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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10-02 22:24:21 조회 : 1659         
돌집 예배당을 지탱하고 있는 생소나무 이름 : 김승학   
 
돌집 예배당을 지탱하고 있는 생소나무
 
 
   흔히 안동교회 예배당을 돌집 예배당이라고 부릅니다. 이유는 화강암을 쌓아 건축되었기 때문입니다. 전국에서 안동교회를 방문한 분들이 이 돌집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습니다. 보통 예배당을 등지고 사진을 찍지만 정면으로 예배당 앞에 서면 육중한 예배당 앞에 서면 주눅(?)이 들 정도입니다. 돌의 무게 보다는 역사와 전통이라는 무게에 압도당하는 기분을 느낍니다. 지금 예배를 드리고 있는 안동교회 예배당은 1936년 봄에 기공하여 1937년 4월에 기초면적 160평의 2층 건물이 준공되었습니다. 경안노회 중심교회의 상징으로서 2층 돌집 예배당 건축계획은 안동교회 4대 담임인 박상동(朴尙東) 목사님으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박목사님은 안동교회의 미래와 지역사회 복음화를 위한 준비에도 소홀하지 않았습니다. 석조 예배당 신축을 위해 기성회를 조직하여 1926년 9월 19일 첫 번째 회의를 가졌습니다. 하지만 박목사님은 교회를 사임하고 새로운 임지(任地)인 일본 오사카로 떠났습니다. 따라서 돌집 예배당은 후임인 5대 임학수(林鶴洙) 목사님으로부터 본격화되었습니다. 안동교회 80년사에 따르면 1929년 1월 부임한 임목사님은 동년 3월 4일 제직회에서 그동안 신세교회 분립을 위해 저축해오던 것을 본당 건축비로 전용하기로 결의하고 본당 신축에 박차를 가하게 되었습니다. 더욱이 경안노회는 1933년 2월 23일 경안노회의 중심교회인 안동교회 본당 신축에 모든 교회가 힘써 헌금할 것을 결정함으로써 안동교회 석조 예배당의 신축이 노회 경내 교회들의 협력으로 이루어졌습니다. 이러한 노회의 결정과 함께 안동교회 성도들도 건축헌금에 최선을 다하였습니다.
 
   수년 전 90을 넘긴 한 장로님은 예배당이 건축될 때 자신이 어렸지만 아르바이트를 해서 번 돈으로 예배당에 사용된 돌 2개를 하나님께 드렸다고 말씀하신 것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큰 돌과 작은 돌 값이 차이가 있었고, 어린 장로님은 그 때 작은 돌 두 개를 하나님께 드렸다고 했습니다. 또한 온 성도들이 교회를 건축하는 데 한 마음이 되어 낙동강에서 모래를 파오는 사람도 있었고, 돌을 지고 옮기는 사람도 있었다는 것입니다. 건축에 사용된 화강암은 안동에서 공급했습니다. 주석공(主石工)은 순천 매산학교 강당을 지었던 중국 기술자였습니다. 이렇듯 우리교회 본당은 77년 전 어린이·어른·남·녀 구분 없이 온 성도들의 합심으로 완성되었습니다. 이처럼 돌집 예배당 건축에 어린 아이로부터 어른에 이르기 까지 하나님께 드리는 데 인색하지 않았습니다. 특히 임목사님은 예배당 신축을 위해 선교사들을 꾸준히 설득했으며, 자신의 사제를 거의 예배당 신축을 위해 봉헌했으며, 노회 경내의 여러 교회들을 순방하면서 경안노회 중심인 안동교회 신축 예배당의 필요성을 강조하여 건축모금도 계속된 결과 마침내 본당 2층 석조예배당이 1937년 4월에 준공되었습니다.
 
