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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12-13 22:39:43 조회 : 754         
병원의 전기실에서 첫 예배를 드린 교회 이름 : 김승학   

병원의 전기실에서 첫 예배를 드린 교회


수년 전 안동 제일 감리교회 창립 60주년 감사예배에 참석했습니다. 교파(敎派)가 다름에도 불구하고 저는 축사를 부탁받았습니다. 아마 장로교 목사님 제게 순서를 부탁한 이유는 안동 제일 감리교회와 우리 교회의 각별한 관계 때문일 것입니다. 안동 제일 감리교회의 시작에 우리 안동교회는 적지 않은 역할을 했습니다. 안동 제일 감리교회는 1951년 4월 29일 첫 예배를 드렸습니다. 6·25 동란으로 단양 감리교회를 섬기던 서영준 목사님과 인근의 감리교회 성도들이 피난을 떠나 안동으로 오게 되었고 이들이 지금의 안동성소병원 마당 전기실에서 창립예배를 드림으로써 안동에서 감리교회의 역사가 시작되었습니다. 사실 당시 성소병원의 전기실은 벽돌로 지은 창고에 불과했습니다. 그럼에도 당시 전화(戰禍)로 안동시 건물의 70-80%가 파괴당했습니다. 그래서 전쟁으로 살아남아 있는 건물이 거의 없었던 상황에서 성소병원의 전기실은 첫 예배 장소로 최고의 장소였을지도 모릅니다. 이 때 안동교회 남전도회와 여전도회는 서영준 목사님의 목회 사역에 물질과 기도, 그리고 인적 자원으로 도왔습니다. 1951년 3월 4일 남 · 여전도회가 전도인 1인을 결정해 3월 한 달 동안 물질로 도와 이 전도인이 전도할 수 있도록 결의하고 당회에 청원했는데 이미 안동에서 예배를 드리고 있던 서영준 목사님을 전도인으로 당회가 허락했음을 ‘안동교회 80년사’는 기록하고 있습니다. 후원 금액은 4만원으로 하고 남·여전도회에서 부담할 수 없는 금액은 교회에서 지출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이것을 계기로 안동 제일 감리교회는 1951년 4월 29일 첫 예배를 드릴 수 있었던 것입니다.

 

이후 안동 제일 감리교회는 1951년 7월 1일 북문동 15-6번지 62평 일반주택을 구입했습니다. 당시 부산에 있던 감리교의 총리원(감독 유형기 목사)의 보조금으로 교회 대지를 구입해 수리하고 예배를 드림으로써 안동 성소병원의 셋방(?) 시대를 청산하게 됩니다. 당시 감리교회에 출석하던 교인들이 얼마나 기뻤을까요? 사실 피난 내려온 감리 교인들은 물적(物的)인 후원도 필요하지만 인적(人的) 도움도 필요했을 것입니다. 이 때 안동교회는 당시 시무장로로 섬기던 조홍로 장로님으로 하여금 당시 적산 가옥을 구입하든 데 도움을 주었습니다. 교인들이 예배드릴 처소가 필요했기 때문입니다. 더욱이 안동을 잘 알고 있는 헌신자가 있다면 그것은 천군만마(千軍萬馬)를 얻는 것이나 다를 바 없었을 것입니다. 그때 안동교회에도 꼭 필요한 인재를 감리교회로 보냈습니다. 그분은 1952년 2월 12일에는 안동 제일 감리교회 첫 번째 피택 장로로 조상국 장로님입니다. 조상국 장로님은 감리교 신학대학 출신으로 당시 안동교회에서 유년주일학교 부장으로 헌신하던 집사님이었습니다. 안동에 감리교회가 없었기 때문에 장로교회인 안동교회를 섬겼지만 안동에 감리교회가 설립되면서 원래 영적(靈的) 고향인 감리교회로 돌아가 섬길 수 있도록 당시 담임목사님이셨던 고(故) 김광현 목사님이 결단하셨던 것입니다. 김목사님은 조상국 집사님을 설득하고 권면하여 모든 면에서 열악한 감리교회로 보냈던 것입니다.

