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동교회 홈 | 홈으로 | 로그인 | 회원가입 |

2007-07-16 22:22:57 조회 : 2974         
쉼없이 돌보시는 하나님 이름 : 김승학   

쉼없이 돌보시는 하나님

   얼마 전 구미 금호산 근처에 있던 중 3 짜리 맏아들을 pick up 해야 할 기회가 있었다. 밤 9시 30분까지 아이를 pick up 해야 했는데 교회에서 새가족 안내과정 프로그램을 마치고 나니 이미 8시 20분이 넘어 버렸다. 조금 일찍 끝낼 생각으로 시작했는데 생각처럼 되지 않았다. 그 시간에 안동을 떠나 아들이 있는 곳 까지 약속시간에 도착하는 게 무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특히 초행길이었기에 불안한 마음까지 있었다. 물론 출발하기 전 낮에 구미에서 교회를 섬기고 있는 동기 목사에게 전화해서 가는 길을 물어 보았다. 그는 안동에서 출발하여 목적지 까지 가는 길을 설명해 주었다. 그러나 설명의 요지는 도로에 있는 표지판을 잘 보고 따라가면 그리 어렵지 않게 목적지 까지 갈 수 있다는 것이었다. 그의 말을 들은 난 자신감이 생겨 내비게이션(Navigation)을 준비할 필요를 느끼지 않았다. 비록 늦은 시간이었지만 난 자신감을 가지고 안동을 출발하였다. 비교적 빠른 시간에 구미 시내까지 도착한 난 표지판에 온 신경을 집중하였다. 표지판을 놓치지 않으려고 시내 안에서는 서행하면서 표지판을 따라갔다. 그러나 어느 순간 난 목적지로 향하는 표지판을 놓치고 말았다. 갑작스러운 일에 난 당황하기 시작했다. 늦은 밤 밖에서 아들이 기다리고 있지 않으면 좀 늦어도 상관이 없지만, 아빠를 기다리고 아들을 생각하니 진땀이 나기 시작했다. 표지판을 잃고서도 난 계속 운전할 수밖에 없었다. 빠른 속도로 달리는 적지 않은 차들의 통행이 날 계속 운전하게 만들었다. 그 자리에 멈출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표지판을 잃고 난 후에도 선택해야할 갈림길이 계속 나타났다. 오른쪽으로 가야할 지, 아니면 왼쪽으로 가야할 지 난 선택해야했다. 목적지를 행해 제대로 가고 있는 지, 아니면 엉뚱한 방향으로 가고 있는 지도 모르면서 난 운전했다. 매우 어리석은 행동을 하고 있음을 알고 있었지만 난 그 때 어떠한 결정도 하지 못하고 있었다. 혹시 내가 표지판을 보지 못했을지도 모르니 표지판을 잃어버린 곳으로 돌아가서 다시 시작할까? 일단 차를 멈추고 나서 동기 목사에게 전화를 할까? 짧은 시간이었지만 여러 가지 생각들이 스쳐 지나갔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난 어떠한 결심도 하지 못하고 계속 운전했다. 그러나 사거리 정지 신호등 앞에 차들이 멈춰 섰을 때 영업용 택시가 눈에 들어왔다. 그것도 손님을 태우지 않은 빈차였다. 빨강색 신호등 앞에 잠시 동안 정차하고 있는 차들 중에 끼어 있던 난 결정을 내렸다. 그것은 앞에 있는 택시 운전자에게 부탁하는 일이었다. 비록 내가 택시를 타고 가지는 않지만 바로 뒤에서 따라 갈 테니 내가 원하는 목적지까지 가달라고 요청하였다. 택시 기사는 나의 제안을 흔쾌히 받아들였다. 곧 이어 신호등은 파랑색 불로 바뀌고 우리는 한 팀이 되어 운전하기 시작했다. 비록 예정된 시간보다 무려 15분 이상 늦게 도착했지만 더 이상 헤매지 않고 목적지에 도착한 난 한숨을 돌릴 수 있었다.

 

 이 일은 내게 몇 가지 값진 경험을 하게 만들었다. 우선 어떤 일을 하기 전에 보다 확실하고 정확하게 준비해야 한다는 것이다. 말만 듣고 철저한 점검 없이 일을 시작하는 것은 무모하다는 것을 새삼 느꼈다. 내비게이션을 가지고 출발했으면 큰 어려움 없이 도착했을 것이다. 가지고 있는 것조차도 제대로 사용하지 못하는 무지와 교만을 난 반성했다. 사실 우리는 적지 않은 경우 이와 비슷한 경험을 한다. 이미 내가 가지고 있는 것을 유용하게 사용하지 못하고 속수무책으로 당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철저한 준비와 검증이 부족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나의 무모함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돌보시고 도우시는 권고(眷顧)의 하나님이시라는 사실을 난 또 다시 확인할 수 있었다. 아들을 태우고 집으로 돌아오면서 목자가 양떼를 찾아 주의 깊게 살피며 돌보아 주는 성경적 의미의 권고를 난 생각했다. “인자가 무엇이관데 저를 권고하시나이까”(시 8:4)라고 고백한 다윗을 조금은 이해할 것 같았다. 연약한 피조물에 불과한 자신에게 그토록 큰 관심을 가지고 돌보시는 하나님을 향해 다윗은 감사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다윗을 돌보셨던 하나님이 나를 돌보시는 하나님이심을 난 그날 밤 확신하였다. 아들을 pick up 하기 위하여 금호산을 향해 가던 난 표지판을 놓치고 나서도 목적지를 향해 난 정확히 운전하고 있었고, 표지판이 보이지 않아 초조하고 불안한 마음이 들 때도 난 내 자동차 바로 앞에 정차해있던 택시를 보며 지혜로운 판단을 하였다. 이러한 일들을 생각할 때 나를 돌보시는 권고의 하나님께 난 감사할 수밖에 없었다. 비록 내가 경솔하고 무모하게 행동하는 순간에도 하나님께서는 놓치지 않고 날 주시하고 계셨다는 사실에 난 감격할 수밖에 없었다. 계속되는 무지와 교만에도 불구하고 권고의 하나님께서 쉬지 않고 베푸시는 긍휼은 날 놀라게 하였다. 더욱이 나를 선택하신 날 부터 시작된 하나님의 돌보심이 앞으로도 지속될 것을 생각하며 집으로 돌아온 난 ‘하나님께서 사랑하는 자에게 주시는 곤한 잠’(시 127:2)에 너무도 빨리 빠져 들었다.

2007년 7월 16일

김승학목사

  ◁ 이전글   다음글 ▷
목록

Copyright ⓒ 2009 안동교회 All rights reserved.
대표 : 안동교회 / 전화 : 054) 858-2000/2001 / 팩스 : 054) 858-2002  Designed by ando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