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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7-10 21:53:30 조회 : 2938         
모판(母坂)과 같은 작은 교회들 이름 : 김승학   
 

모판(母坂)과 같은 작은 교회들


    얼마 전 총회 국내선교부 산하 교회 자립 위원회에서 주관한 2008년 교회자립사업 정책협의회에 우리 경안노회 교회자립위원회 위원장 자격으로 참석했습니다. 2004년 89회 총회에서 결의된 교회 자립 사업 실시의 목적은 “총회사업 미자립(未自立) 교회 목회자들의 생활 대책과 생활비의 공평지원으로 생활비의 평준화(平準化)”를 이루는 것이었습니다. 총회의 결정 이전에는 미자립 교회들이 각개격파식으로 서울, 부산, 대구 등 대도시 교회와 직접 접촉하여 후원을 받다보니 미자립 교회마다 후원받는 액수가 천차만별(千差萬別)이었습니다. 심각한 불균형 후원을 해소하고 교회와 교역자 형편에 따라 적당한 지원이 될 수 있도록 연구한 끝에 총회가 마련한 정책이었습니다. 4년 전 처음 시행하려고 할 때 미자립 교회나 후원교회들이 얼마나 저항했는지 우리는 너무도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타(他)교단 관계자들이 벤치마킹(bench marking)하기 위해 우리 총회 국내선교부를 찾을 정도로 모범적아고 미래지향적인 정책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는 기쁜 소식을 접했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총회 산하의 자립교회가 합력하여 미자립 교회에 지원하는 액수가 해마다 증가하여 2008년도 후원금 총액은 무려 183억 137만원이라고 합니다. 정말 놀라운 일입니다. 우리 총회의 저력을 새삼 느낄 수 있었습니다. 


    2008년도 국내선교부 보고에 의하면 우리 경안노회는 전국 63개 노회 가운데 미자립 교회의 수(數)에 있어서 세 손가락(Big three) 안에 들어갑니다. 참고로 1위는 전남노회로 80처, 2위는 경안노회로 75처, 3위는 대전서노회는 74처, 공동 4위는 영주노회와 순서노회로 68처, 5위는 경기노회로 65처, 공동 7위는 대구남노회와 광주동노회와 충청노회로 64처, 10위는 충남노회로 63처입니다. 이런 미자립 교회가 있는 노회는 자립하고 있는 노회로부터 후원을 받아 노회의 교역자들 생활비를 보조하고 있습니다. 미자립 교회 교역자들의 생활비는 자(自)노회 지원금과 타(他)노회 지원금을 합하여 충당됩니다. 참고로 타노회로 부터 지원받는 총액이 가장 많은 노회는 진주노회로 1년에 4억 3500만원, 2위는 충남노회로 2억 7600만원, 3위는 충청노회로 2억 6592만원, 4위는 경안노회로 2억 4600만원, 5위는 순서노회로 2억 3460만원입니다. 우리 이웃인 영주노회는 단지 7680원만을 타노회로 부터 지원받고 있고, 경남노회는 3840만원을 지원받고 실정입니다. 우리 경안노회의 자부담은 1억 9940만원, 영주노회의 경우는 2억 9796만원, 경남노회는 4억 2120만원입니다. 이 통계는 제게 많은 것을 생각하게 만들었습니다.   


