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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3-20 16:49:07 조회 : 306         
먼저 하나님(God First) 이름 : 김승학   

 

먼저 하나님(God First)

 

 

  경안고등학교는 1954220일 재단법인 경안고등학원으로 설립인가를 받았다. 이 날 반피득(潘彼得, Peter van Lierop) 선교사가 초대 이사장으로 취임했다. 동년 319일 경안고등학교는 6학급의 설립인가를 받았고, 41일 반피득 선교사는 초대 교장으로 취임했다. 1회로 졸업한 한 장로님은 개교할 당시 경안고등학교에 입학한 학생은 약 100명 정도였다고 기억하면서, 입학한 학생 거의 모두가 졸업했다고 말했다. 그만큼 학구열이 높았다는 의미일 것이다. 그는 처음 입학한 학생들은 교가가 준비될 때 까지 교가 대신 찬송가 488이몸의 소망 무언가를 불렀다고 말했다. 경안고등학교는 개교한 지 7년이 지난 19613월 한국인 교장 시대를 열었고, 한국인이 이사장이 된 것은 이듬해인 196211월이었다. 한국인 초대 교장은 김인한 선생이었다. 이사장의 경우, 초대 반피득 선교사, 2대 우열성(禹烈聖, Stanton R. Wilson) 선교사, 3대 마삼락(馬三樂, Smuel H. Moffett) 선교사, 4대 이사장에 다시 우열성 선교사를 거쳐 5대 이사장으로 19621126일 김동숙 장로가 취임하였다. 이 결과 선교사 시대가 끝나고 비로소 경안노회가 경안학원을 경영하는 시대로 바뀌게 되었다.

 

경안고등학교로 시작한 경안학원은 196137일 경안고등학교 병설 영안중학교 설립 인가(9학급)를 받았다. 그 후 1962119일 경안중학교로 교명을 변경했으며, 196411월 경안여자중학교, 196412월 경안여자상업고등학교(201032일 경안여자고등학교로 개명)가 설립 인가를 받음으로써 경안학원은 4개 기독교 학교를 포함하는 경북의 명문사학으로 성장했다. 지난 70년 동안 4개 학교에서 기독교 정신과 성경의 가르침을 받은 졸업생은 무려 80,000명이 넘는데, 이들 가운데 교회를 위한 교역자와 중직자들이 다수 배출되었다. 하나님께서는 경안학원에 물 붓듯이 은혜의 소낙비를 내려 주셨다. 4개 학교를 섬긴 교직원들의 헌신도 간과할 수 없겠지만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경안고등학교의 교시는 먼저 하나님’(God First)이다. 이 교시는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신 마태복음 633절을 근거로 한다.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고 걱정하지 말라고 하시면서 이런 것들은 모두 믿지 않는 사람들이 구하는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이어 하늘에 계신 하나님 아버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것을 다 알고 계신다고 하시면서 우선적으로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구하라고 말씀하셨다. 하나님의 나라는 영역의 개념이라기보다는 통치, 다스림이라는 의미를 갖는다. 다시 말해 우리가 가장 먼저 추구해야할 것은 하나님의 통치, 하나님의 다스림이라는 것이다. 즉 하나님의 나라는 가장 우선적으로 모든 일에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 세상을 만드신 창조주 하나님, 이 세상의 법을 제정하신 입법자 하나님이 우주만물을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다스린다는 것을 인정한다는 뜻이다. 이것은 설립된 경안학원이 앞으로 하나님의 주권 안에서 경영되기를 희망한다는 의미를 포함하는 것이다.

 

또한 경안학원의 교훈은 믿음으로 근면으로 협동으로 하나님 앞에서 진실하자이다.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면 하나님 앞에서 진실된 삶을 살 수밖에 없다. ‘하나님 앞에서코람 데오의 의미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경안학원 공동체는 항상 의식적으로 하나님의 앞에서 있음을 잊지 않고,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며 동시에 우리도 그와 함께 함을 의식하며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는 자연에서 창조주 하나님을 보고, 역사에서 통치자 하나님을 보며, 삶의 순간순간에서 은혜의 하나님을 볼 수 있어야 한다. 하나님 앞에서살아야 한다. 장로교를 시작한 칼빈은 모든 사건의 배후에서 하나님의 손을 발견하며, 이 모든 사건 가운데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손을 보며, 하나님의 은혜만을 전적으로 의지하며 살기를 소원했다. ‘하나님 앞에서의 삶을 살기 위해서는 진실된 믿음으로, 성실로, 그리고 협력해야 하는데, 70년 전 믿음의 선배들은 코람 데오신앙으로 교육하며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기를 소망하며 경안학원을 설립한 것이다.

