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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8-17 21:40:06 조회 : 172         
떠난 사람, 방문한 사람 이름 : 김승학   

 

떠난 사람, 방문한 사람

 

 

지난 주 금요일 811일 정오, 안동의 생활을 정리하고 용인으로 이사하는 이정일(李正日) 장로님과의 이별을 섭섭하게 생각하는 성도들과 자녀들이 한 식당에서 모였습니다. 식사하기 전에 먼저 예배를 드렸습니다. 이 장로님이 가장 좋아하는 찬송가 79, ‘주 하나님 지으신 모든 세계를 이 자리에 참석한 모두가 함께 불렀습니다. 필자 바로 옆에 앉으신 이 장로님은 여전히 안정적인 음정으로 힘 있게 이 찬송가를 부르셨습니다.

 

79. 주 하나님 지으신 모든 세계

 

(1) 주 하나님 지으신 모든 세계 내 마음 속에 그리어볼 때

하늘의 별 울려 퍼지는 뇌성 주님의 권능 우주에 찼네.

(2) 숲속이나 험한 산골짝에서 지저귀는 저 새소리들과

고요하게 흐르는 시냇물은 주님의 솜씨 노래하도다.

(3) 주 하나님 독생자 아낌없이 우리를 위해 보내주셨네.

십자가에 피 흘려 죽으신 주 내 모든 죄를 대속하셨네.

(4) 내 주 예수 세상에 다시올 때 저 천국으로 날 인도하리.

나 겸손히 엎드려 경배하며 영원히 주를 찬양하리라.

 

후렴: 주님의 높고 위대하심을 내 영혼이 찬양하네.

주님의 높고 위대하심을 내 영혼이 찬양하네.

 

현재 88세이신 이 장로님은 20대 후반부터 무려 60년 이상 동안 찬양대원으로 봉사하다가 3년 전인 2020년에 안동교회 찬양대원에서 은퇴했습니다. 또한 안동장로합창단의 창단 멤버로 20여 년 동안 활동하다가 역시 3년 전에 후배들에게 자리를 물려주고 더 이상 합창단원으로 활동하기 않고 있습니다. 장로님은 여전히 찬양할 수 있지만 찬양대원 혹은 찬양단원들에게 부담이 될 수도 있기 때문에 스스로 자리에서 물러난 것입니다.

 

이정일 장로님의 가문은 안동교회의 유일한 4대 직계장로 가정입니다. 한 교회에서만 직계로 4대 장로가 계속해서 배출된 가정은 한국교회에서 단 몇 가정이 된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을 정도로 138년 역사의 한국교회에서도 매우 희귀합니다. 우선 이 장로님의 증조부는 이중희(李仲熙), 그의 고향은 김천입니다. 장남 이재삼(李在三)이 장터에서 부해리(傅海利, Henry Munro Bruen, 1874~1959) 선교사가 전해준 전도지를 받아 집으로 가지고 왔는데, 이것을 읽은 부친 이중희의 마음이 움직이게 되었습니다. 기독교에 관심을 갖게 된 이중희는 부해리 선교사가 1901년 개척한 김천 아포면의 송천교회에 온 가족이 함께 출석하면서 신앙생활을 시작했습니다. 이때 이중희의 6형제 중에서 5형제가 예수를 믿게 되었고, 후에 이들은 교회와 학교를 세웠습니다.

 

19101월 상주군 화서면으로 이사한 이중희는 사곡교회를 섬겼습니다. 특히 문경지방에서 활동하던 부해리 선교사를 돕다가 1911년 안동교회가 설립하여 운영하던 계명학교 교사로 봉사하기 위해 19121월 안동으로 이사했습니다. 안동교회와 계명학교를 열심히 섬긴 이중희는 191557일 안동교회 제2대 장로가 되었습니다. 이중희는 이정일 장로님 가문의 최초의 장로입니다. 안동 3.1 만세운동의 주모자였던 그는 1919313일 일제경찰에 체포되어 고문을 받고 석방된 이후 1919418일 별세했습니다. 이중희 장로님은 2019년에 열린 제101회 총회에서 총회 순직자 제6호로 지정되었습니다.

