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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1-21 20:51:18 조회 : 1297         
노를 저을 준비를 하자 이름 : 김승학   

 

통일선교대학원 동문회 신년하례식 설교

 

 

노 지을 준비를 하자

 

 

 

1. 가까워진 안동과 서울

 

저는 지금부터 33년 전인 1992년 1월 말, 신학대학원 졸업을 보름 앞두고 안동교회 전임전도사로 부임했습니다. 당시 청량리에서 무궁화호나 새마을호를 타면 4시간에지 5시간 정도 걸려 안동에 도착했습니다. 버스로는 동서울 터미널에서 안동까지 5시간 정도 소요됐습니다. 중부고속도로를 타고 괴산 IC에서 내려 이화령과 문경새재를 넘어 점촌, 예천을 거쳐 안동으로 들어오기까지 거의 5시간 가까이 걸렸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안동역에서 청량리 까지 2시간도 채 걸리지 않습니다. 2024년 12월 하순부터 중앙선 안동-북영천 간 복선전철화 사업이 끝남으로써 안동에서 서울을 잇는 중앙선 철도가 구간 평균 200Km 이상으로 달리는 준 고속선이 되어 더욱 빨라졌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아침 8시 조금 너머 기차를 타면 10시에 서울에 도착하고, 일을 마치고 2시 40분경에 다시 안동행 기차를 타면 4시 반에 안동에 도착합니다. 안동에서 서울까지 얼마나 가까워졌는지 모릅니다.

 

서울에서 개성까지 직선거리는 56.1Km, 철도거리는 73Km로 서울역에서 평택역 까지의 75Km보다 가깝습니다. 서울에서 평양 까지 직선거리는 195Km이고, 철도거리는 250Km입니다. 또한 서울에서 신의주까지 직선거리를 360Km입니다. 서울에서 부산까지 직선거리가 325Km인데, 사실 서울에서 평양이나 신의주는 먼 거리가 아닙니다. 그럼에도 코앞에 있는 개성도, 또한 평양과 신의주도 너무 멀리 느껴집니다. 오히려 일본의 동경보다도, 심지어는 미국 LA이나 영국의 런던보다도 멀리 있는 듯합니다. 그리 멀지 않는 남과 북이 복음으로, 또한 평화적으로 하나가 되어 아침에 출발하여 북한 땅의 여러 도시를 방문하고 저녁에 돌아올 수 있는 그 날이 속히 오기를 기도할 뿐입니다.

 

 

2. 피난민 가정


전 어제도 KTX를 타고 안동에서 서울에 올라왔습니다. 선친(先親) 추모예배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제 92세가 되신 어머니와 5남매가 모여 추도예배를 드렸습니다. 오늘 총회 통일선교대학원 동문회 신년예배와 하례식에 참석하기 위해 탄 열차와 동일한 열차를 어제도 탔습니다. 지금으로부터 33년 전 선친은 63세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으셨습니다. 올 2025년 1월 6일이 월요일인데, 1992년 1월 6일도 월요일이었습니다. 아침 9시 경에 하나님 나라로 가셨습니다. 선친이 살아계신다면 96세가 되지만 너무 일찍 세상을 떠나셨습니다. 선친은 평안남도 평양 출신으로 1.4 후퇴 때 피난 내려 오셨습니다. 아버지는 이북에서 예수를 믿지 않았습니다. 평북 선천 출신인 모친(母親)은 모태 신앙인으로 역시 피난 내려 오셨습니다. 두 분은 서울에서 만나 결혼했습니다. 결혼 후 부친(父親)은 예수를 믿기 시작했습니다. 40대 초반에 장로로 임직하여 충성스럽게 교회를 섬기셨습니다.

 

선친은 고향, 평양을 그리워하셨습니다. 청소년 시절 은평구 녹번동에 살고 있던 우리 자녀들은 아버지와 함께 가끔 임진각에 갔습니다. 이북 고향에 대해 자주 말씀하신 것은 아니지만 그리워하신 것은 분명합니다. 임진각에서 북녘을 바라보며 몰래 눈물을 닦으시던 아버지의 모습을 기억하기 때문입니다. 친할아버지와 할머니는 이남으로 내려오시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두 분을 뵌 적은 없습니다. 아버지로부터 조부(祖父), 조부(祖母)에 관해 간헐적으로 들었을 뿐입니다. 어머니 쪽 일가는 많은 분들이 피난 내려 왔습니다. 외조부(外祖父), 외조모(外祖母), 외삼촌 등이 내려오셨으니까요. 1950년 초 막내 딸의 결혼 전 외할아버지는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결혼 후부터 아버님은 혼자되신 장모님, 즉 외할머니를 모시고 한 집에서 사셨습니다. 전 어렸을 때 친할머니와 외할머니를 구분하지 못했습니다. 집에 계신 할머니는 그냥 할머니였습니다. 이 분 말고 다른 할머니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1895년에 출생하신 할머니는 1989년 출생하신 날, 생신에 천수(天壽)를 다하고 95세에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으셨습니다.