 

경안노회는 1954220일에 경안학원을 설립했는데, 올 해 2024년은 경안학원이 설립된 지 70주년이 되는 뜻 갚은 해이다. 그러나 경안노회는 지금으로부터 101년 전인 1923년 제7회 정기노회에서 중등학교인 경안중학원을 설립하기로 결정했으며, 이듬해인 1924년에 경안중학원은 개교되었다. 다시 말해 경안노회는 지금으로부터 100년 전인 19244월 중등교육기관인 경안중학원을 설립했다는 것이다. 비록 이 경안중학원이 설립되고 폐교된 후 30년 동안의 단절이 있긴 하지만 엄밀한 의미에서 경안노회가 설립한 중등학교(중고등학교를 포함)인 경안학원의 설립연도는 70년 전이 아니라 100년 전으로 소급되어야 한다. 1910년대 초 당시 안동에는 교회가 경영하는 초등학교 수준의 학교들이 여럿 있었다. 대부분의 중소도시에는 초등학교 수준의 기독교 학교가 있었지만, 대도시와는 달리 중등학교는 설립되어 있지 않았다. 따라서 초등학교를 졸업한 학생들이 신앙과 무관한 공립학교로 갈 수밖에 없었다. 신앙적으로 교육받은 학생들이 졸업한 후 더 이상 상급학교에서 신앙적으로 교육받을 수 없는 것을 안타깝게 생각한 당시 믿음의 선배들은 기독교 가치관을 통한 중등교육의 필요성을 절감하고 기독교 정신으로 세워진 중등학교의 필요성을 제기했다.

 

그러나 여러 여건 상 행동에 옮기지는 못하고 있었다가 안동교회 제3대 담임인 정재순 목사가 제3대 경안노회장으로 재임하던 시기에 경안중학원 설립을 허락받고 경안중학원의 설립이 의욕적으로 추진되어 19244, 설립될 수 있었다. 19244월 개교될 경안중학원 운영을 위해 입학금 및 월사금과 더불어 생일헌금, 특별헌금 등이 갹출되었고, 교사(校舍)는 안동교회와 계명학교 교실을 사용할 것을 노회와 안동교회에 청원했다. 이것은 경안학원 운영 책임은 노회에 있다고 하더라도 실질적인 경영은 안동교회가 감당하였다고 볼 수 있게 하는 대목이다.초대교장에는 당시 경안노회장이며 안동교회 제3대 담임목사인 정재순 목사, 교사는 4, 학생수는 무려 100여명이나 될 정도로 뜨거운 관심 가운데 경안중학원은 개교했다. 참고로 정재순 목사는 안동으로 부임하기 전 경산과 대구에서 기독교 초등학교 교사로 근무하여 다음세대의 교육에 큰 관심을 갖고 있었으며, 대구 3.1운동 당시 경북노회 노회장이었던 그는 2년형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른 후 안동교회로 부임했다.

 

경안중학원의 교사는 현재 안동교회 부지 내에 있었다. 무료로 운영된 것이 아니라 교회의 후원과 더불어 학생들도 학비를 부담해야 했기 때문에 곧 재정적인 문제에 봉착했다. 원활한 학교 운영을 위해서는 학생들의 납부금과 지역교회의 후원, 그리고 선교부의 보조금이 필수적이었지만 당시 경안노회 산하의 교회들은 대부분 가난한 교회들이었다. 따라서 교회들은 노회가 정한 후원금을 납부하기에는 힘에 부칠 수밖에 없었다. 또한 대부분의 학생들 역시 수업료를 납부할 경제적 여력이 없었다. 뿐만 아니라 여러 도시에 설립된 중등학교가 민족운동에 앞장서는 것을 본 일제는 안동에 중등학교가 세워진 것을 부정적으로 생각하며 눈에 보이지 않는 방해공작을 폈다. 더욱이 경안중학원 운영에 결정적인 지원을 감당할 안동선교부는 경안중학원 문제로 일제와 껄끄러운 관계가 형성되어 선교에 방해가 될 것을 염려하여 소극적인 후원을 하게 됨으로써 경안중학원의 경영은 더욱 힘들어지게 되었다.

