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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고 싶은 성도들에게 보내는 스물 한번째 글입니다.
사나 죽으나 똑 같습니다
미국을 여행 중인 한 선교사님을 만났습니다. 30대 중반을 넘은 것 같지 않은 여성이었습니다. 선교사님의 사역은 위기(危機)에 처한 선교사님을 돕는 것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위기는 선교사님들이 갑작스럽게 피랍(被拉), 실종(失踪) 또는 구금(拘禁) 등의 문제를 의미합니다. 선교사님의 역할은 이런 위기의 상황이 발생했을 때 현지로 나가 선교사님들의 안전한 구출을 위해 애를 쓰는 것입니다. 선교사님이 사역하고 있는 기관은 NGO(비정부민간단체)로 위험에 빠져 있는 선교사님들을 돕기 위해 현지에 급파되어 우리나라 현지 외교관계자들과 함께 구출을 위해 활동한다고 합니다. 우리나라에 이런 사역을 하는 선교기관이 있다는 사실을 선교사님을 통해 처음 알게 되었습니다. 꼭 필요한 기관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선교사님들이 현지에서 어려움을 당할 때 우리나라 정부에서 파견된 외교부 직원들을 도와 함께 일하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라는 평소 생각이 조금은 해소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선교사님 혼자 이 사역을 감당하는 것은 아니고 선교기관을 돕는 많은 전문가 그룹이 배후에서 돕는다는 이야기도 했습니다. 반드시 세계 곳곳에 파송된 선교사님들에게 위기가 있어 파견된 것은 아니지만 지금까지 무려 30여개국을 방문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위기에 처한 선교사님을 도우러 출국했다가 구금되어 곤욕을 치룬 경험도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가 미국에 온 이유는 자신이 하고 있는 위기관리 사역에 필요한 자료를 미국인으로 부터 받기 위함이었습니다. 샌디에고(San Diego)에 거주하고 있는 한 미국인은 지난 30년 동안 선교사님과 동일한 일을 해오면서 많은 자료를 구입해 보관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분이 자신이 소장하고 있는 수많은 자료를 아낌없이 선교사님에 주겠다고 약속했다는 것입니다. 선교사님은 하나님께서 미리 예비하시고 준비하신 사람을 만나게 하셨다고 말했습니다. 그 분은 자신이 보관하고 있는 자료들을 정리하여 선교사님께 전달하면서 만약 부족한 게 있으면 더 요청하라고 까지 했다는 것입니다. 정말 고맙고 감사한 분이라고 선교사님은 말했습니다. 수십 년 동안 연구하고 힘들여 모은 자료들을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다른 나라 사람에게 아낌없이 줄 수 있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보통 사람들은 자신이 어렵게 구한 자료들을 아깝게 생각해 누군가에게 주려고 하지 않습니다. 나이가 들어 더 이상 사용하지 못해 먼지가 쌓이는 한이 있어도 누군가에게 주려는 생각을 갖지 않습니다. 그래서 아무리 소중한 자료라 하더라도 나중에는 모두 쓰레기가 되고 맙니다. 많은 사람들은 누군가를 위해 꼭 필요하고 중요한 자료가 될 것을 쓰레기로 만듭니다. 하지만 그는 우기에 처한 우리나라 선교사들에게 뿐 아니라 다른 나라에 선교사들에게도 큰 도움을 줄 수 있는 자료를 아낌없이 내놓았습니다.
이 선교사님의 이름은 성경(聖經)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인 바이블(Bible), 바로 그 성경입니다. 할머니는 증손녀가 하나님 말씀 안에서 성장하고 하나님 말씀 중심으로 살기를 바라셨던 것 같습니다. 자신의 이름을 지어준 분은 증조(曾祖) 할머니였습니다. 증조 할머니는 집안에서 유일하게 교회에 출석하셨습니다. 그래서 가족과 친척들에게 많은 핍박과 설움을 당했다고 합니다. 당시에 할아버지도, 할머니도, 아버지도 어느 누구도 예수를 믿지 않았기 때문에 어찌 보면 할머니가 받은 없신여김은 당연한 것이었을 지도 모릅니다. 증조 할머니는 자신의 이름을 지어주신 후 며칠 만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하지만 증손녀에게 할머니는 신앙을 유산으로 남겨 주셨습니다. 결국 증조 할머니는 이 집안의 아브라함이 되었습니다. 믿음의 조상이 되었습니다. 지금은 온 식구가 예수를 믿고 있습니다. 할머니의 믿음이 결국 온 가족의 영혼에 거룩한 영향을 준 것입니다. 할머니가 뿌린 복음의 씨는 온 식구에게 뿌리를 내리고 열매를 맺게 되었습니다. 그 중에서 증손녀는 세계 열방에 나가 복음을 전하는 선교사님들을 돕는 귀한 사역을 감당하게 되었습니다.
