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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5-01 14:21:11 조회 : 2939         
육사(陸史) 선생님과 성경 이름 : 김승학   
 

육사(陸史) 선생님과 성경


   지금 생존하면 104세가 되는 육사 선생님이 일본어로 된 성경과 찬송을 가지고 있었다는 이야기를 얼마전 육사의 무남독녀인 이옥비 집사님으로부터 들었다. 무남독녀인 이집사님에 의하면 집에 있던 아버지의 유품 가운데 일본어 성경책과 찬송가를 분명히 보았다는 것이다. 하지만 당시에는 그것이 어떤 의미가 있었는 지 잘 몰랐기 때문에 성경을 포함한 아버지 육사의 많은 유품을 보존하지 못했다고 하면서 못내 아쉬워하였다. 난 궁금했다. 만일 육사가 성경과 찬송가를 가지고 있었다면 육사가 그리스도인이었을까? 그렇다면 이것은 획기적인 사건인 것이다. 이옥비는 육사 부인인 어머니의 기억을 전했다. 육사가 교회에 출석하는 것을 어머니는 기억하지 못한다는 것이었다. 당시 육사는 선교사들과 친분을 가지고 있었고, 아마 그래서 육사는 선교사들로부터 성경과 찬송가를 선물을 받았을 것이라고 어머니는 추측하고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육사는 자신이 소유한 성경을 읽었을 것이라고 이집사님의 어머니는 평소에 말했다는 것이다. 아마 육사가 선교사들과 친분을 가지고 있었을 뿐아니라 평송에 성경을 읽었다면 그의 작품세계에 어느 정도의 기독교적인 세계관이 반영되어 있지 않았을 까 하는 생각을 난 했다. 아마 육사의 작품을 기독교적인 관점에서 재조명해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육사의 무남독녀인 이옥비집사님을 난 이렇게 만났다. 우리 교회의 집사님 부부를 통해 이집사님이 안동에 머물고 계시다는 이야기를 전해들었다. 그러면서 우리 교회에 출석했으면 하는 데 주일 전에 먼저 이집사님을 만났으면 좋겠다는 연락을 받았다. 점심 식사자리가 마련되었고 그 때 처음으로 이집사님을 만날 수 있었다. 자그마한 몸의 이집사님은 조용하면서 단아한 모습이었다. 이집사님이 안동으로 내려오시게 된 동기는 다음과 같다. 안동 온혜에 있는 육사 문학관을 찾는 많은 방문객들이 육사 선생님의 무남독녀를 만나 대화하기를 원한다는 소식을 들었다는 것이다. 특히 김휘동 시장님이 직접 따님인 이집사님께서 육사 문학관에 일주일에 며칠이라도 지키고 있으면서 방문객들을 만나주셨으면 좋겠다고 설득해 거주지인 죽전을 떠나 안동으로 내려오게 되었다는 것이다. 지금까지 안동에서 단 한번도 살아본 적이 없었지만 1개월 동안 생활하면서 안동이 너무 포근한 인상을 받았다고 하면서 벌써 안동 시민의 일원이 된 듯 보였다.


   이어지는 이집사님의 말씀 속에서 집사님이 안동으로 내려오면서 영적인 문제로 많은 고민이 있었음을 알 수 있었다. 우선 섬기는 교회를 떠난다는 것이 걱정이었나 보다. 특히 안동이라는 땅이 유교, 무속, 불교가 성한 지역으로 당신이 안동에 내려왔을 때 영적으로 침체에 빠지지 않을 까 염려했다는 것이다. 영적으로 침체된 도시에 와 생활하면서 경험할 수 있는 영적인 문제를 염려하며 기도했다는 것이다. 난 집사님의 걱정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집사님은 당신이 교회에 출석하게 된 동기를 식사 자리에서 간증했다. 육사 선생님의 부인인 어머니는 블교인이었다. 규칙적으로 절에 나간 분이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어느 날 하나 뿐인 무남독녀 딸인 이집사님에게 “너는 열심이 부족한 절에 가지 말고 교회에 가라”는 유언을 남겼다고 한다. 어머니의 유언이 있었지만 그래도 교회에 갈 기회는 좀처럼 오지 않았다고 한다. 교회에 등록하지는 않았지만 이집사님은 교회에 나가 꽃꽂이를 도맡아 했다는 것이다. 그러다가 결정적인 기회가 찾아왔다. 막내 아들의 척추에 바이러스가 침투해서 뇌까지 문제가 생겨 병원에 입원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위기의 순간에 하나님께서는 이집사님에게 분명히 당신이 행할 길을 꿈으로 보여 주셨다고 간증했다. 어느 주일 새벽 3시경, 하나님께서는 십자가를 보여 주시면서 “도데체 넌 언제 정신차리겠느냐?”고 하시는 음성을 들었다는 것이다. 자신의 가장 연약한 부분을 사용하시는 하나님께 이집사님은 무릎을 꿇을 수 밖에 없었다고 한다. 막내 아들이 위기에 처했을 때 동경의 대상이었던 하나님을 만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던 것이다. 그 순간 머리 속에 떠오른 사람이 이종 오빠였다고 한다. 명성 교회에 출석하는 이종 오빠에게 전화를 걸고 싶었지만 너무 깊은 밤이었기에 전화를 하지 못하고 있다가 새벽기도회에 나가는 새벽 5시 까지 남은 2시간을 가슴 졸이며 기다렸다고 한다. 새벽 5시가 거의 다 된 시간, 오빠에게 전화를 걸어 부탁했다고 한다. “나 좀 교회에 데리고 가 주세요.”