 

경안노회로부터 제한적인 도움을 받는 상황에서 실질적인 경안중학원 경영을 담당했던 안동교회는 공적 책임을 다하고자 하였다. 경안노회는 교인 1인당 50전씩 갹출한 특별성금을 모금하였으며, 생일헌금을 학원 운영비로 사용할 것을 제도화하기도 했다.특히 안동교회는 경영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경안중학원을 위해 특별헌금과 후원금 등을 통해 적극적으로 돕고자 했지만 재정적인 어려움을 더 이상 극복하지 못하고 1926616일 제10회 경안노회에서 안타깝게도 폐교를 보고하였다. 따라서 경북 북부지방의 교회들은 중등교육기관을 설립하여 기독교 정신으로 무장한 인재들을 양성할 수 있었던 절호의 기회를 놓치게 된다. 이 기회를 놓친 경북북부지방은 이후 기독교 정신으로 세워진 중등학교 설립이 어느 지방보다 늦춰지게 되었고, 따라서 청소년들을 기독교 신앙으로 양성할 기회도 상실하게 되었다.

 

참고로 경안중학원이 1925620여 평 규모의 교실 증축과 68명의 학생(보통과 9, 고등과 59)의 재학 기록으로 볼 때 학교가 정상궤도에 진입했지만, 노회가 외부의 재정적인 후원 없이 교육사역을 감당한다는 것은 큰 부담일 수밖에 없었다. 더욱이 외부 환경은 경안중학원에 부정적인 영향을 주었다. 각 지역의 기독교 학교 뿐 아니라 특히 대구지역의 중등학교인 계명학교 등이 민족운동에 앞장서게 되자 일제는 교회의 기독교 교육기관 설립을 상당히 견제하기 시작했고, 이것은 경안중학원을 돕고자 했던 안동선교부의 의지와 후원을 소극적으로 만들어 버렸다. 1926616일 경안노회록에는 경안중학원 폐교 관련 내용이 기록되어 있는데, 경안중학원이 설립된 후 2년여의 기간은 지역사회에 기독교 중등교육기관 필요성을 확인하는 정도의 의미로 경안노회와 지역교회들은 만족할 수밖에 없었다.

 

비슷한 시기에 복음을 기반으로 한 학교로서 서울의 배재학교, 경신학교, 정신여학교와 더불어 평양의 숭실학교가 중등교육기관으로 시작하여 인재양성기관으로서 지금까지 역사를 이어온 것을 볼 때, 경안중학원이 직면했던 시대적 환경과 학원을 유지할 여건이 마련되지 못한 것은 경안중학원 설립에 남다른 의지를 가졌던 정재순 목사를 비롯한 안동교회의 성도들, 그리고 경안노회 경내의 모든 교회가 안타까워했을 것이라 짐작할 수 있다. 그러나 경안노회가 비록 시대적 한계를 극복하지 못했지만 교육을 통한 복음사역의 소명을 져버리지는 않았다. 경안중학원 이후 안동교회를 중심으로 기독교 중등교육기관 설립과 확대에 적극적인 역할을 감당하는 계기가 되었다. 안동교회의 주도로 김광현 목사가 초대 이사장으로 역임하였던 경안노회유지재단은 앞서 언급한 것처럼 1954년 재단법인 경안고등학원을 설립하여 학원 선교에 힘쓸 수 있게 되었다.

 

특히 우열성 선교사는 안동지역 선교 뿐 아니라 경안고등학교 설립과 초기 학교 경영에 큰 족적을 남겼다. 그는 경안고등학교 설립을 위한 기성회 조직에 큰 역할을 감당했을 뿐 아니라 개교한 이후에도 경안학원 제2, 4대 이사장을 역임함으로써 초기 경안학원이 든든히 뿌리를 내리게 하는 데 공헌한 인물이다. 참고로 1980년 한국을 떠날 때까지 그는 경안고등성경학교 이사 및 교사, 영광학원 이사, 경안학원의 설립이사를 역임하는 등 교육활동 및 경북 안동지역의 선교활동에 주력했다. 선친이 목사였던 한 장로님은 비록 초등학교 학생이었지만 우열성 선교사를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다. 장로님은 의성에서 교회를 섬기던 부친에게 우열성 선교사가 늦은 밤 찾아와서 당시 교계의 뜨거운 감자였던 WCC 문제를 설명하고 의논하며 부친 목사님이 지역의 목사님들과 장로님들을 설득해달라는 이야기를 들었다는 것이다. 이후 그는 경안고등학교에 입학하여 수학하다가 대구에 있는 대학에 입학했을 때 선교사 장학금을 받아 공부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목회자인 아버지의 사례를 가지고는 대학에서 공부할 수 없었지만 우열성 선교사의 도움으로 대학교를 졸업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이 장로님은 우열성 선교사에 대한 감사의 마음을 잊지 못하고 있었다.