선교사님의 간증은 계속되었습니다. 자신이 선교지로 나가는 아침은 온 가족이 함께 예배드리는 시간이랍니다. 그런데 그 예배에는 늘 울음이 있다는 것입니다. 예배시간이 울음바다로 변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출발하는 날 예배를 드리지 않고 전날 예배를 드리기로 했습니다. 친척들도 자신이 선교지로 출발하기 전날 예배드리는 것을 알고 집으로 찾아온답니다. 위험이 도사리고 있는 선교지로 생명을 걸고 떠나기 때문에 혹시 하는 마음으로 찾아오는 친척들도 있답니다. 선교사님은 늘 울면서 집을 떠나고, 가족들 역시 울음으로 선교사님을 배웅하는 일이 반복되는 것입니다. 부모나 가족 입장에서는 사지(死地)로 떠나는 딸, 사랑하는 가족 구성원의 안전을 생각하며 울지 않을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선교사님은 말했답니다. “죽으로 가는 것도 아닌데, 앞으로는 예배드리며 울지 말자.” 그러면서 30대 중반 밖에 되지 않은 그가 한 말이 무척이나 인상적(印象的)입니다. “사는 것이나 죽는 것이나 똑 같은 것 아닌가요?” 가만 생각해보면 죽음과 삶은 동일한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삶과 죽음을 분리합니다. 그리고 죽음을 끝이라고 생각하며 두려워합니다.
선교사님은 10살 때 선교사로 헌신할 것을 하나님께 약속했다고 합니다. 선교사님은 지방 출신입니다. 그 때 그는 시골에서 5명으로 개척한 교회에 출석하고 있었습니다. 그는 목사님을 세상에서 최고로 생각하며 존경했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최고 존경의 대상인 담임 목사님께서 세계 곳곳에 나가 주님의 복음을 전하고 있는 선교사님들이 가장 부럽다고 하면서, 자신은 선교사님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니라고 말씀하시는 것을 듣고는 앞으로 선교사가 되어야겠다는 결심을 했다고 합니다. 선교사가 어떤 사람이고, 무엇을 하는 지 아는 것이 전혀 없었지만 무조건 선교사가 되는 꿈을 꾸고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마음을 정한 이후 단 한 번도 이 결심을 바꾼 적이 없었답니다. 그는 하나님을 위해 헌신하고 봉사하기 위해서 일찍 서원하는 것이 좋다고 말했습니다. 왜냐하면 미리 목표를 설정하고 초점을 맞춰 충분히 준비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어렸을 때부터 준비한 그를 자신의 모(母) 교회는 선교사로 파송했습니다. 성도의 수가 얼마 되지 않았지만 교회는 선교사로 파송했습니다. 지금 비로소 100명 정도 모이는 교회이지만 수십 명이 출석하기 시작했을 때 파송하며 기도와 후원을 책임진 것입니다. 담임 목사님의 사례(謝禮)가 올라가면 자신의 후원금도 올라간다고 그는 웃으며 말했습니다. 물론 처음에는 정말 적은 후원이 있었답니다. 교회의 재정이 약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교회가 조금씩 부흥하면서 자신들이 파송한 선교사를 잊지 않고 기도하며 힘에 겹도록 후원한 것을 너무도 고마워했습니다. 그는 파송교회의 중요성을 언급했습니다. 후원교회의 책임과 역할을 말했습니다. 파송한 선교사와 사역을 위해 쉬지 않고 기도하고 정성을 다해 후원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지를 말했습니다. 그가 이렇게 말하는 데는 충분한 이유가 있습니다. 후원교회 성도들의 기도의 능력을 사역의 현장에서 그가 확실히 체험했기 때문입니다.
