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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7-22 11:36:07 조회 : 2818         
오늘도 목사님을 생각하며 기도했습니다 이름 : 김승학   
 

오늘도 목사님을 생각하며 기도했습니다


   오늘 저녁 중보기도용사(仲保祈禱勇士)들이 다시 뭉쳤습니다. 한 달에 한 번씩 모이는 중보기도용사의 밤에 모였습니다. 무더운 날씨임에도 불구하고 친교실에 기도하기를 사랑하는 사람들로 가득 찼습니다. 모인 얼굴을 보면서 모두가 이 시간을 사모하고 기다렸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연초에 하나님께서는 우리 교회에 200명의 중보기도용사를 선물로 주셨습니다. 솔직히 저는 100명의 중보기도용사를 하나님께 구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꼭 두 배의 중보기도자를 주셨습니다. 아마 우리교회가 기도해야할 몫이 제가 생각하는 것 보다 두배로 많았나 봅니다. 그 때 전 우리교회가 더욱 열심히 기도해야한다는 주님의 음성을 들었습니다. 지난 6개월 동안 하나님께서는 이들 중보기도용사들을 귀하게 사용하셨습니다. 중보기도자들의 기도를 통해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능력을 나타내 보이셨습니다. 수술한 환자에게는 의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빠른 치유와 회복을 허락하셨습니다. 갑작스러운 폐렴으로 앞날이 불확실한 상황 속에 있었던 분에게는 준비된 병실과 적절한 의사 선생님을 붙여주셨습니다. 누구도 생각하지 못했던 일입니다. 경기 침체와 고유가로 인한 물가상승으로 하루에 한 개의 건설업체가 도산하여 곳곳에서 공사가 중단되는 상황에서도 하나님께서는 우리 교회 100주년 기념관의 공사가 지속되게 하셨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불가능하다고 생각한 도청 유치도 하나님께서는 이루어 주셨습니다. 얼마나 많은 일들이 중보기도를 통해 우리에게 보여졌는 지, 전 놀라지 않을 수 없습니다. 모든 것이 중보기도용사들의 기도 덕분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번 주 심방한 가정에서 들은 이야기는 제게 많은 것을 생각하게 만들었습니다. 교회 출석이 너무 뜸한 가정을 방문했습니다. 예배에 출석하지 않고 수개월동안안 방학(?)에 들어간 이유를 묻자 처음에는 속마음을 드러내놓지 않았습니다. 아직 결혼하지 않은 자녀들을 위해 어머니가 더욱 기도해야할 때라는 제 말에 “하나님께서 기도에 응답하지 않으시던데요”라고 하는 말을 던졌습니다. 이전에는 성경쓰기도 열심히 했다는 남편의 이야기를 듣고는 “아, 하나님께 단단히 실망했구나”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때 난 ‘기도’라는 책의 저자이며 19세기 남아프리카의 성자(聖者)로 일컬어지고 있는 앤드류 머레이가 한 말이 생각났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드리는 기도의 양(量)이 채워질 때 까지 하나님께서는 응답하시지 않는다”는 것이었습니다. 내가 생각할 때는 충분히 기도했는지 모르지만 하나님 보실기에 부족하고 모자라기 때문에 하나님의 응답이 아직 없을 수도 있다는 말을 했습니다. 물론 채워지기 위해서 얼마의 기도가 부족한지는 아무도 모르고 하나님만 아시겠지만 고지(高地)가 바로 저기라면 그동안 기도한 시간, 땀. 열심이 너무 아깝지 않냐고. 앤드류 머레이 선교사의 이 말이 성경을 근거로한 것인 지 확신은 없지만 그래도 어느 정도는 이해가 됩니다. 우리 중보기도용사들의 기도는 이처럼 기도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응답에 부족한 기도자들의 기도를 채우는 역할을 한다고 전 생각합니다. 그래서 중보기도용사들은 하늘의 문을 여는 소중한 사람들인 것입니다. 기도하고 싶어도 기도할 줄 모른 사람들을 대신해 반드시 채워야하는 기도의 총량(總量)을 보충하는 사람들이 중보기도용사들입니다. 기도하고 싶어도 기도할 힘조차 남아있지 않은 사람들을 위해 기도하여 모자란 기도의 양을 채우는 사람들이 바로 중보기도용사들입니다. 하나님의 역사가 펼쳐지기 위해 부족한 기도의 양을 보태는 역할을 하는 사람들이 중보기도용사들이 분명할진데 이들의 중보기도가 얼마나 값진 것이겠습니까?   


