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의 눈물을 흘리고 싶습니다
요 11:31~37 (2006년 2월 12일)
1. 통분의 눈물 (33절)
묵상을 위한 질문) 예수님께서는 마리아의 절망과 조문객들의 울음을 보시고 심령에 통분히 여기셨다. ‘통분히 여기다’는 흥분하여 콧김을 내뿜는 모습에서 유래된 말로서 심한 불쾌감을 나타낼 때 사용하는 단어이다. 나사로가 죽지 않을 것이라는 당신의 약속을 불신하는 사람들의 행동은 예수님을 불쾌하게 만들었고 마침내 예수님께서는 눈물까지 흘리셨다. 예수님의 두 눈에서 눈물을 흘리게 만드는 나의 무지와 불신을 회개하는 기도를 드리자.
2. 사랑의 눈물 (36절)
묵상을 위한 질문) 죽은 나사로를 찾아오신 예수님께서는 눈물을 흘리셨다. 예수님께서는 나사로의 죽음 앞에서 가족들의 슬픔에 동참하셨던 것이다. 주님께서는 나사로의 죽음을 통해서 인간들에게 죽음의 고통이 얼마나 큰 것인가를 세삼 확인하면서 깊은 동정과 연민에서 나온 사랑의 눈물을 흘리셨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작은 아픔과 신음에도 사랑의 눈물을 흘리시는 분이시다. 나를 향하여 흘리시는 주님의 사랑의 눈물을 경험한 적이 있는가?
3. 소망의 눈물 (40, 42절)
묵상을 위한 질문) 마리아와 유대인들이 흘린 눈물은 원문으로 방성대곡하며 눈물을 흘렸다는 의미를 갖는다. 이들이 소리를 내어 애곡한 이유는 나사로의 죽음에 대해 어떠한 희망도 가질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흘리신 눈물은 원문의 의미로 소리없이 조용히 흘린 눈물을 뜻한다. 예수님께서는 나사로가 다시 살아날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방성대곡할 이유가 없으셨던 것이다. 더 이상 소망이 없다고 생각하며 방성대곡하는 나의 모습은 없는가? 눈물을 흘리면서도 “소망을 갖게 하옵소서”라고 기도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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