언젠가 큰 선교 회의가 있어 예멘으로 갔답니다. 예멘으로 출발하기 전 파키스탄에서 이미 얼굴에 발생한 알러지로 고생하고 있었습니다. 피부 알레르기 때문에 얼굴을 칭칭 감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파송교회에 기도를 부탁했습니다. 다음 날 뜨거운 낮에 활동하기에 힘들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런데 아침에 깼는데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선교사님은 다른 선교사님께 이유를 물었습니다. 이상하게 아침이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태양을 볼 수 없다고 말을 하더라는 것입니다. 그 때 선교사님은 자신 있게 미국 친구들에게 “내가 피부 알레르기가 있어 한국에 있는 교회에 기도를 부탁했었는데 그래서 이런 일이 발생했다”고 자랑스럽게 말했답니다. 그리고 얼마 후 회의장으로 갔는데 시작시간이 지났음에도 참석자들이 삼삼오오 모여 웅성웅성 거리고 있었답니다. 수백 명이나 되는 사람들은 한국교회에서 기도해 오늘 해가 뜨지 않았다고 하면서 놀라움을 금치 못하더라는 것입니다. 이 일은 그 날 종일 화제가 되었답니다. 그 때 그는 선교사로서의 자존감(自尊感)이 확 생겼다고 말했습니다. 배후에서 자신을 위해 기도하는 막강한 중보기도 후원자들이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힘이 되는 지를 그 때 절실히 깨닫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는 후원교회의 기도가 얼마나 필요한 지를 계속 이어갔습니다. 선교지에서 너무 힘들어 후원교회에 전화해 담임 목사님께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답니다. “목사님, 저 들어가도 되요?” 그 때 목사님이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들어오라고 하셨답니다. 선교사님은 목사님이 그런 반응을 보이기보다는 꾸지람을 들을 거라고 생각했답니다. 그러나 막상 목사님의 말을 듣는 순간 내가 돌아갈 곳이 있다는 생각에 안심(安心)이 되었다고 말했습니다. 물론 그 때 선교사님은 한국으로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목사님의 말이 얼마나 큰 힘이 되고 격려가 되었는지 몰랐답니다. 그러면서 파송 선교사들에게 후원교회는 힘들고 지쳤을 때, 아니 어느 때나 돌아올 곳이 있다는 사실을 선교사님들이 기억하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습니다. 전 선교사님의 말을 들으며 그 동안 미처 생각하지 못한 것을 깨닫게 해준 선교사님께 고마운 마음이 들었습니다. 또한 새로운 아이디어가 떠올랐습니다. 그것은 교회가 후원하는 선교사님들 끼리 네트워크를 구성하는 것입니다. 선교사님들끼리 서로 연결시키는 것이었습니다. 서로 선교 편지를 교환하고 기도제목을 나누게 하는 것입니다. 서로를 위해 기도하는 것이 필요함을 느꼈습니다.
특히 선교사님은 세계 열방에 있는 선교사님들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를 한 결과를 제게 말했습니다. “가장 한국으로 돌아오고 싶을 때가 어느 땐가?” 동료 선교사님이 피랍되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가 아니었습니다. 납치당하거나 실종되었다는 소식을 들을 때가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남편으로부터 대우를 받지 못하고, 아내로부터 인정을 받지 못할 때라는 것입니다. 가정에서도 인정받지 못할 때 가장 고국으로 돌아오고 싶다고 말했다는 것입니다. 특히 부부싸움 할 때 가장 귀국하고 싶고, 두 번째는 선교사 사이에 충돌과 갈등이 고조되었을 때라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시리아에서 사역하는 한 선교사님이 자신이 보기에는 가장 행복한 선교사로 보였다고 말했습니다. 시리아는 이슬람 국가로 안전한 곳이 아닙니다. 아주 위험한 곳입니다. 그러나 그곳에서 사역하는 선교사님은 바로 그곳이 자기가 있어야할 곳임을 확신하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보내신 사명, 온 이유와 목적, 자신이 왜 이곳에서 이 일을 하고 있는 지를 정확하게 알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장소가 문제가 아닙니다. 바로 이럴 때 가장 행복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선교지에서만 그럴까요? 아닙니다. 우리가 밟고 있는 모든 곳이 선교지입니다. 그리고 선교사님의 말처럼 사는 것이나 죽는 것이나 똑 같습니다. 하나님께서 부르시는 그 날 까지 자신의 사명이 무엇인지 직시(直視)하고 기쁘고 감사한 마음으로 주님이 걸어가신 길을 따라 갈 때 이 땅에서도 행복을 누릴 수 있을 것입니다.
2011년 8월 9일
김승학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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