   당시만 하더라도 거대한 2층 돌집 예배당은 곧 지역사회의 화제가 되었습니다. 장안(長安)에 있던 사람들 뿐 아니라 안동 근교에 거주하는 사람들은 안동의 명물(名物)이 된 돌집 예배당을 보기 위해 여기저기서 몰려들었답니다. 90세에 가까운 경안노회 한 공로목사님의 말씀을 들을 기회가 있었습니다. 목사님의 기억에 따르면 당신이 풍산에 살고 있었는데, 신축된 돌집 예배당을 보기 위해 풍산에서 경북선 열차를 타고 안동에 왔다는 것입니다. 아마 안동교회 예배당 보다 더 크고 무거운 건물이 안동에는 거의 없었을 것입니다. 따라서 돌집 예배당은 당연히 많은 사람들에게 회자(膾炙)되었을 것입니다. 참고로 경북선은 안동에서 김천까지 연결하는 철도로 1921년에 착공하여 김천에서 상주까지는 1924년 10월, 점촌까지는 같은 해 12월, 예천까지는 1928년 11월, 경북 안동까지는 1931년 9월에 완공되어 1931년 10월 15일에 전 구간이 완전 개통되어 운행되다가 태평양 전쟁기인 1944년 9월 30일 점촌에서 안동 사이의 철로가 철거되어 군수산업의 원료철재로 공급됨으로써 김천에서 점촌을 잇는 구간으로 단축되었습니다. 해방 이후 영동선과 경부선을 직접 연결시키기 위하여 점촌에서 영주를 연결하는 경북선 연장공사가 시행되어, 1966년 10월 10일 완공되어 경북선은 김천에서 영주 사이의 구간에서 운행되고 있습니다. 앞서 말씀드린 공로목사님의 말씀에 비추어보면 이 경북선을 타고 당시 열차 역(驛)이 있던 경안노회 경내의 개평, 가동, 예천, 용궁, 고평, 호명, 명동 등 뿐 아니라 상주, 함창, 점촌, 산양 등에 거주하던 성도들도 신축된 안동교회 예배당을 보기 위해 안동을 방문했을 가능성이 매우 크다고 할 수 있습니다.
 
   전 돌집 예배당 건축에 대해 많은 호기심을 갖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지금으로부터 77년 전에 준공된 예배당을 기억하고 있는 분이 그리 많지 않았습니다. 생존하는 분들에서 중에서 설령 기억한다 하더라도 건축 당시 어린아이였기 때문에 건축에 관한 자세하고 깊은 내용은 알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다가 우연히 예배당의 기초에 관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2008년 99세로 하나님 나라로 가신 고(故) 김학준 원로장로님은 안동을 떠나 아드님이 계신 대구에서 거주하셨는데 1년에 수차례 안동을 방문하셨습니다. 안동에 오시면 꼭 교회를 방문하셨고, 그 때 마다 저를 찾으셨습니다. 김장로님은 기억에 남는 교회에 관한 일들을 말씀하시곤 했습니다. 그 때 전 매우 귀중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본당을 신축할 당시 김장로님은 20대 후반으로 1936년에 착공한 본당 건축할 때의 일을 비교적 소상히 기억하고 계셨습니다. 김장로님께서는 예배당 터가 습지(濕地)였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전 놀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습지면 지반(地盤)이 굉장히 약할텐데. 어떻게 육중한 화강암으로 지어진 예배당이 80년 가까이 서 있을 수 있을까? 상식적으로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의문이 계속되었습니다. 그 때 김장로님은 기초를 튼튼히 하기 위해서 생소나무를 수없이 박았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지금으로 말하면 철근 파일과 같은 것입니다. 생나무로 기초를 세울 때 여성들도 한 몫을 거들었다고 한 장로님은 기억했습니다. 장치를 통해 나무를 쳐서 땅 밑에 깊이 박는 소위 ‘마께이’하는 일에 여성들도 힘을 합했다는 것입니다.
 