 

이중희 가문의 두 번째 장로는 이중희의 장남인 이재삼입니다. 그는 부친 이중희에게 복음을 전함으로써 이중희 가문에 복음의 씨를 뿌린 사람입니다. 특히 성경이 가르치는 귀천이 없고 남녀가 평등하다는 사상을 평생 삶에서 실천한 부친 이중희의 6남매 자녀들은 아버지의 이 사상을 수용하여 자신의 능력에 맞는 직업을 선택했으며, 안동교회 성도로 충성을 다했습니다. 19221126, 이재삼은 안동교회의 첫 안수집사가 되었습니다. 그 후 26년이 지난 19484, 그는 장로 임직을 받음으로써 안동교회의 18번째 장로가 되었고, 안동교회 최초로 부자(父子) 장로가 되는 은혜를 누릴 수 있었습니다. 이재삼 장로님은 교회와 노회를 위해 충성을 다하다가 1966426일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세 번째 장로는 이재삼의 장남인 이인홍(李仁洪)입니다. 안동의 3·1 만세운동 당시 19세였던 이인홍은 임동에 위치한 협동학교 학생이면서 안동교회 청년회에서 적극적으로 활동했습니다. 그는 1919318일 안동의 3.1만세운동 시 기독교와 유림을 연결한 인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안동교회의 19번째 안수집사로 19631117일에 안수를 받았으며, 1년이 지난 19641213일에 장로장립을 받음으로써 안동교회의 27번째 장로가 되었습니다. 특히 이인홍 장로님은 부친 이재삼 장로님의 생존 시 장로가 됨으로써 부자가 안동교회 장로로 섬길 수 있게 되었으며, 안동교회의 연속 직계 3대 장로가 되었습니다.

 

이중희 가문의 네 번째 장로는 이인홍의 아들인 이정일입니다. 그는 안동교회 46번째 안수집사로 1979513일에 집사로 안수를 받았으며, 198358일에 장로 장립을 받음으로써 안동교회 51번째 장로가 되었습니다. 그 결과 한 교회에서 계속하여 직계로 4대가 장로가 되는 거룩한 역사를 쓸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정일 장로님은 안동을 떠날 기회가 여러 번 있었지만 묵묵히 자신의 자리를 지키며 교회를 섬긴 결과,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누구도 근접하지 못할 한 교회 4대 직계장로가 되었습니다.

 

초대 이중희, 2대 이재삼, 그리고 3대 이인홍에 이어 4대째 시무장로로 안동교회를 섬긴 이정일 장로님. 한 가문이 한 교회에서 4대 장로가 되어 교회를 섬긴 것은 거룩한 역사가 아닐 수 없습니다. 또한 이것은 결코 저절로 만들어질 수도 없습니다.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 없이는 절대로 불가능합니다. 또한 교회를 위한 헌신과 섬김 없이는 결코 발생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장로는 교회 앞에 사랑을 받을 뿐 아니라 인정도 받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교회적으로는 자랑스럽고, 개인적으로는 부럽습니다. 현재 교인들의 상황으로 볼 때 앞으로 우리 교회에서 직계 4대 장로가 나오기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그럼에도 우리교회에 이중희 장로님 가문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할 뿐입니다.

 

바로 그 이정일 장로님이 아들이 살고 있는 용인으로 이사합니다. 장로님의 14녀는 3녀인 이수현 집사님만 제외하고는 모두 안동을 오래 전에 떠났습니다. 장로님의 부인 김선애 권사님은 몸이 편찮아 8년 여 전에 이미 안동을 떠나 용인의 아들 집에 머물고 있었는데, 혼자 계시던 이 장로님도 김 권사님 곁으로 가기 위해 안동을 떠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 장로님의 가문은 안동교회의 114년 역사 가운데 무려 111년의 긴 세월 동안 열심히 섬겨왔습니다. ()를 이어 헌신하는 가문이 사라지는 안타까움이 있습니다. 이날 점심 식사 자리에서 이 장로님은 담담하게 소견을 밝혔습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이기에 감사하다는 것입니다. 전 이정일 장로님의 가문처럼 대를 이어 계속해서 헌신을 이어가는 믿음의 가족들이 우리 교회 안에 넘쳐나기를 기도했습니다. 이정일 장로님과 김선애 권사님 부부가 천국을 사모하며 여생을 보내시다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을 수 있기를 기도했습니다. 또한 이 장로님의 자녀들이 하나님의 교회를 잘 섬길 뿐 아니라 대를 이어 하나님의 기쁨이 되기를 기도했습니다.