 

당시 안동교회의 유년주일학교에는 1,000 명에 가까운 초등학생들이 매주일 출석하고 있었고, 그 책임자가 바로 조상국 집사님이었기 때문에 조상국 장로님이 안동교회를 떠나는 것은 그리 간단한 일이 아니었습니다. 안동교회로 볼 때는 영적 지도자를 잃게 되는 큰 손실을 감수해야 했습니다. 하지만 김 목사님의 결단과 조상국 집사님의 순종은 안동 제일 감리교회의 설립과 성장을 가능하게 했던 것입니다. 그 때 순종하며 안동 제일 감리교회로 간 조상국 집사님은 그 후 안동 제일 감리교회의 초대 장로가 되었습니다. 그 후 안동 제일 감리교회는 1954년 현 교회 부지인 옥정동 464-9 번지를 구입하고 이듬해 새 성전을 건축하여 입당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와 봉사자들의 헌신으로 드디어 발전의 토대가 마련된 것입니다. 하지만 첫 성전이 준공된 지 20년이 지나지 않은 1973년 7월 전기 누전으로 예배당은 전소(全燒)해버렸습니다. 얼마나 낙심이 되었겠습니까? 그러나 성도들은 용기를 내었습니다. 그 해 11월 교우들의 기도와 헌금으로 다시 예배당을 재건되었습니다. 그 때 안동교회는 주일 예배 시 감리교회 재건축을 위해 정성껏 헌금해 70,000원을 전달함으로써 안동 제일 감리교회와 특별한 관계를 계속 이어갔습니다.

 

이런 이유 때문인지 모르지만 안동 제일 감리교회는 교회 창립 60주년을 맞이하며 드리는 감사예배에 교파도 다른 장로교회인 안동교회를 담임하고 있는 제게 축사와 권면을 부탁했습니다. 안동 제일 감리교회는 역사적인 안동의 첫 번째 감리교회입니다. 안동 제일 감리교회는 힘들고 어려운 시간을 극복하고 지난 60년 동안 감리교의 정체성을 유지하며 하나님의 사역에 동참해왔습니다. 사실 안동은 장로교회가 대세(大勢)를 이룹니다. 그 이유는 1908년 시작된 안동 선교부는 장로교 선교부였습니다. 1951년 4월 감리교회가 안동에서 첫 예배를 드리기 전인 43년 동안 안동에는 오직 장로교회 밖에 없었습니다. 근 반세기 동안 오직 장로교만이 안동에는 존재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감리교회가 안동에 세워졌습니다. 당연히 설움을 당할 수 있는 처지였지만 안동교회의 협력과 도움으로 안동 제일 감리교회는 서서히 자리를 잡아갈 수 있었습니다. 안동 제일 감리교회는 그동안 열악한 환경 속에서 나름대로의 사명을 온전히 감당해왔습니다. 60주년을 맞이한 안동 제일 감리교회는 당연히 축하받아야합니다. 하지만 가장 큰 축사는 앞으로 하나님께서 안동 제일 감리교회를 통해 이루실 비전에 대한 은혜라고 생각합니다. 과거 60년 동안 안동 제일 감리교회를 통해 하나님께서 이루신 일은 분명히 감사한 일이지만 앞으로 안동 제일 감리교회를 통해 하나님께서 이루실 일에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평균 수명이 늘어난 요즘은 환갑(還甲) 잔치를 하는 사람들이 많지 않지만 불과 얼마 전 까지만 하더라도 60세가 되면 당연히 환갑잔치를 했습니다. 1주일의 주기가 7일 이듯, 1년의 주기가 12개월 이듯, 육십갑자(六十甲子)의 주기는 60년임을 우리는 너무도 잘 압니다. 이것은 고대 중국이나 우리나라 역법에서도 일상적으로 사용되었던 주기 이름입니다. 육십갑자의 한 해는 각기 다른 간지(干支) 이름을 가지고 있습니다. 옛날 우리 조상들은 사건이나 행사가 있었던 해(年)를 나타낼 때 간지를 사용했습니다. 특히 출생한 지 60년이 되는 해를 환갑, 또는 회갑(回甲)이라고 하는데, 이것은 자기가 출생한 간지가 만 60년이 되면 한 바퀴 돌아 도로 그 자리로 돌아오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안동 제일 감리교회가 바로 그 회갑을 맞이한 것입니다. 60이라는 숫자가 이런 의미를 가지고 있듯 교회 창립 60주년을 맞이하는 안동 제일 감리교회는 다시 태어나 이제 1살이라는 생각을 갖고 새롭게 출발해야 합니다.