   중보는 이쪽과 저쪽의 중간에서 서로를 연결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중보기도는 다른 사람을 위해 하나님의 은혜를 간구하게 위해 내가 하나님께로 나아가 간구하는 것을 뜻합니다. 중보기도는 연결의 의미가 강합니다. 얼마 전 우리교회 중보기도대의 이름을 ‘징검다리’ 중보기도대로 정했습니다. 징검다리는 이쪽과 저쪽을 연결하는 다리와 같은 기능을 합니다. 징검다리의 특징은 다음과 같습니다. 우선 징검다리에 사용되는 돌은 작은 것이든 큰 돌이든 자신이 원한다고 그 자리에 놓여지는 것이 아닙니다. 스스로 걸어가거나 뛰어갈 수 없습니다. 누군가가 필요하기 때문에 직슴의 자리에 갖다 놓은 것입니다.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중보기도 용사로 부르셨습니다. 적지 않은 분들은 스스로 중보기도용사가 될 것을 결단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중보기도용사가 된 것은 우리의 의지로 된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하나님의 선택과 부르셨기 때문입니다. 구원이 하나님께서 무조건 주시는 선물이듯, 중보기도용사로 부름 받은 것 역시 하나님께서 주신 은혜의 사건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기도를 통해 당신의 역사를 이루시기 위해 우리를 중보기도자로 세우신 것입니다. 또한 징검다리의 또 다른 특징은 자신이 위치하고 있는 곳에서 흔들흔들 움직여서는 않됩니다. 고정되어 있어야 합니다. 견고하게 자리하고 있어야 이편과 저편을 안정적으로 연결할 수 있습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중보기도자로서의 역할을 하기 위해서는 하나님께서 주신 사명에 흔들림이 없어야 합니다. 중보기도자로서 사영과 역할을 중단 없이 감당해야 합니다. 이러 저러한 일로 중보기도의 사명을 중단하거나 게으름으로 기도의 양을 채우지 못한다면 기도의 능력이 나타나지 않을 수 있음을 잊어서는 않됩니다. 나의 태만으로 인해 하나님의 응답이 늦어지는 일이 있어서는 곤란합니다. 마지막으로 징검다리는 수많은 사람들에게 밟힙니다. 밟히지 않는 징검다리는 그만큼 사용이 덜 된다는 의미입니다. 많이 밟히는 징검다리일수록 귀하게 사용되는 것임에 들림이 없습니다. 중보기도자에게는 희생이 따른다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을 위해 중보기도하기 때문에 내 자신의 희생이 많으면 많을수록 내가 중보기도자의 역할을 확실하게 하고 있다는 증거가 되는 것입니다. 반면에 중보기도자로 세움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헌신의 시간과 수고의 땀이 적다면 그만큼 내가 신실한 중보기도자가 아닐 수도 있음을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전 중보기도의 빚을 너무도 많이 지고 있는 사람입니다. 3살 때 어머니께서 서원(誓願)하신 이후 제가 장래 목사가 될 아이임을 늘 사람들에게 밝히셨습니다. 전 어린 마음에 부끄러웠습니다. 나중에 목사의 길을 걸으면 될텐데 왜 그렇게 많은 사람들에게 공개하시지, 그런 어머니에게 불만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머니가 그렇게 하신 이유를 성장해서 알게 되었을 때 어머니가 깊은 뜻을 알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하신 어머니에게 너무나 감사했습니다. 어머니께서 장래에 목사가 될 아이라고 하신 이유는 기도를 부탁하기 위해서 였습니다. 장래 목사가 될 것을 공개하시면서 자연스럽게 그 분들에게 중보기도를 부탁하셨던 것입니다. 사실 그 때는 중보기도라는 용어가 일반적으로 사용되고 있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어머니께서는 중보기도의 능력을 누구보다도 잘 아셨던 분입니다. 그래서 미리 미리 제 장래를 위해 기도의 양을 축적해 놓으셨던 지혜로운 분이셨습니다. 어렸을 때부터 저를 알고 있는 분들의 중보기도를 먹고 자랐습니다. 수없이 많은 분들이 저를 위해 기도한 시간들이 얼마나 많겠습니까? 얼마나 다양한 기도제목이 하늘에 쌓였을까요? 이러한 생각을 하면 전 마음이 든든합니다. 목사가 된지 15년이 되는 지금도 저와 사역과 제가 섬기는 교회를 위해 기도하시는 분들이 곳곳에 수없이 있습니다. 우리 교회 성도들 뿐 아니라 수 십년 동안 저를 위해 기도하는 중보기도가 오늘도 하늘에 끊임없이 쌓이고 있습니다. 얼마 전 미국에 있을 때 섬겼던 교회의 은퇴 장로님 부부와 통화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그 분들은 고속도로로 20분 정도 떨어진 교회에 새벽마다 나가 기도하시는 분이십니다. “오늘도 목사님을 생각하며 기도했습니다”라는 말씀에 전 얼마나 힘이 되었는지 모릅니다.


   중보기도용사 200인은 우리 교회의 자랑인 동시에 힘입니다. 이들이 하루에 3번씩, 동일한 시간에, 한 목소리로 하는 기도가 하늘의 보좌(寶座)를 움직이는 기도임을 전 확신합니다. 그래서 세상을 살리는 능력의 도구가 될 것을 전 의심하지 않습니다. 아침 10시, 오후 2시. 밤 10시. 동일한 기도제목을 가지고 누군가를 위해, 교회를 위해, 국가와 민족을 위해, 세계 선교와 평화를 위해 전심(全心)으로 기도할 때 주님께서 응답하실 시간이 가까이 오고 있음을 전 확신합니다. 기도의 불꽃이 꺼지지 않아야 합니다. 기도의 불이 계속 타오르게 해야 합니다. 하늘나라를 위해서도, 이 세상을 위해서도, 안동 땅을 위해서도, 우리 안동교회를 위해서도, 가정을 위해서도 여러분은 정말 소중한 사람들입니다.



2008년 7월 18일

김승학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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