 

경안학원이 세워진 지 70주년을 맞는 뜻 깊은 2024222일 오전 11, 경안고등학교 강당인 경안관에서 학교법인 경안학원 설립 70주년 기념식을 가졌다. 1부 감사예배, 2부 기념행사, 그리고 3부 축하공연의 순으로 이어졌다. 1부 감사예배에서 필자는 경안학원의 교시인 '먼저 하나님(God First)'라는 제목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전했다. 필자는 경안노회의 중등교육을 위한 기독교 학교 설립이 된 것은 70년 전이 아니라 올 해로 100주년이 되었음을 상기시켰다. 다시 말해 경안중학원이 오늘의 경안학원의 전신(前身)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100년 전 경안노회에 의해 설립된 경안중학원이 안타깝게도 문을 닫은 지 30년이 지난 1954, 다시 경안노회가 설립되어 오늘까지 괄목상대한 발전을 이룬 경안학원의 지난 70년은 오직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였음을 고백했다. 특히 필자는 지난 2007년 국회에서 개정된 사학법이 기독교 정신과 성경적 가치로 세워진 기독교 학교의 건학이념을 구현하는 것조차 어렵게 하고 있음을 언급했다. 사학법 개정 이후 기독교학교는 건학이념에 동의하는 믿음의 교사를 임용하기 어려워졌음을 지적하면서 기독교 학교의 자주성과 선택권이 보장되도록 사학법이 다시 개정되어야함을 강조했다. 뿐만 아니라 오늘날 경안학원 뿐 아니라 모든 기독교 학교가 절체절명의 위기를 맞고 있다고 하면서 기독교 학교가 건학이념을 구현하기 위해서 인사권이 자주적으로 행사되고 학부모의 교육 선택권 역시 보장되기 위한 기도를 요청했다.

 

특별 손님으로 초대된 우열성 선교사의 장남 잭 윌슨(Jack Wallace Wilson)은 축사 순서에서 자신이 어렸을 때 자전거를 타고 의성까지 갔던 일, 불장난을 치다가 파출소에 잡혀 간 이야기 등 안동에서의 많은 추억을 소환했다. 그의 유머러스한 한국어 솜씨는 여전하여 기념예식에 참석한 사람들에게 웃음을 자아내기에 충분했다. 특히 그는 한국에 처음 온 부인 낸시(Nancy)를 소개했는데, 한국방문에 소요되는 경제적인 부담이 컸지만 낸시의 강청으로 올 수 있었다는 것을 이사장 이성수 장로님을 통해 들었다. 그는 초등학교와 중학교 시절을 안동에서 보냈으며, 당시 그와 함께 놀았던 적지 않은 동년배들이 아직도 안동에 많이 남아있었기 때문에 예식을 마친 후 점심 식사 시간에 반가운 얼굴로 그와 개인적으로 인사를 나누는 사람들이 있었다.

 

필자는 이들이 안동을 떠난 지 무려 40년이 넘었지만 이들의 안동 사랑은 계속되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설립 70주년 행사를 마치고 40여 년 전 우열성 선교사 가족이 안동에 머물 때 가깝게 지냈던 한 가정이 이들 부부를 초대해 저녁식사를 한 후 식구들이 십시일반 갹출하여 안동을 떠나 서울에서 쓸 여행경비를 전달했는데, 잭 윌슨은 자기가 가지고 있는 것을 보태 미화 5,000불을 이사장에게 주며 학생들의 장학금으로 사용해달라고 말했다는 것이다. 경안학원은 이들의 왕복경비를 부담할 수 없었다고 한다. 잭 윌슨 부부도 경비가 부담이 되었지만 용기를 내어 뜻 깊은 행사에 기꺼이 참석했는데, 생각하지도 못한 후대(厚待)을 받고 이들에게 사의(謝意)를 표한 후 자신의 아버지가 설립한 학교에서 공부하는 학생들에게 내 놓은 것이다. 비록 아들 잭 윌슨은 선교사가 아니지만 아버지 우열성 선교사로부터 선교 유전자(DNA)를 고스란히 물려받았다는 생각을 지을 수 없었다. 기념예식 후 다음 날 아침 경안학원 이사장 이성수 장로님과 함께 안동교회를 방문한 잭 윌슨 부부는 추억어린 교회를 돌아보았다. 필자는 다른 지역에서의 선약 때문에 돌집 예배당 앞에서 이들 부부와 사진을 촬영하고 헤어졌지만 지난 1908년에 설립된 후 거쳐 간 안동선교부의 선교사들을 만난 것과 같은 기쁨과 감격이 마음속에 가득 찬 것은 비단 필자만의 느낌이었을까? 잭 윌슨과 낸시 부부와의 짧은 만남은 그동안 잊고 있던 안동선교부에서 수고한 수많은 선교사들의 헌신적 선교를 다시 생각하게 하는 기회가 되었다.

 

2024320

김승학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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