 

 

3. 옛적 같게 하옵소서

 

남유다는 바벨론에 멸망을 당했습니다. 70년 포로생활을 겪는 등 심한 고난을 당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예레미야 선지자에게 이 사실을 알려 주셨습니다. 예레미야애가 5장 20절에서 예레미야 선지자는 하나님께 호소했습니다. “20.주께서 어찌하여 우리를 영원히 잊으시오며 우리를 이같이 오래 버리시나이까.” 선지자는 하나님께서 자기 민족을 너무 오래 동안 버리실 것을 생각하며 하나님이 영원히 잊으시는 것은 아닌지를 염려했습니다. 그러면서 자신들이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하나님의 진노가 너무 크다고 말하며, 하나님이 자신들을 분명히 버리셨다고 생각했습니다. 예레미야애가 5장 22절입니다. “22.주께서 우리를 아주 버리셨사오며 우리에게 진노하심이 참으로 크시니이다.” 얼마나 고통스러우면 하나님께서 선택하신 이스라엘 백성을 완전히 버리셨다고 선지자가 생각했겠습니까? 그렇다고 예레미야 선지자가 절망한 것은 아닙니다. 현재 환경이 너무 고통스럽지만 하나님께서 자신들을 고국으로 돌아가게 하실 수 있다고 확신했습니다.

 

예레미야애가 5장 21절입니다. “21.여호와여 우리를 주께로 돌이키소서 그리하시면 우리가 주께로 돌아가겠사오니 우리의 날들을 다시 새롭게 하사 옛적 같게 하옵소서.” “여호와여 우리를 주께로 돌이키소서”는 남유다가 회복되어 예루살렘으로 귀환하는 것이 남유다에게 주도권이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있다는 것을 뜻합니다. 하나님이 당신의 마음을 바꾸실 때 남유다 백성이 바벨론에서 포로 생활을 청산하고 예루살렘으로 돌아갈 기회가 주어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 또한 하나님께서 새롭게 하실 때 비로소 예루살렘으로 돌아가 하나님을 예배할 수 있을 뿐 아니라 400여 년 동안 분열된 남유다와 북이스라엘이 하나가 될 수 있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이 땅 대한민국과 지구촌에 남과 북이 하나가 되어 흩어진 가족, 일가친지들이 자유롭게 만나는 날을 고대하는 사람들이 아직도 많습니다. 그들은 북한의 고향을 떠나 이 땅에 살고 있는 피난민(避難民)들, 실향민(失鄕民)들 또한 북에 고향을 둔 북향민(北鄕民)과 북한이탈주민들입니다.

 

 

4. 탈북민 사역과 교회

 

오늘날 북한에서 탈출하여 한국에 들어온 이들을 흔히 탈북민으로 부릅니다. 그러나 이들의 공식적인 명칭은 북한이탈주민입니다. 정부는 1997년 ‘북한이탈주민의 보호 및 정착지원에 관한 법률’을 제정하면서부터 탈북한 이들을 ‘북한이탈주민’으로 명명하기 시작했습니다. 사실 탈북민은 6.25 휴전 직후부터 있었습니다. 물론 그 수는 매우 적었습니다. 그런데 1996년부터 1999년까지 계속된 북한의 고난의 행군(苦難의 行軍) 시기에 많은 탈북민들이 한국에 입국하기 시작했습니다. 통일부에 따르면 1953년 7월 정전협정 이후 2024년 9월까지 71년 동안 한국에 들어온 북한이탈주민의 수는 총 34.259명이라고 합니다. 전문가에 따르면 이들 가운에 사망 혹은 해외로 나가거나 재입북한 탈북민들을 제외하면 한국 내 거주하는 수는 약 3만 명 정도가 될 것으로 추산합니다.