    미자립 교회가 많은 농어촌 노회는 총회의 정책방향이 교역자 생활비 평준화에서 교회자립(敎會自立)으로 바뀌고 있다는 것에 적지 않은 부담을 가지고 있습니다. 물론 총회 산하의 모든 교회들이 자립하면 그보다 바람직한 일은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지역에 따라 자립이 불가능한 곳도 분명히 존재함을 인정해야 합니다. 교회 자립을 위한 총회의 정책이 본격적으로 시행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미자립 교회 수는 좀처럼 줄어들지 않고 있는 근본적인 이유가 상존하기 때문입니다. 국내선교부 보고에 의하면 총회 산하의 미자립 교회 수는 2004년도에 1959처, 2005년도에 2537처, 2006년도에 2462처, 2007년도에 2524처, 2008년도에 2459처입니다. 계속되는 교회 개척과 오랜 역사와 전통을 지녔지만 불가항력적인 인구의 감소로 인해 미자립 교회로 전락할 수밖에 없는 농어촌 교회가 늘어만 가고 있습니다. 사실 자립하기 힘든 농어촌 미자립 교회와 대도시와 주변에 있는 미자립 개척교회는 구별할 필요가 있습니다. 성장하여 자립할 가능성에 있어서 양자(兩者)는 큰 차이가 있기 때문입니다. 사실 교회 자립이나 미자립 교회란 용어가 자립하지 못하는 교회와 섬기는 교역자들에게 “당신의 교회는 무능한 교회요, 당신은 무능한 목회자다”라는 불명예를 줄 가능성이 있다면  사용에 주의해야 합니다. 오늘날 한국교회의 모판(母坂)과도 같은 농어촌 교회가 그동안 감당해온 사명을 폄하하거나 무시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적지 않은 농어촌의 미자립 교회는 오랜 역사 속에서 교회의 사명과 역할을 충실히 수행해 왔음은 부인할 수 없습니다. 도시교회 성도 중 상당수가 농어촌교회 출신임은 주지의 사실입니다. 가뜩이나 멈출지 모르고 계속 감소하는 인구 때문에 의기소침하고 있는 농어촌 교역자들의 사기를 떨어뜨리는 일은 더 이상 없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또한 교회의 재정적인 자립에만 초점을 맞추게 될 때 목회자는 너무 큰 부담을 가질 수밖에 없습니다. 이것은 미자립 교회가 당연히 타교회의 재정적인 도움을 받아야 되고 늘 의존하는 교회로 남아있어도 된다는 것을 뜻하는 것은 절대 아닙니다. 오히려 목회의 본질은 반드시 양적 성장과 풍요로운 재정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님을 성경은 우리에게 교훈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자립이 중요한 것은 사실이지만 자립 보다 더 중요한 것은 한 사람이라도 더 구원의 길로 인도하는 것임을 누구도 부인할 수 없습니다. 또한 교회 미자립의 모든 원인이 마치 교역자의 자질 부족에서 출발하는 것으로 오해하게 만들어서도 곤란합니다. 사실 농어촌에서 교회를 섬기면 무능력한 목회자이고, 오래 동안 한 교회를 섬기면 마치 이동할 다른 사역지가 없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눌러앉는 것으로 보는 고정관념은 농어촌 교회를 섬기는 교역자들에게 절망감을 줍니다. 따라서 총회가 추진하고 있는 교회자립화 제(諸)정책이 “목회를 잘 하지 못해 내가 섬기는 교회가 부흥하지 못하고 있다”는 패배의식과 절망감을 고착시켜서는 곤란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교회부흥이 일정 부분 교역자의 몫이긴 하지만 목회자에게 전적으로 책임을 지우는 것은 옳은 일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총회에서 시행하고 있는 ‘교회 자립 교육훈련’이 미자립 교회의 교역자들의 인격과 목회철학을 무시하는 반강제적인 프로그램이 되지 않도록 세심한 주의가 필요함을 분명히 느낍니다. 


    한국 교회의 모판과 같은 농어촌 교회는 인구 감소와 노령화로 메말라가고 있습니다. 아니 죽어가고 있습니다. 이대로 가다가는 농어촌의 대다수 교회가 고사(枯死)할지 모릅니다. 농어촌 인구의 대다수는 이미 60을 넘어서고 있지 않습니까? 아기의 울음소리가 그친지 오래 되었습니다. 사실 농어촌교회의 붕괴 현상은 도시교회에 부메랑이 되어 돌아올 수밖에 없음을 알아야 합니다. 따라서 미자립 교회가 회생할 수 있는 길이 있다면 총회와 도시 교회는 발 벗고 도와야 합니다. 사실 ‘미자립’이란 단어는 생활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교역자들에게 절망을 줍니다. 따라서 재정적인 측면만을 강조하는 ‘미자립 교회’라는 표현 보다는 재정적인 면, 교인의 수, 여러 가지 측면에서 상대적으로 열악한 ‘작은 교회’라는 단어가 더 적합할지 모릅니다. 미자립이란 단어는 부정적이고 절망적인 느낌을 주는 반면, 작은 교회는 긍정적이고 희망적인 어감을 주기 때문입니다.