 

이정일 장로님과 석별의 정을 나눈 후 이틀이 지나고 주일인 813, 교회를 방문한 부부가 있었습니다. 이들 부부는 우리 교회 초대 김병우 장로님의 막내딸의 손녀 부부였습니다. 공교롭게도 이 날은 우리교회의 114주년 창립주일이었습니다. 이들은 이 날이 교회창립주일인지도 모르고 갑작스럽게 방문하고 싶은 생각이 들어 집이 있는 세종시를 출발해 교회를 찾았다고 했습니다. 이전부터 꼭 외증조부가 봉사한 안동교회에 오고 싶었는데, 차일피일 미루다가 오늘 마음먹고 안동교회를 찾았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날이 우리교회 114주년이 되는 창립주일이었습니다. 참으로 놀라운 일이었습니다. 역사전시실에서 조용히 내용들을 읽고 있는 이들 부부를 마침 역사위원장 이완섭 장로님이 발견해서 대화를 나누다가 이들이 누구인지를 알게 되었다고 합니다. 필자는 4부 예배를 마치고 이 부부와 잠깐 만남의 시간을 가졌습니다. 그리고 간단히 외증조부 김병우 장로님의 믿음과 삶을 회고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김병우(金炳宇)1879년 안동군 풍천면 어담(漁潭)에서 출생했습니다. 당시 어담 마을에는 예수 믿는 사람이 몇 명이 있었는데 그 중 하나가 김병우였습니다. 김병우는 당시 안동 김씨 가문에서는 혼자 예수를 믿은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문중 사람들은 예수 믿는 김병우를 몹시 핍박했는데, 후손의 전언에 따르면 집안사람들이 두꺼운 밧줄로 집을 꽁꽁 묵은 후 잡아 당겨 집이 무너지는 등 김병우는 더 이상 고향에서 살 수 없어 1902년 친척이 있는 풍산(豊山)면 설못(소산 2)으로 도망치듯 나올 수밖에 없었다고 합니다. 당시 풍산면 소산(所山)동은 안동 김씨가 집성촌을 이루며 살고 있던 폐쇄적인 동네였습니다.

 

그런데 소산 바로 옆 풍산에는 1902년 안동지역에서 최초로 설립된 풍산교회가 있었습니다. 김병우는 고향 어담과는 달리 이곳 풍산교회에서 비교적 자유롭게 신앙생활을 했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하지만 소산에 살고 있던 친척들도 대부분 예수 믿지 않는 사람이었기 때문에 소산에서 7년 동안의 삶 역시 친척들의 냉대로 인한 고난의 연속이었을 것입니다. 김병우는 쪽 복음, 전도지 등을 가져와 매서인으로 활동하다가 1909년 아들 김재명, 김재성 등 가족과 함께 안동 읍으로 이사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안동으로 이사한 김병우는 이미 선교사들에게 인정받는 매서인이었습니다. 이때 대구선교부의 안의와(安義窩, 아담스, James Edward Adams) 선교사는 현재 안동교회 건너편에 5칸 초가집을 구입하여 기독서원으로 사용하면서 매서인 김병우로 하여금 운영토록 했습니다. 그런데 안의와 선교사는 안동 읍()에 그리스도인이 생기고 영주 지곡까지 내왕(來往)하며 예배를 드린다는 소식을 듣고 이 기독서원을 안동교회의 첫 예배처소로 사용할 수 있게 했습니다. 그 결과 19098월 둘째 주일인 8, 안동 읍 최초의 교회인 안동교회가 출범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안동교회는 선교사들이 세운 교회가 아닐 뿐 아니라 시작할 때부터 교회의 중심인물들이 현지인이었습니다.