   특히 돌집 예배당이 77년이 지난 오늘 까지 견고하게 서 있는 이유는 생소나무가 아직 썩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80년 가까운 세월이 흘렀음에도 불구하고 나무가 썩지 않은 이유는 돌집 아래로 여전히 물이 흐르고 있고, 흐르는 물속에 생소나무가 잠겨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생소나무가 물속에 잠겨 있지 않는다면 소나무는 썩을 수밖에 없어 돌집 예배당은 당연히 무너졌을 것입니다. 사실 우리 예배당 터는 물이 많은 곳입니다. 100주년 기념관을 건축할 때 기초를 세우기 위해 땅을 파보니 물이 많았습니다. 그래서 수많은 철근 파일을 박아 기초를 든든히 한 후에 기념관을 건축했습니다. 물이 많은 땅이었기 때문에 기념관을 건축할 때 방수공사를 철저히 했음에도 비가 많이 오면 바닥이 젖을 정도입니다. 따라서 예배당이 세워진 터 밑에는 여전히 많은 물이 흐르고 있고, 그것 때문에 오히려 돌집 예배당이 견고하게 서 있게 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왜 습지에 본당을 신축할 수밖에 없었을까요? 당시 교회 부지(敷地)의 사용 상태를 생각하면 어느 정도는 이해할 수 있습니다. 1908년 안동선교부가 세워진 후 선교사님들이 거주한 임시사택은 오늘날 교회 정문 서편에 위치한 선교관 자리였습니다. 오늘날 안동교회의 대지는 3,000평을 상회하는데, 100여 년 전에는 이 규모보다는 작았을 것으로 추측됩니다. 당시 정확한 대지 규모는 알 수 없지만 현재 선교관을 포함했을 가능성이 큽니다. 선교사님들은 임시사택 뿐 아니라 그 주위의 땅도 구입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선교사 임시사택 옆의 마당에 설치된 텐트에서 30-40명이 예배드리는 광경과 교회를 신축하기 위해 준비한 쌓여있는 건축자재와 진흙벽돌을 볼 수 있는 한 사진이 보존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아마 이 건축자재는 안동교회 최초의 예배당인 11칸 기역자(ㄱ) 예배당을 건축하는데 사용되었을 것으로 추측됩니다. 여하튼 오늘날 안동교회의 터는 무려 110년 가까이 보존된 거룩한 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처음에는 선교부에 의해 소유권이 있던 이 터가 안동교회로 귀속된 이유를 안동교회 80년사는 밝힙니다. 1911년 세워진 초등교육기관인 계명학원이 서당골 입구에 위치해 있다가 안동교회 터로 이전하여 그 때부터 안동교회 당회가 운영책임을 가지게 되었고, 1924년에 시작한 중등교육기관인 경안중학원은 경안노회가 운영하도록 하는 방침이 정해짐에 따라 선교사 임시사택과 계명학원이 위치하고 있던 터가 안동교회로 귀속되었다는 것입니다. 이후 안동교회의 부지는 확대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습니다.
 
   그런데 본당을 신축하기 전 1913년 11월에 지금의 100주년 기념관 지리에 목조 함석지붕 2층 예배당을 건축했습니다. 지금으로도 예배당의 규모가 꽤 컸다고 할 수 있습니다. 안동교회 80년사에 따르면 이 예배당이 존속되어 있을 때인 1932년 경안노회록에는 성도수가 159명의 아동을 포함해 총 549명으로 평소 주일예배 시 300~400여 명을 수용할 수 있는 규모였을 것으로 추측됩니다. 당시 이 예배당에서 예배를 드린 경험이 있는 분들에 따르면 최대 500여 명을 수용할 수 있는 규모였다고 합니다. 10여 년이 지난 후부터 새로운 예배당에 관한 논의가 있었고, 1936년 현재의 본당으로 사용하고 있는 돌집을 착공하게 됩니다. 정확한 것은 아니지만 목조 함석지붕 2층 예배당을 포함한 교회 터를 찍은 사진에 따르면 현재 돌집 예배당 앞 서편 축대 쪽에 계명학원이 위치한 것으로 추측됩니다. 또한 당시 계명학원을 다녔던 분들에 의하면 그곳이 계명학원이었음을 증언합니다. 사진자료와 증언을 통해 볼 때 돌집 예배당 신축을 위해 계명학원은 1936년 철거되었을 것이고, 철거와 함께 계명학원도 문을 닫았을 가능성이 큽니다. 돌집 예배당이 준공이 된 후에 기존 목조 함석지붕 2층 예배당은 곧 철거된 것으로 추측됩니다. 하지만 1937년 봄, 돌집 예배당이 준공됨으로써 안동과 경안노회에는 거룩한 성령의 바람이 불어오게 되었습니다. 이유는 새로운 예배당이 신축된 이 후부터 경북 북부지방의 중요한 집회의 대부분이 바로 이 돌집 예배당에서 열렸기 때문입니다.
 