   총회는 농어촌의 작은 교회들의 재정적인 도움 뿐 아니라 회복할 수 있는 방법을 연구하여 제시해야할 책임이 있습니다. 그래서 총회 산하의 교회자립위원회에서는 농어촌의 작은 교회들이 스스로 자립할 수 있도록 ‘교회자립 교육훈련’을 한 가지 방법으로 제시하고 있습니다. 이 훈련은 미자립 교회를 섬기는 교역자들의 자존감과 영성을 회복시키고, 지역의 특수한 상황에 맞는 새로운 선교방향을 제시하여 미자립 교회가 재정적으로 자립할 수 있는 방법을 제시하는 것입니다. 급변하는 시대와 환경에 맞는 교육과 훈련을 통해 농어촌에 적합한 목회 패러다임(paradigm)으로 바꾸어 나가자는 취지입니다. 국내선교부가 제안하는 이 교육은 미자립 교회의 교역자들의 의식전환과 적합한 대안(代案)을 통해 침체에 빠져있는 농어촌의 작은 교회들에게 돌파구를 제공하려는 데 목적이 있습니다. 즉 교회와 주변 공동체 모두에게 유익이 되는 새로운 목회 모델(Model)을 찾아보자는 것입니다.


   이미 새로운 교회론(敎會論)과 목회 모델을 통해 지역사회에 거룩한 영향력을 나타내는  신앙공동체가 우리 주변에 등장하고 있습니다. 노인 복지, 지역 아동 센터 등 사회 복지 프로그램과 친환경농법과 농수산물 직거래 방법 등을 도입하여 21세기에 맞는 농어촌 교회의 교회론과 목회 모델을 정립한 교회들이 존재하고 있습니다. 물론 이러한 대안들을 농어촌의 모든 교회가 획일적으로 도입할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이것들이 침체된 목회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고 자립을 도울 수 있음도 부인하기 힘든 것도 사실입니다. 하지만 생각을 갖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좀처럼 돌파구를 찾지 못하고 있는 작은 교회와 교역자들에게 새로운 대안을 공급하여 교회자립 뿐 아니라 지역사회에서 교회의 위상(位相)을 새롭게 구축하는 일에 도움을 주는 일에는 모든 교회들이 힘을 모아야 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교회의 자립 보다 교회가 속해 있는 지역사회를 살리는 일이 우선임을 절대로 잊어서는 않됩니다. 만일 교회의 지상목표가 생명을 살리는 일이 아니라 자립이라면 주객(主客)이 전도(傳導)되어 있음을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교회는 지역사회의 생명을 살리는 일에 거룩한 영향력을 발휘해야 합니다. 교회의 존재 이유는 구원에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다양한 방법을 통해 농어촌 교회는 총회가 추진하고 있는 ‘생명 살리기 운동’에 앞장 설 뿐 아니라 이 일에 중심이 되어야함은 주지의 사실입니다. 비록 미자립 교회라 하더라도 지역사회의 생명을 살리는 일에 중심적인 역할을 하여 지역 주민으로부터 칭찬과 박수와 존중을 받는다면 작은 교회가 아니라 아름다운 교회, 향기 나는 교회, 능력 있는 교회임을 누가 부인할 수 있겠습니까? 1980년대 까지 한국교회 부흥과 성장의 모판이었던 농어촌의 교회들이 21세기 한국교회와 지역 공동체의 소생(蘇生)을 알리는 기적의 모판이 되기를 간절히 기도하고 있습니다. 



2008년 7월 9일

김승학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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