 

탈북민교회와 사역을 전문적으로 연구하는 김의혁 교수(숭실대 기독교 통일 지도자학과)에 따르면 한국교회의 탈북민 사역을 크게 둘로 나눕니다. 우선 선교단체와 선교사들을 중심으로 한 해외 탈북민 사역으로 탈북민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사역과 탈북민 구출과 지원을 포함하는 인도주의적 사역으로 2018년 중국 정부가 선교사들을 대규모로 추방한 이후 해외 탈북민 사역은 현재 거의 중단된 상태라고 합니다. 국내 탈북민 사역은 탈북민 정착 지원 사역, 한국교회 내 탈북민 부서 사역, 탈북민 대안학교 및 방과 후 공부방 사역, 탈북민교회 개척 및 지원·협력 사역 등이 있습니다. 이 모든 사역은 통일을 위한 한국교회의 작은 움직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특히 김 교수는 2000년 대 초반 중국과 제3국에서 성경공부와 낮은 단계의 신학을 공부한 1세대 탈북민 목회자의 시대가 저물고 있다고 하면서 한국에 들어와 신앙을 갖고 신학공부를 시작한 2.0세대 탈북민들을 새로운 비전과 관점을 가진 목회자로 훈련시켜야 할 것을 강조합니다. 2.0세대 탈북민 목회자 교육과 훈련은 통일 이후를 준비하는 데 소홀히 여길 수 없는 과제라는 것입니다.

 

 

5. 탈북민목회자 목회학교

 

한국교회가 지난 20여 년간 탈북민 선교에 힘을 쏟았지만 이들의 복음화율은 그리 높지 않았습니다. 교회에 출석하는 탈북민의 비율은 전체 탈북민 중에 10% 미만으로 추산합니다. 선교적 열심은 있었지만 탈북민 선교의 전문성이 부족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현재 한국교회에 전문 탈북민 목회자와 탈북민 사역을 위해 훈련받은 사역자가 부족한 것은 주지의 사실입니다. 따라서 탈북민에 대한 깊은 이해를 바탕으로 한 전문적인 사역자와 사역이 필요한 시점에 있습니다. 한국교회는 더 늦지 않게 탈북민 목회자를 양육하여 탈북민들을 위한 사역을 잘 감당할 수 있도록 구체적인 방안을 마련해야 합니다. 그래서 본 통일선교대학원에서는 작년 4월 제1기 탈북민목회자 목회학교를 개설한 바 있습니다. 4주 동안 계속된 이 과정은 ⌜목회란 무엇인가?⌟, ⌜목회상담⌟, ⌜설교준비와 실제⌟, ⌜탈북민 목회실제⌟, ⌜탈북민교회 목회사례⌟, ⌜전도실제⌟, ⌜교회행정⌟ 등이었고, ⌜현장수업⌟으로 동남아지역에 있는 탈북루트를 방문하는 등 탈북민목회자들에게 큰 호응을 받았습니다. 통선원은 올 봄에 제2기 탈북민목회자 목회학교를 다시 준비하고 있습니다.

 

사실 탈북민은 통일 이후의 샘플과 같습니다. 비록 탈북민이 북한에 살고 있는 동포에 비해 소수이긴 하지만 오늘의 탈북민 목회가 통일이 되었을 때 북한 주민들 사역에 큰 도움이 될 것은 말할 나위도 없습니다. 탈북민의 세계관, 가치관, 생활양태, 신앙성장의 과정 및 단계 등은 통일 이후 북한 주민들의 그것을 반영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오늘의 탈북민들 목회는 통일 이후 그 날의 연습과도 같다고 할 수 있습니다. 비록 탈북민 목회가 어렵고 힘들긴 하지만 통일 이후의 그 날을 준비하는 필연적인 과정이라고 생각하고 한 단계, 한 과정을 잘 밟아 탈북민 목회의 노하우를 축적해야 놓아야 합니다. 그래야 통일이 되었을 때 큰 혼란 없이 북한 땅에 교회가 세워지고, 북한 주민들이 복음화될 수 있을 것입니다. 따라서 탈북민 목회자 양성은 통일 이후 교회와 목회 사역을 준비하는 필수적인 요소가 됨을 기억해야 합니다.