   이집사님은 그 때 교회에 갈 것을 결심했지만 남편이 마음에 걸렸다고 한다. 남편의 허락을 받고 교회에 출석하고 싶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수십년 전의 일을 회고했다. 이집사님 내외가 결혼 초 카톨릭에서 영세를 받을 기회가 있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집사님의 남편이 직장 일로 영세 교육을 받을 시간이 없었고, 그래서 성당에서는 영세를 주지 않았다고 한다. 이것이 남편의 마음을 상하게 만들었고, 결국에는 영세 교육을 수료한 이집사님도 영세받는 것을 포기할 수 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성당에 가지 말자는 남편의 말에 순종해 그 후 성당에 수십년 동안 발도 들여놓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런 일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이집사님은 그 동안 마음은 있었지만 남편에게 교회 가자는 이야기를 꺼내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번 만큼은 용기를 내어 남편에게 말할 수 밖에 없었다고 한다. 그날 따라 남편은 출장 중이어서 집에 없었기 때문에 남편에게 승낙을 받기 위해 전화를 걸었지만 연결이 되지 았았다는 것이다. 주일 아침 예배에 꼭 참석하고 싶었지만 주일은 이렇게 지나가고 말았던 것이다. 결국 저녁 늦게 남편과 연결되어 이집사님은 속마음을 털어놓았다고 한다. 주고받은 대화의 요지이다. “난 결혼에서 지금까지 단 한번도 당신 말에 따르지 않은 게 없다. 당신도 잘 알지 않느냐? 그런데 당신의 허락을 꼭 받고 싶은 게 있다.” 남편은 진지한 이집사님의 말에 무거운 음성으로 답했다고 한다. “그게 뭐냐?” “정말 교회에 가고 싶은 데 나 혼자 만이 아니라 온 가족이 다 함께 가고 싶다.” 이집사님의 남편은 전화를 붙들고 30분 동안 아무런 말 없이 가만히 있었다고 한다. 아마 숨소리만 오고 갔을 것이다. 남편은 이집사님의 말을 이해했는 지 “알았다”고 하면서 전화를 끊었다고 한다. 승낙한 것이다. 그 후 온 가족은 교회를 열심히 섬기며 살아가고 있다는 것이 이집사님의 간증이었다. 


   특히 이집사님은 자신을 위해 중보기도해 주는 많은 친구들을 자랑했다. 특히 점심식사에 동행한 동생뻘 되는 분은 평소에 교회에 대해 별로 좋지 않은 인상을 가지고 있었는 데, 친척뻘 언니인 이집사님이 친구들과 통화하는 모습을 보면서 기독교에 대한 인상과 생각이 많이 바뀌고 있다는 이야기를 하면서 환한 미소를 지었다. 섬기던 교회의 성도들이 안동에 내려와 있는 이집사님을 걱정하며 서로 기도해주는 모습을 보면서 “야 이건 정말 좋은 사귐이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는 것이다. 이집사님을 통해 거룩한 영향이 흘러나와 점심 점심식사에 동행한 동생뻘되는 분도 주님께로 오는 날이 속히 오기를 난 기도하고 있다. 우리 교회에 등록하신 이집사님을 난 주일마다 예배시에 만난다. 우리 교회에 잘 적응하고 계시는 모습을 볼 때 난 기쁘다. 안동이 아버지 육사의 고향일 뿐아니라 이집사님의 새로운 영적 고향이 되기를 난 기도하고 있다.    


2008년 4월 30일

김승학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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