장소가 정해짐을 잘 압니다. 통성으로 기도하는 사람들의 수는 대개 10여명 정도가 됩니다. 때로는 통성으로 기도하는 소리가 동은 예배실에 들릴 때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동은 예배실에서 기도하는 분들에게 힘이 되기도 합니다. 비록 벽으로 가로 막혀 있지만 기도소리를 통해 영적으로 서로 교통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때로는 뒷자리에 앉아 비상등에 의지하여 성경을 읽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처음부터 성경을 읽는다기보다는 기도하다가 성경을 읽는 것으로 생각됩니다. 불빛이 희미해서 염려가 되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러한 행동은 기도와 하나님의 말씀을 병행한다는 의미일 것입니다. 기도하다가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는 것은 기도자의 올바른 자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의지하는 기도를 한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성경을 펴고 말씀을 읽고 묵상하는 것은 기도에 맞는 하나님의 뜻을 찾겠다는 뜻입니다. 내 마음에서 나오는 소리가 아니라 친히 내게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응답에 귀를 기울이겠다는 의미일 것입니다. 이 모든 일은 매일 새벽기도회가 있는 동은 예배실에서 발생하는 영적인 일입니다. 이 모든 일이 우리 안동교회의 매일 새벽기도회 풍경입니다. 주님이 다시 오시는 재림의 그 날까지 새벽을 깨우며 기도가 그치지 않는 동은 예배실로 남도록 온 성도들이 기도의 사람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2014년 10월 26일
                                                                                     김승학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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