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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8-14 08:38:47 조회 : 1662         
문(門)을 여시는 하나님 이름 : 김승학   
 
문(門)을 여시는 하나님
 
 
   요단강을 건넌 여호수아와 이스라엘 군대는 여리고성을 공격하기에 앞서 두 명의 정탐꾼을 파견합니다. 하지만 뜻하지 않게 정탐꾼이 발각되는 위기를 맞게 됩니다. 그 때 여리고 성에 살고 있던 라합이라는 여성이 정탐꾼들을 삼대에 숨겨 놓고 수색대에게 한 거짓말을 통해서 그들은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었습니다. 정탐꾼들이 들어오긴 했지만 그들이 누구인지 알지 못했고 또 그들이 이미 성문을 나갔으니 급히 따라가면 그들을 만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정탐꾼들은 라합의 용기있는 도움으로 무사히 이스라엘 진영으로 돌아올 수 있었습니다. 정탐꾼에게 라합은 하나님께서 준비해놓으신 구원의 문이었습니다. 지붕 위에 있던 삼대는 정탐꾼에게 하나님께서 미리 준비해 놓으신 구원의 도구였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는 성경에 기록된 믿음의 선진들에게만 구원의 문을 준비해놓고 계셨을까요? 하나님께서 나를 위해 준비해 놓으신 구원의 문은 정말 없을까요? 왜 없겠습니까? 우리 교회 7대 담임목사로 무려 37년을 섬기신 상(上) 원로 김광현(金光顯) 목사님은 1913년 9월 의성 봉양 삼산동에서 출생하셨습니다. 삼산동에는 우리 안동교회와 같은 해인 1909년 교회가 세워졌고, 김목사님의 부친께서는 이 교회 초대교인 중의 한 분이셨습니다. 후에 목사님의 부친은 이 교회의 영수가 되셨습니다. 상원로 목사님께서는 대구 계성중학교를 졸업하시고 평양 숭실전문학교에 입학하셨습니다. 당시 평양은 우리나라 기독교의 중심지였습니다. 목사님이 평양 숭실전문학교에 입학하신 이유는 이미 신학할 결심을 하고 계셨기 때문입니다. 목사님이 신학을 결심한 것을 알게 된 목사님의 부친은 목사님을 낳은 후 가장 먼저 기도한 것이 아들이 목사가 되게 해 달라는 것이었는데 이제 그 소원이 이루어지게 되었다고 하면서 감사의 기도를 하셨다고 합니다. 그런데 목사님께서 숭실전문대학교에 재학 중이실 때 신사참배문제가 일어났습니다. 처음에 일제는 미국 선교사가 머무는 곳을 치외법권지역으로 간주하고 함부로 손을 대지 않았습니다. 따라서 선교사들이 머물고 있던 교회나 신학교에는 신사참배를 강요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목사님이 1937년 봄 평양신학교에 진학할 때 즈음에는 전국 모든 기독교 학교가 신사참배 문제로 진통을 겪어 대부분 폐쇄되고, 남아 있던 몇몇 학교 모두 큰 곤욕을 치르고 있었습니다. 목사님께서 신학교 2학년으로 진학하던 해 여러 노회에서 신사참배를 결의하게 되고 목사님도 더 이상 신학을 공부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신학공부를 위한 문이 닫히는 듯 했습니다.
 