   이후 이 돌집 예배당의 외형은 원형 그대로 보존 되었습니다. 하지만 1959년 3월 9일 본당 뒤편을 증축하게 됩니다. 구체적으로는 본당의 강대상을 포함한 앞부분으로 약 80평 규모가 증축되어 본당은 연건평 400평 규모의 예배당이 되었습니다. 아치(Arch) 형태의 강대는 지금까지 상원로 목사님의 구상이 증축 시 반영된 것으로 알려져 왔지만 얼마 전 새로운 사실을 황혜원 장로님의 작은 아버님을 통해 알게 되었습니다. 새로운 사실은 강대의 형태가 원래 건축된 강대상의 원형을 그대로 유지했다는 것입니다. 안동교회를 수십 년 만에 방문한 황장로님의 작은 아버님은 서울대 건축학과를 졸업하고 당시 공무원으로 계셨는데, 1959년 본당을 증축할 때 증축해야할 부분을 당신이 직접 설계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강대 부분은 원래 돌집 예배당이 건축될 당시의 원형 그대로 놔두었다고 증언했습니다. 돌집 예배당이 준공된 지 22년이 지난 후 증축하면서 원래 형태를 변형시키지 않은 것입니다. 비록 증축을 통해 돌집 예배당이 조금은 변형되었지만 증축한 교회 건물의 뒤 부분은 눈에 잘 띠지 않습니다. 예배당의 정면과 좌우 외형은 준공 당시 거의 그대로 보존되어 있습니다. 이것은 거룩한 구원의 역사를 인정하고 보존한 안동교회의 혜안(慧眼)이었다고 생각하며 하나님께 감사를 드릴 뿐입니다. 왜냐하면 각 교회마다 피치 못해 구(舊) 예배당을 철거하고 그 자리에 새로운 예배처소를 신축해야할 이유가 분명히 있기 때문입니다.
 
   딤후 2:19은 교회가 예수 그리스도라는 터 위에 세워졌음을 분명하게 밝힙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견고한 터는 섰으니 인침이 있어 일렀으되.” 여기서 ‘터’는 ‘초석’ 혹은 ‘터전’이라는 의미로 일반적으로는 예수 그리스도를 뜻합니다. 본문이 말하는 ‘견고한 터’는 예수 그리스도를 터로 삼은 교회는 견고하다는 의미입니다. 그런데 본문의 ‘터’는 하나님으로부터 부르심을 받은 사람들이 모인 그리스도의 교회를 가리킵니다. 터가 예수 그리스도요, 예수 그리스도가 기초가 된 교회는 견고할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께 부름을 받고 예수님을 구세주인 그리스도로 고백하는 신앙공동체를 교회라고 합니다. 1909년 8월 둘째 주일, 즉 8월 8일 8분이 예배를 드림으로써 안동교회는 시작되었습니다. 안동교회는 시작부터 그리스도라는 견고한 터 위에 세워졌습니다. 더욱이 1937년 봄에 준공된 돌집 예배당도 예수 그리스도라는 터 위에 세워졌으며 77년이 지난 오늘도 견고하게 서 있습니다. 모든 건물은 견고한 기초 위에 세워져야 안전합니다. 습지에 기초로 사용된 생소나무는 77년이 지난 오늘에도 돌집 예배당은 든든히 서 있게 합니다. 하지만 근본적인 이유는 하나님의 은혜 덕분입니다. 하나님께서 교회를 지켜주신 덕분입니다. 지난 77년의 세월 동안 이 돌집 예배당이 구원의 방주 역할을 잘 감당했듯이 예수님이 다시 오시는 그 날까지 흔들리지 않고 견고하게 서서 방주의 사명을 잘 감당할 수 있기를 기도할 뿐입니다.
 
                                                                                          2014년 8월 18일
                                                                                          김승학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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