 

 

6. 노 지을 준비를 하자

 

하나님은 절대주권자이십니다. 절대주권은 최고의 권위를 의미합니다. 하나님이 절대주권자라는 것은 하나님께서 최고의 권위를 갖고 세상일에 간섭하신다는 뜻입니다. 온 천하만물의 주인이신 하나님께서 모든 일에 개입하신다는 뜻입니다. 결국 하나님이 마음먹은 대로 된다는 뜻입니다. 분명한 것은 하나님이 하시면 반드시 되고, 하나님이 아니라고 생각하시는 것은 어떤 것도 될 수가 없습니다. 우리가 최선을 다해 99%를 해도 하나님이 결제하시지 않으시면 안 됩니다. 그러나 우리가 49%를 해도 하나님이 하시겠다고 마음을 먹으면 안 될 일이 없습니다. 통일은 하나님의 계획이 아니고서는 불가능합니다. 그럼에도 우리가 할 일이 있습니다. 그것은 평화통일을 준비하는 것입니다. 물이 들어오지 않는다고 노를 지을 준비를 하지 않고 손을 놓고 있어서는 안 됩니다. 들어오는 물이 보이지 않아도 노를 지을 준비는 해야 합니다. 이것이 통일을 준비하는 자들의 마음가짐이어야 합니다. 한국교회는 하나님께서 결국에는 복음통일을 이루어 주실 것을 믿고 기도하며 준비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날들을 다시 새롭게 하사 옛적 같게 하옵소서.”

 

작년 목회데이터연구소의 설문조사에 따르면 청소년 가운데 10명 중 4명은 '통일 필요치 않다'고 답했다고 합니다. 통일에 대한 인식이 너무도 저조한 것을 보면서 무척 낙심이 되는 것도 사실입니다. 또한 지난 몇 년간 남북관계는 정도 이상으로 경색되었습니다. 북한으로 향하는 모든 길이 막혔습니다. 그러나 이 시기에도 하나님은 역사하고 계시고 통일을 준비하게 하셨습니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통일을 위해 기도한 수많은 성도들이 있습니다. 또한 대한민국 밖에도 북한선교와 통일을 바라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남과 북의 상황이 꽁꽁 얼어붙어 있지만 하나님께서 얼어붙은 한반도의 상황을 녹여주시길 기도해야 하고, 통일을 준비해야 합니다. “우리의 날들을 다시 새롭게 하사 옛적 같게 하옵소서.” 뿐만 아니라 비상계엄선포, 국회의 대통령 탄핵결정과 체포, 무안공항에서의 비극적인 사고, 경기의 쇠퇴 등 오늘의 우리나라는 정말 아슬아슬합니다. 통일은 고사하고 우리가 전혀 감당할 수 없는 어떤 큰 일이 일어날 까 심히 걱정이 됩니다. 더욱이 우리 한민족을 통해 이루실 복음전파의 거룩한 사역이 끊어질 까봐 염려가 됩니다. 그래도 우리는 복음통일을 준비하며 기도해야 합니다. “우리의 날들을 다시 새롭게 하사 옛적 같게 하옵소서.”

 

2024년에 개강한 제14기 통일선교대학원에 안동지역의 교회에서 12명이, 영주에서는 5명이 등록하여 졸업했습니다. 통일선교대학원 원장인 저의 체면을 차려주기 위해 안동과 영주에서 많이 참여해야 한다고 생각하며 1년 동안 서울까지 매주 등하교를 마다하지 않은 분들께 감사한 마음을 전합니다. 특히 필자가 섬기는 안동교회에서는 7명이 등록하여 모두 졸업의 영예를 안았습니다. 지난 연말당회 시 졸업한 한 장로님이 우리 교회도 특별위원회 안에 평화통일선교위원회를 두었으면 하는 의견을 제안하여 당회에서 만장일치로 결정했습니다. 앞으로 우리 안동교회도 통일을 위해 기도하고, 도울 일들을 찾으려고 합니다. 이것도 통일을 위한 준비가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통일은 도둑같이 임할지 모릅니다. 우리 통선원 동문들은 모두 통일선교사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통일선교대학원을 졸업한 여러분 모두는 누구보다 통일에 관심을 갖고 훈련받은 통일선교사들입니다. 통일이 멀리 있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의 절대주권 가운데서 전혀 예기치 못한 시간에 북한의 문이 열릴 수도 있습니다. 그날이 올 때까지 통일선교사로서 각자 삶의 자리에서 통일을 신실하게 준비하는 통일선교대학원 동문들이 될 수 있기를 소망하며 쉬지 않고 기도하는 사명을 감당해야 합니다. “우리의 날들을 다시 새롭게 하사 옛적 같게 하옵소서.”

 

2025년 1월 7일

김승학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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