 

첫 예배를 드린 후 안동교회는 계속 부흥하여 4년 만에 1913720, 처음으로 장로 임직식을 거행했습니다. 김병우의 장로 장립은 안동교회 최초일 뿐 아니라 경북 북부지방 최초였습니다. 김병우 장로 임직 결과 안동교회는 안동지역에서 최초로 당회를 조직할 수 있었습니다. 당시 장로의 조건은 매우 엄격했는데, 김병우는 치리가 엄격하게 살아있는 교회의 당회원으로, 동시에 엄격한 자기관리가 필요한 장로로서 책임감을 다한 장로로 알려져 있습니다. 특히 김병우는안동의 3.1 만세운동의 모의 단계에서부터 시위 현장에 이르기까지 적극적인 참여자였습니다. 그 결과 그는 2년형의 장기 형량을 언도받았습니다. 또한 그의 차남인 김재성도 만세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한 결과 6개월 형을 언도받음으로써 부자(父子)가 모두 만세운동으로 투옥되었습니다.

 

김병우 장로의 헌신은 쉼 없이 계속되었습니다. 그는 현재 안동교회가 사용하고 있는 석조 2층 예배당 건축 시 건축위원으로 활동한 바 있습니다. 당시 건축헌금 내역에 따르면 김병우 장로 가정이 물질적으로 큰 기여를 한 것으로 나타납니다. 그러나 활발하게 봉사할 나이인 50대 후반 이었지만 건강이 몹시 좋지 않아 치료 차 장남 김재명이 경영하는 병원이 있는 대구로 갔습니다. 김재명은 세브란스의전을 졸업한 후 대구로 내려와 동산의료원에서 근무하다가 1930년 개인병원을 건축하고 남산병원이란 이름으로 개업했습니다. 남산병원은 당시 대구에서 유명한 병원으로 많은 환자들에게 사랑을 받았다고 합니다. 대구의 아들 집으로 간 김 장로님은 건강한 몸으로 신축한 돌집 2층 안동예배당에서 예배드리기를 소원했지만 준공된 예배당을 보지 못하고 19362, 대구에서 57세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그는 안동지역에서 누구보다 먼저 예수를 믿은 믿음의 선각자였으며, 어려운 여건에서도 몸이 부서질 정도로 교회를 사랑한 충성스러운 교인이었고, 3·1만세운동 당시 나라를 위해 분연히 일어났다가 투옥당한 애국자로서 믿음의 후배들에게 귀감이 되는 인물로 기억되고 있습니다.

 

직장을 이유로 교회를 떠나는 성도들이 있습니다. 건강상의 이유로 양로원이나 요양원, 혹은 치료를 위해 교회를 떠나는 지체들이 있습니다. 연로하여 자녀들이 살고 있는 곳으로 떠나는 경우도 있습니다. 모두 어쩔 수 없이 교회를 떠나는 것입니다. 아쉽지만 이런저런 이유로 교회를 떠난 분들을 다시 만나지 못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들이 주 안에서 건강하고 평안하기를 기도할 뿐입니다. 반면에 전혀 예상하지 못한 분들이 교회를 방문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어렸을 때 우리 교회에 나오다가 이사를 갔거나 청소년 시기에 출석하다가 대학진학으로 교회를 떠났거나 결혼하여 아예 안동을 떠난 믿음의 권속들 가운데 수십 년이 지나 교회를 찾는 경우도 있습니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부모님이나 그 윗대가 우리 교회에 출석했기 때문에 믿음의 뿌리를 찾아오는 경우입니다. 이들 중에는 자신을 노출시키지 않고 교회 마당을 밟고 떠나는 경우가 대부분 이지만, 때로는 현재 교회에 출석하는 지인들에게 연락하여 교회를 방문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비록 교회에 잠시 머물다 떠나긴 하지만 이들의 대부분은 마음에 품고 있던 숙제를 해결하고 교회를 떠납니다. 이들은 일종의 버킷 리스트(Bucket Lists)를 실행에 옮긴 것입니다. 교회의 역사는 떠나는 사람, 방문하는 사람들의 역사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다만 교회를 떠나는 사람이 어디로 가든지 믿음의 삶을 계속 이어가기를, 또한 어떤 형태의 방문이든 믿음의 선배들이 남긴 거룩한 흔적을 발견하는 기회가 되기를 소원할 뿐입니다. 

 

2023817

김승학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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