 

지난 60년 동안 이룬 주님의 사역은 잊고 오늘 새롭게 태어났다는 의식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60년 전 피난 내려와 첫 예배를 드림으로 감리교회를 시작한 믿음의 선배들이 가졌던 그 믿음, 그 마음, 그 헌신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얼마나 절박했겠습니까? 그들은 목숨을 걸고 피난했고, 전심(全心)으로 하나님께 예배를 드렸을 것이며, 교회를 건축하기 위해 온갖 희생과 헌신을 마다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생명을 걸고 하는 일은 언제나 무섭습니다. 능력이 있습니다. 그래서 어느 누구도 생각하지 못한 일을 해냅니다. 안동 제일 감리교회는 60년 전 안동 제일 감리교회를 시작한 믿음의 선배들이 가지고 있는 바로 그 초심(初心)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그럴 때 안동은 희망이 있을 것입니다. 그럴 때 안동 제일 감리교회는 다른 교회에 희망을 줄 수 있을 것입니다. 그 때 안동 제일 감리교회는 죽어가는 수많은 영혼을 살려 안동을 예수마을로 만드는 복음화의 기적을 만들어내는 신앙공동체가 될 수 있을 것으로 전 확신합니다.

 

뿐만 아니라 안동 제일 감리교회는 존 웨슬리의 정신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웨슬리가 시작한 신성클럽(The Holy Club)은 오늘 날 소그룹 운동의 모델과도 같습니다. 웨슬리의 신성클럽은 옥스퍼드 대학 내의 소그룹으로 몇 명의 학생들의 모임으로 출발했습니다. 매일 오후 6시에 모여 9시 까지 계속되었습니다. 이들은 모여 기도하고, 헬라어 성경을 읽고, 기독교 고전(古典)을 연구했습니다. 오늘 날의 시각으로 볼 때도 매우 수준 높은 소그룹이었습니다. 이것이 발전하여 감리교회의 대표적인 소그룹인 속회가 되었습니다. 모임에서는 낮의 생활을 돌아보며 회개의 시간을 가졌습니다. 수요일과 금요일에는 점심을 금식해 모은 돈으로 감옥을 방문하고 병자를 돌보는 데 사용했습니다. 안동 제일 감리교회는 감리교회의 이런 영성(靈性)을 회복해야 합니다. 그 때 안동 땅에서 하나님의 구속(救贖) 역사가 새롭게 시작될 것으로 전 믿습니다. 모두가 바라는 부흥의 역사가 안동 제일 감리교회에도, 이 안동 땅에도 찾아올 것입니다. 안동 제일 감리교회가 웨슬리 정신을 회복한다면 안동의 영적 공기가 안동 제일 감리교회를 통해 분명히 달라질 것입니다.

 

안동 제일 감리교회 성도들은 이 시대에 교회에 주시는 하나님의 비전을 영적인 눈을 활짝 열고 반드시 보아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세미한 음성에 귀를 기울어야 합니다. “보라 내가 새 일을 행하리니 이제 나타낼 것이라 너희가 그것을 알지 못하겠느냐 반드시 내가 광야에 길을 사막에 강을 내리니”(사 43:19) 광야 같은 안동 땅에 안동 제일 감리교회를 통해 새로운 구원의 대로(大路)가 활짝 열리기를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할 뿐입니다. 또한 사막 같은 안동 땅에 안동 제일 감리교회를 통해 구원의 생명수(生命水)가 넘치기를 소원합니다. 사실 이것은 비단 안동 제일 감리교회를 통해서만 나타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안동의 모든 교회들을 통해서 구원의 생명수가 넘쳐흘러 안동 땅이 예수 마을로 변화되는 그 날을 우리 세대에 반드시 목격할 수 있기를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합니다.


2016년 12월 12일

김승학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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