   결국 1938년 9월 9일 오후 8시 평양서문외예배당에서 개회된 제27회 장로교총회에서 치욕적인 신사참배가 통과되었습니다. 소재열 목사의 저서인 ‘한국장로교신학 전통’에는 신시참배가 통과된 총회의 상황을 상세하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총회가 개회되고 제1부 경건예배를 마치고 정회한 후 2일째 되는 날 공천부장의 함태영 목사의 보고를 별지로 받고 곧바로 신사참배 안건을 상정하고 안건 심의에 들어갔습니다. 총회가 개회된 후 경건예배를 마치자마자 곧바로 신사참배 문제를 거론하여 결의를 했다는 것은 이미 신사참배의 가결을 몇 달 전부터 계획하고 있었다는 것을 말해주는 것입니다. 총회는 단지 신사참배를 결의하는 거수기의 역할을 한 것입니다. 총회가 소집되는 날 서문외교회당 안팎에는 수백 명의 사복 경찰관들이 둘러싸고, 강대상 아래는 평남경찰부장 등 수십 명의 고위 경찰들이 칼을 찬 채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습니다. 총대들 사이에는 각기 그 지방에서 올라온 경관 2명이 끼어 앉아 있고 총대석 좌우와 후면에도 무술경관 100명이 삼엄하게 둘러싼 채 회의가 시작되었습니다. 전국 27개 노회(만주 4노회 포함) 목사 회원 86명, 장로 총대 85명, 선교사 22명, 합계 193명이 참석한 가운데 동 안건을 가결에 붙이자 떨리는 목소리로 가(可)만 묻고 부(否)는 묻지 않은 채 신사참배가 만장일치로 가결되었음을 선언했습니다. 이 때 선교사 20여명이 일어나 “불법이오”, “항의합니다”며 고함을 질렀지만 결국 총회는 신사참배를 결의하고 말았습니다. 총회의 신사참배 결의 후 곧바로 임원대표인 부총회장과 회원대표인 각노회장이 총회를 대표하여 즉시 신사 참배를 실행하기로 가결까지 하였습니다. 신사참배를 가결하고 난 시간이 12시였는데 오후 2시에 속회할 때까지 점심시간을 이용하여 부총회장 김길창 목사의 안내에 따라 평양 신사로 가서 절하고 돌아왔습니다. 총회를 앞두고 치밀한 준비를 했음을 알려주는 대목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총회 결의가 있는 이후 일본 경찰은 즉시 친일적인 목회자를 만드는 데 앞장섰습니다. 또한 일제는 1937년 중일전쟁을 일으키고 그 후 한국교회로 하여금 신사참배를 하도록 강요하였습니다.
 
   이런 상황 속에서 상원로 목사님은 더 이상 한국에서 신학공부를 할 수도 교회를 섬길 수도 없었던 것입니다. 그 때 하나님께서 준비하신 문이 있었습니다. 목사님께는 열려진 다른 문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평양신학교와 신학사상이 비슷한 일본 고베에 있는 중앙신학교로 전학하는 것이었습니다. 한국에서 더 이상 신학공부를 할 없게 되었을 때, 당시 평양신학교 교장이셨던 나부열(R. E. Robert) 목사님이 고베중앙신학교에 추천함으로써 1938년부터 일본에서 공부를 할 수 있었습니다. 1941년 목사님께서는 공부를 마치고 주기철, 이약신, 한상동 목사님이 시무하셨던 부산초량교회 부교역자로 교회를 섬기셨다. 1942년 12월 초량교회를 방문한 우리교회 김재성 장로님의 청빙제안에 따라 1943년 1월 17일, 30세로 우리 교회 7대 담임목사로 부임하셨습니다. 돌아보면 신사참배는 목사님이 주님을 위해 가야할 문이 닫히는 역할을 한 반면, 고베중앙신학교는 목사님을 위해 하나님께서 미리 준비해놓으신 배움의 문이었던 것입니다. 목사님이 한국에 계속 계셨다면 폐교당한 평양신학교에서 더 이상 공부를 하실 수 없었을 것이며, 결국에는 교회를 위해 봉사할 시간도 늦춰졌을 것입니다. 그것은 안동교회와 우리 총회, 그리고 한국교회를 위해서도 안타까운 일이 되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목사님께서는 평생 동안 너무도 많은 사역을 정말 잘 감당하셨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백성에게도 구원의 문을 준비해놓고 계시는 분이십니다. 문이 닫히면 다른 문을 여시는 분이 하나님이십니다. 터키에는 “하나님은 장님이 된 새의 보금자리를 만드시는 분이시다”라는 속담이 있다고 합니다. 그렇습니다. 아무리 어렵고 힘든 상황이라 하더라도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백성에게 구원의 문을 준비해놓고 계십니다. 열려 있던 문이 닫히면 하나님께서는 새로운 문을 여십니다. 따라서 믿음의 사람들은 닫혀진 문만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새롭게 열려진 문을 찾는 것이 필요합니다. 노아에게 구원을 위한 방주의 문을 만드시는 분이 우리가 믿는 하나님이심을 잊지 마십시오. 내게 익숙한 문이 닫혔다 하더라도 실망하거나 절망하지 맙시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하나님께서 만들어 놓으신 또 다른 구원의 문을 볼 수 있는 눈과, 생명의 문으로 들어갈 수 있는 믿음의 용기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께 기도해야 합니다. “닫혀진 문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열어놓으신 구원의 문을 보게 하소서. 들어갈 수 있는 믿음과 용기를 주옵소서.”
 
                                                          2014년 8월 10일, 105주년 교회창립주일
                                                          김승학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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